박진희 생활경제부장
얼핏 독서불구심해(讀書不求甚解)로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상 시위소찬(尸位素餐)이다. 국정감사 자리에서 언급하는 내용이 업계 전문가들은 차치하고 대중들의 견해에만 못 미치니 나라의 녹을 먹을 자격은 있는 것인가.
‘한서(漢書’의 주운전(朱雲傳)에 따르면 옛날 중국에서는 제사지낼 때 조상의 혈통을 이은 어린아이를 조상의 신위에 앉혀 놓는 풍습이 있었다. 영혼이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려는 신앙에서 나온 풍습이다. 이 때 신위에 앉아 있는 아이를 시동이라 한다. 시위(尸位)는 그 시동이 앉아 있는 자리이고, 소찬(素餐)은 맛없는 반찬이란 뜻으로 공짜로 먹는다는 것을 말한다. 즉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이 만들어 놓은 자리에 앉아 공짜밥이나 먹고 있다는 뜻으로 하는 일 없이 국가의 녹을 축내는 관리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시장을 독식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83개국 1위에 오르며 ‘갯마을 차차차’ 등 넷플릭스 내 다른 한국 콘텐츠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쯤 되니 배가 아픈 모양이다. 제작은 국내팀이 했는데 돈은 넷플릭스가 벌어가는 게 영 마뜩찮은 것이다.
지난 12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KBS 양승동 사장이 ‘오징어 게임’과 같은 콘텐츠를 언급하는 국회의원들의 얄팍한 질문에 콧방귀도 못 뀌고 원론적인 대답만 내놨다.
이날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작품은 우리가 만드는데 큰돈은 미국(넷플릭스)이 싹 다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KBS는 왜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양 사장은 “‘오징어 게임’은 KBS 같은 지상파가 제작할 수 없는 수위의 작품이다. KBS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14일에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넷플릭스는 제작비 200억원을 투입한 ‘오징어 게임’ 공개 약 3주 만에 시가총액이 28조원(지난 6일 미국 나스닥 종가 기준)가량 증가했다”면서 “투자 대비 넷플릭스의 경제적 이익이 약 1166배로 추정되는 데 반해 제작사에 돌아가는 수입은 220억~240억원이다. 넷플릭스가 저작권을 독점하고 있어 흥행 이후 국내 제작사의 직접적 인센티브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국감을 통해 넷플릭스의 국내 망 사용료 지불 거부 문제를 언급했다면 차라리 현실적이었을 것을…박성중 의원과 김승수 의원은 국내 콘텐츠 제작 실정과 방송심의규정 조차 파악을 못한 질문을 ‘바쁜’ KBS 사장을 앉혀 놓고 쏟아낸 셈이 됐다. 이것이 시위소찬이 아니고 무엇일까.
KBS에서 ‘오징어 게임’과 같은 콘텐츠를 생산해 내지 못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먼저 제작비 규모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회당 2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갔다. 국내 드라마 제작비 규모가 회당 5억 원을 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며 4배 이상이다.
‘오징어 게임’을 제작한 황동혁 감독조차도 “이 시나리오를 들고 국내 여러 제작사에서 퇴짜를 맞았다. 이해도 간다. 제작비 규모나 심의 등을 감안하면 투자금 회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오징어 게임’이 거둬들인 막대한 수익금을 넷플릭스에 넘겨주지 않아도 됐을 법한 기회는 국내 제작사에 먼저 있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작사는 선뜻 회당 2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인 드라마를 제작할 엄두를 못낸다. 각종 심의 규정 등을 감안했을 때 투자금 회수가 요원한 탓이다.
'오징어 게임' 심의결과
‘오징어 게임’의 심의 등급을 보며 주제와 선정성, 폭력성, 대사 및 공포지수, 모방위험 지수 등에서 국내 채널 어디에서도 방영할 수 없는 수위가 나온다. 그렇게 되면 드라마로 방영을 위해 내용의 상당 부분을 수정 혹은 삭제했어야 한다. 법으로 테두리를 꽁꽁 싸 놓은 채 “왜 자유롭지 못하냐?”라고 묻는 꼴이다.
이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국회의원들의 국정감사에서의 질문과 자료를 보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콘텐츠 업계에서 조차 문화 콘텐츠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오징어 게임’과 같이 성공한 작품만을 볼 게 아니라 큰 리스크를 지고 제작하는 이면 또한 봐야 하기 때문에 한 작품의 성공을 두고 수익을 넷플릭스가 독점한다는 식의 논리는 억지라는 입장이다.
여기에 ‘오징어 게임’ 공개 이후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28조원(지난 6일 미국 나스닥 종가 기준)가량 증가한 것을 두고 1100억원의 수익을 거둬들였다는 논리를 펼친 김승수 의원의 주장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이토록 단편적인 계산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한 ‘종이의 집’ 파트5 2부 공개를 앞두고 있는 등 다수의 작품이 주가에 호재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넷플릭스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없이 ‘오징어 게임’만을 바라보는 맹목적 계산법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국회의원들은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종속될 가능성을 지적하기 이전에 넷플릭스의 망사용료 지불 거부 문제를 언급했어야 옳다.
넷플릭스는 구글(유튜브)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 인터넷 망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국내 IT 사업자들과 달리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망에 발생시키는 트래픽은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18년 5월 50Gbps 수준에서 올해 9월 현재 1200Gbps 수준으로 약 24배 폭증했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가 망을 이용해 얻는 이익과 회사가 당연히 지급받았어야 할 망 이용대가의 손실 간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당연한 인과다.
국내 사법부의 판단도 SK브로드밴드의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올해 6월 패소한 후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1심에서 법원은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통해 인터넷 망 연결이라는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넷플릭스가 이에 대한 대가 지급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고 형평에 부합한다”고 판결했다.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무임승차한 망 사용료는 현재 약 700억원 수준에 이른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나라에서는 지불하고 있는 망사용료를 한국에서만 내지 않고 버티는 셈이다. 이 같은 글로벌 기업의 행태는 법 제도로 뜯어 고쳐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제작자들에게만 지적을 하고 있으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