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부장 박진희
시쳇말로 ‘쿨하게’ 머지포인트 구매자에 대한 환불 결정을 한 11번가가 역풍을 맞고 있다. 추이를 들여다보자니 ‘11번가의 머지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일면 과하지 않아 보인다.
“구매한 지 하루 밖에 안 지났으니 환불은 당연한 절차이지 않겠습니까. 지금 기사가 ‘전체 환불’로 나가고 있는데 8월 10일 구매하신 고객에 한정된 환불입니다. 7월 구매자들은 이미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머지포인트 피해자 구제에 가장 먼저 나선 이커머스 11번가의 환불 결정은 심플했다. 사태가 발생하기 하루 전날 구매한 소비자들에 대한 선제적 구제라는 점에서 환영 받을 만한 행보다. 이로 인한 11번가의 이득은 커 보였다. 소비자들은 환불 결정을 지연하고 있는 기타 이커머스를 탈퇴하고 11번가만 이용하겠다는 의견으로 보답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0일 하루 판매 분에 대한 환불을 결정한 11번가를 이유로 머지플러스는 즉각 환불 중단 공지를 냈다. 11번가의 환불로 인해 중복 환불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나마도 환불을 기다리던 소비자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결정이었다. 11번가의 환불 결정으로 인해 위메프, 지마켓, 티몬 등에서 머지포인트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역으로 피해를 입은 모양새가 됐다.
여기에 “8월 전체 구매자 환불”이라는 표현의 오류가 지적됐다. 기실 11번가는 8월에는 10일 단 하루만 머지포인트를 판매했다. 이 때문에 ‘11번가의 머지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도로아미타불은 옛날 어떤 고을로 동냥을 갔던 젊은 중이 아리따운 처녀를 보고 그만 상사병에 걸렸다. 중은 번민 끝에 처녀에게 청혼을 했다.
처녀는 10년 동안 한방에서 동거하되 손목도 잡지 말고 바라만 보고 친구처럼 지내면 10년 후에는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동거가 시작되어 어언 내일이면 10년이 되는 날 밤, 중은 사랑스런 마음에 그만 하루를 못 참고 처녀의 손을 잡으니, 깜짝 놀란 처녀는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선제적 구제’라는 명목으로 근사하게 포장된 11번가의 머지포인트 환불 결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도로무익(徒勞無益)이 되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에게도, 11번가 이미지에도 득 될 게 없어 보인다.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일 금융감독원은 신용카드로 이커머스에서 머지포인트를 구매한 소비자들에 대한 피해 구제 작업에 들어갔다. 이커머스에서 카드로 3개월 이상 할부를 통해 머지포인트를 구매한 소비자들에 대한 할부항변권 검토다. 할부항변권이 적용되면 3개월 이상 할부로 머지포인트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앞으로의 결제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머지 사태에 대한 수습은 한 군데 이커머스가 단독으로 움직여서는 안 될 일이다. 머지포인트를 판매한 머지플러스가 환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사태 수습의 최선일 수 있다. 머지 플러스만이 소비자들의 머지포인트 사용 여부를 통계하고 있는 탓이다. 혹은 금융당국이 지휘봉을 들게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11번가의 환불 결정은 그것이 선의(善意)였다고 했도 도로무익(徒勞無益)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