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배두나는 고요하다. 어쩌면 과묵하다. 영화 ‘아저씨’ 속 원빈의 과묵함이 작품을 살렸듯, 배두나의 과묵함은 작품의 꽃이 되곤 한다.
미드 ‘센스’ 시리즈와 국내작 ‘킹덤’ 시리즈 흥행으로 ‘넷플릭스의 딸’로도 불리는 배두나가 ‘고요의 바다’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또 한 번 출연했다. 넷플릭스의 딸의 귀환도 그러하거니와 국내에서는 생소한 장르인 SF를 시리즈로 제작한다는 소식에 기대감은 컸다. 여기에 ‘킹덤’ 시리즈를 비롯해 ‘오징어 게임’ ‘지옥’ 등 한국이 만든 작품들이 넷플릭스 전체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등의 소식으로 ‘고요의 바다’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상승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해 12월 24일 ‘고요의 바다’가 공개됐다.
공개직후 홍콩의 한 언론매체에서 ‘고요의 바다’에 혹평을 내놨다. 이후 줄줄이 기대에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중 가장 지루한 작품” “고요하기만 한 성적” 등 혹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주연 배우 배두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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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몰입이 거짓처럼 보일 때 작품은 망한다”
‘고요의 바다’에서 배두나는 우주 생물학자 지안으로 분해 연기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키맨으로서 지안은 함께 달의 기지로 떠난 대원들과 달리 연구소에서 일어난 일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 하는 인물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배두나는 역시 과묵했다. 과학자를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도 그랬을 테지만 배우로서 그녀가 갖고 있는 철학이 그간의 연기 톤을 ‘고요의 바다’에까지 연장하게 했을 것이다.
“나는 송지안을 일종의 은둔형 외톨이로 봤다. 내가 생각하는 지안은 그런 이미지다. 과학자라는 직업이 가진 특색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고, 인물의 전사가 송 박사로 하여금 세상을 싫어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묵직하게 시작했다”
‘고요의 바다’는 기실 배두나가 끌어가는 작품이다. 공유가 맡은 엘리트 출신 대원 한윤재가 하나의 이야기 축을 가지고 시청자의 시선을 잡고 있는 동안 송 박사는 다음 이야기를 위해 배수의 진을 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로써의 부담감이 왜 없었을까.
“부담감이 컸다. 작품 자체가 스토리보다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중요한 성격을 띄고 있다. 송 박사가 달의 기지로 출발할 수 밖에 없었던 심리, 비밀을 알고 싶어서 일탈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루나와 만났을 때 등 매 순간 내가 제대로 표현을 못하면 중간에 집중도가 끊기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매씬 집중하려고 했다. 거기서 내가 몰입력을 잃거나 그게 가짜로 보인다면 그동안 절제하면서 쌓아온 감정들을 관객들이 놓치고 가면서 작품 자체가 힘을 크게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도 송 박사는 감정 표현이 거의 없다. 캐릭터는 그동안 배두나의 연기톤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어쩌면 ‘고요의 바다’를 숨죽이고 보게 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연기를 하다보면 감정을 표출할 때도 있어야 하고, 오히려 안으로 집어넣어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감정을 눌러서 집어 넣어놓고, 그 안에 있는 것을 관객이나 시청자가 직접 찾아서 봐주려고 노력할 때 진정한 집중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인물의 감정을 30~40%만 표출한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지 않나? 감정은 눈으로도 보인다고 하지 않나? 나는 관객들이 그것들을 보고 인물의 감정을 찾아 들어와 주기 바란다.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내 연기관이다”
‘고요의 바다’는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결과론적으로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이야기를 위시한다. 정부의 부패, 자원의 고갈과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인류의 몸부림, 죽음, 생존, 희생에 대한 가치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소 묵직하고 진지한 이 이야기들을 배우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원래 내가 환경과 자원, 미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인간만 잘 살아서 되겠는가? 인간이 살기 위해 이 조화를 깨트려서는 되는 것인가?’다.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이 가장 잔인하다. 작품 속 루나만 봐도 그렇지 않나? 그렇게 봤을 때 이 작품이 나와 참 잘 맞는 작품이었다”
실제 배두나, 공유 등 주요 출연진들은 ‘고요의 바다’ 촬영 후 물을 아껴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미 시청을 마친 많은 시청자들도 이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걸 보면, 이 시리즈가 건져 올린 것이 무척이나 큰 메시지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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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현 우주 SF 수준 끌어 올려”
“나는 ‘고요의 바다’가 기존 한국 작품에서 접하지 못한 것들을 많이 구현해 냈다고 평가한다. 이전에 해외 촬영을 하면서 느꼈던 많은 충격들이 있지만 한국 배우로서 한국 작품을 촬영하면서 이런 기술적 진보는 경험한 적이 없다. 한국의 기술력과 상상력으로 이 만큼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할리우드 진출을 통해 배두나는 해외 여러 SF 장르 작품에 출연해 왔다. 그렇기에 ‘고요의 바다’가 주는 기술적 진보 등에 대한 충격은 없었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다만 유경험자로서의 판단과 평가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CG부분은 해외 어디를 내놔도 나무랄 데 없는 기술이다. ‘고요의 바다’를 보니 그렇더라. 원래 이 정도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놀라울 정도의 기술력이었다. 그 외에 과학적 검증이랄지 촬영 환경 등은 ‘고요의 바다’가 발판이 돼서 더 나은 작품이 나오길 바란다.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늘 자본력과 맞닿아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SF 작품에 막대한 자본력을 투자한다면 할리우드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기술적인 평가야 그렇다하더라도 작품 공개 직후 갈린 일각의 혹평에는 배우로서도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짐작이다. 하지만 이 배우는 의외로 담담하고, 예상대로 잘 받아 들인 모양이다. 기술적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발전한 면모는 그런대로 잘 칭찬하며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작품이 다소 늘어졌다는 평가나 결말에 대해 분분한 의견에 대해서도 “나는 좋았다”로 뭉뚱그리지 않는다.
“단편을 8부작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전개가 늘어졌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최향용 감독만의 리듬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감독은 사람을 굉장히 궁금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그것이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본다. 대본 자체에도 여백이 상당히 많았지만 다소 느리고 조근 조근하게 쌓아가는 것 역시 최 감독 스타일이니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배우로서 아직 국내에 자리잡지 못한, 어쩌면 비 인기 장르인 SF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었으리라. 장르를 개척해 나가는 입장에서의 도전의식이 발동한 건지 혹은 이미 경험해 본 자의 용기인지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것을 향한 탐닉인지 궁금해졌다.
“SF는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주는 매력이 있다. 미래를 그린다는 점에서 과학적인 검증과 증명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하겠지만 원리 안에서는 충분히 이것저것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재미있고 멋있는 것 같다. 이 작품 안에서도 가상의 어떤 소재를 쓸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도전의식이 생겨서 이 작품에 출연한 것이긴 하다. 나는 뭐든지 처음해보는 걸 되게 좋아한다. 처음에는 나도 SF가 우리나라에 익숙한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이게 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할리웃 같은데서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게 자본력이 받쳐주고, 그들은 오래 해 와서 경험치가 쌓였다. 우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특히나 최 감독은 ‘고요의 바다’를 우주적 SF보다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췃다. 가능성을 봤던 것도 그 지점이었다. 장르자체는 이제부터 경험치를 쌓아나가서 걸음마하고, 뛰고 하면서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이 작품을 계기로 다른 창작자들이 따라오고, 또 시도하면 그걸로 성공한 것 아닌가. 나는 우리나라 영화가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 ‘고요의 바다’가 참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