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NEW 제공
# “닥치는 대로 해 보자! 그건 당연한 거였어요.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연기하는 것 자체,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연극) 공연하면서 너무 모르는 것도 많았고, 사실 지금도 많이 모르는데. 그때로서는 (오늘의 저를) 전혀 생각할 수 없었죠. ‘화차’가 제겐 고마운 작품이에요, 중간에 드라마 ‘미생’도 있지만. ‘4등’은 영화적으로 고마운 작품입니다. ‘4등’ 이후 캐스팅 과정이 좀 달라졌어요, 오디션 과정이 필요 없어졌지요. 아, 오디션 봐야 하는데”
- 배우 박해준이 눈에 들어온 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였다. 화이(여진구 분)의 다섯 범죄자 아버지 가운데 가장 친절하지 않고 무뚝뚝한 아버지. ‘너 이렇게 살면 안 돼’, 묵언으로 말하는 듯해서 되레 아버지 같았던 젊은 형. 자꾸만 눈길이 가고 그가 등장하지 않는 공백이 길게 느껴졌다. ‘화차’에서 차경선(김민희 분)을 기어코 찾아내 무섭게 빚 독촉하는 사채업자 범수를 연기했던 박상우와 동일인임을 몰랐다. 크고 작은 영화에서의 호연을 지나, 폭력으로 얼룩진 수영코치 김광수를 기막히게 연기한 ‘4등’을 선보인 뒤.
‘침묵’ 속 편의점에서 돈이면 대통령도 만드는 태산(최민식 분)과 그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동성식(박해준 분) 검사가 만난다. 대한민국 최고 카리스마 배우 최민식에 결코 밀리지 않는 에너지! 앞으로는 좀 더 제작비 큰 영화에서 보다 큰 배역으로 볼 수 있겠구나, 기대감에 설렜던 그때.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간간이 보이는 겸덕을 기다리느라 속세를 버리고 떠나간 그를 오매불망하는 정희(오나라 분)의 마음에 동화됐던 그때. 독한 캐릭터 가득했던 ‘독전’에서 룰이 없고 뵈는 게 없어서 가장 두려웠던 생양아치 박선창을 보며 혀를 내둘렀던 그때.
그리고. 마치 배우 박해준의 연기 스펙트럼이 얼마나 광폭인지 보여주듯 ‘유열의 음악앨범’과 ‘힘을내요 미스터리’로 점점 독기 지우며 우리에게 다가온 2019년. 박해준은 연기할 수 있는 자체가 신기했던 그때를 잊지 않고 있다. 오디션을 통해 출연이 결정되던 긴장감으로 자신에게 박차를 가했던 그날들의 장점 역시.
# “영화 ‘화이’ 할 때 이름을 바꿨어요. 촬영 중에 바꿨는데. (‘화차’에 함께 출연했던) 조성하 선배랑 같은 회사였는데. 조 선배님이 갑자기 전화 오셔서 ‘네 이름 해준이라 하는 게 어떠냐. 지어 보고 검색해 보니 (똑같은 이름) 없더라’. 상우라는 이름은 저랑 안 맞고 배우로서 약하다는 생각도 드신다는 거예요. 저는 약간, 배우가 되고 알려진다고 해서 가명을 쓴다는 것, 두드러기 나오게 싫어하는 타입이었는데, ‘예. 생각해 보겠습니다’ 했죠”
“고민해 보다가 회사 대표님께 얘기했어요, 조 선배께서 이런 얘기 하더라. 좋다는 거예요. 싫어하고 안 해 보던 일을 해 볼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바꿨어요. 그전에 아시던 분들도 ‘해준’이라 불러 주셔서 감사해요. 은근히 인복이 많은 것 같아요, 선배 후배 분들. 제가 표현도 잘 없고 고맙다고 떡을 사 드리는 것도 없는데, ‘이름 바꿨으면 해준이라 불러야지’ 해 주시니까요. 상우가 편하다고 다시 상우라 부르는 분도 계시고, 그러다 다시 해준이라 부르는 분도 계세요”
- 인간관계는 주고-받는 것. 후배 박해준이 예쁘게 잘하니 선배 조성하도 먼저 개명을 고심하다 못해 이름까지 지어 줬다. 고맙다고 떡을 사 드리는 적도 없다는 말, 바뀐 이름으로 불러들 준다고 ‘인복’이라며 감사하는 사람. 박해준이 주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리고 하나의 귀여운 반전.
“쿨 하게 얘기했는데. 작명소 가서 한자도 받아 오고(웃음), 사실 무슨 한자인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데. 처음에 선배님께 이름 들었을 땐, 아는 한자도 별로 없고 해서 ‘바다 해, 깊을 준’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명소에서 이거는 물이 많아서 이런 식으로 지으면 너 죽는다고 해서 물 수(水) 뺀 이름으로 바꿨는데 뭔지 기억이 안 나요. 깊은 바다라는 느낌 좋긴 한데(쩝)”
# “차(승원) 선배님이 먼저 캐스팅되고 그 뒤에 제가 캐스팅됐어요. 저 한다고 했을 때 선배님이 좋아해 주셨대요. 말씀은 안 하는데 저를 되게 흐뭇하게 생각하시는 게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제가 옆에 있으면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선배님~ 붙임성 있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그럼에도 ‘사람 좋고, 애 좋고, 연기 그 정도면 잘하고’ 좋게 생각하시는 마음이 같이 있으면 전해지죠. 선배님 외모가 좋으시고 저를 또 인정해 주시니까 (기분 좋아요). 선배님은 전국구, 저는 지역구 외모. 외모에 대해 한 번도 아니라는 얘기 안 들어 보신 분일 거잖아요. 그런 분이 인정해 주시니(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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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수록 귀여운 후배 감이다.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서 선배를 높이는 후배. 아끼지 않을 수 없는 후배 박해준 아닌가. 선배 얘기 나오면 빠질 수 없는 에피소드 한 가지 더.
# “들었죠, 한예종 장동건. 한예종 재학 시절은 아니고 한참 지나 일하고 있을 때 나온 얘기예요. 그때(재학 당시에)는 훨씬 더…, 아니 얘기 안 할래요. 1기 장동건 선배, 학교 같이 다녔고 한예종에서 유명하셨고. 선배가 바로 위 기수에 계시는데 저에게 ‘와, 한예종 장동건이다’ 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출처는 저도 몰라요. 분명한 건, 저는 제 입으로 한 거는 아니고요. 근데 너무 좋아요, 그렇게 얘기돼서 너무 좋아요. 옛날엔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좋아요. 몇 번 말씀드리는 거지만 실제로 보면 ‘배우는 이래야 되는구나’를 보여 주는 분이니까요”
“(얘기 들은 지) 얼마 안 됐어요.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하기 전인데. 아, 이선균 선배 같다. 영화 ‘악질경찰’ 때. 이선균 선배는 속으로 챙기고 좋은 말 해 주시는 분이죠. (한예종 장동건 별명) 감사합니다, 선배님”
- 박해준은 처음엔 장동건 선배가 다른 학교에 다녀야 그에 비견해 ‘한예종 장동건’이라는 자신에 대한 별명이 이치에 닿을 텐데 같은 학교에, 그것도 동시기 다녔는데 가당치 않다며 ‘논리’로 쑥스러움을 면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장동건 선배는 부처님 같으시고 진짜 너무 좋으시고”라고 전제를 단 뒤 “장동건 선배도 내 별명에 자기 얘기 나오는 걸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며 자랑했다. ‘박해준 정도 생기면 내 이름을 붙여도 인정한다는 뜻이냐’고 장동건의 의중을 묻자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고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 “코미미영화인데 왜 울어? 또는 반전코미디다, 이런 얘기 나오고 하는데. 그냥 재미있는 코믹영화가 아니고 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잖아요. 움직인다는 게 좋은 면이고, 그게 맑고 순수해서 좋은 것 같아요. 요즘 어떻게 해서든 나쁜 걸 바라보고 비판하고 그런 것들이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 영화 보며) ‘그래, 우리 저렇게 살면 안 돼? 예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면 안 돼?’ 이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영화 보면…, 영화 보는 내내, 영화 보고 나면 ‘아, 나 기분 좋아’ 할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계백 감독님, 감성이 되게 여리기도 하고 착하기도 해서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도 되는 구나’ 싶습니다. 고마움 표시하는데 박했던 우리, 고마움 표시하는 게 좋은 영화예요. 많이들 봐 주십시오”
- ‘힘을내요 미스터리’ 바깥으로 얘기가 흐른 것 같아 마지막으로 어떤 영화인지 물으니 ‘고마움’을 꺼낸다. 영화의 주제다.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그게 내게는 아닐지라도 자식에게 ‘고마움과 보답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
# “영화 ‘8일의 밤’ 촬영이 끝났어요. (이)성민 선배랑 김유정, 남다름 배우와 함께한 건데. 영화 되게 잘나왔어요. 내년을 기대해 주셔도 좋습니다. 벌써 홍보하면 안 돼(비명과도 같은 외침). ‘힘을내요 미스터리’ 많이 봐 주세요. (‘8일의 밤’) 형사 역할, 재미있게 찍었어요”
- 인터뷰의 말미를 웃음으로 채우는 개구쟁이 배우. 박해준은 오는 11월 선배 배우 이영애, 유재명과 호흡을 맞춘 ‘나를 찾아줘’도 선보인다. 유재명과는 ‘4등’에서 조우한 바 있다. 우선 ‘힘을내요 미스터리’ 속 영수부터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