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매주 신작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비슷한 소재에 제작진, 배우들까지 같은 경우 그런 분위기가 더욱 감지된다. 비슷하다고 해서 모두 모방한 것은 아니다.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요리하는지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 ‘빅매치’에선 어딘가 비슷한 두 작품을 비교해 진짜 매력을 찾아내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사진=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
2011년 개봉한 ‘고지전’과 25일 개봉한 ‘장사리: 잊혀진 영웅’(이하 ‘장사리’)은 6.25 전쟁을 다룬 영화다. 두 영화가 조명한 전투는 다르다. ‘고지전’은 휴전 직전, 최전방 애록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마지막 고지 탈환 전투를 다뤘고, ‘장사리’는 인천상륙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연막전술인 장사 상륙 작전을 담았다.
그러나 두 영화의 주제는 같다. 인민군 대 한국군이라는 이분법적인 갈등을 그리는 반공 메시지가 아닌, 반전의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강대국들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낳은 희생자들을 집중 조명하며 영화의 의도를 살린다.
‘고지전’은 이를 위해 악어부대라는, 오로지 살기 위해 싸우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들이 싸우는 애록 고지는 수시로 인민군과 뺏기고, 되찾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은 전쟁의 목적을 잊은 채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장사리’ 역시 마찬가지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700명이 넘는 학도병들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포착하며 반공 영화로 보일 수 있는 우려를 지운다. 그들을 사지로 내몬 주체를 일부 미국과 한국 군인 간부로 분명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때문에 두 영화에는 뚜렷한 ‘적’이 없다. 인민군에 대한 서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한국군의 이야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 영화의 입장에서 안타고니스트가 없다는 것은 단점이 될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감정 이입을 할 존재가 없이 관객들을 2시간 동안 몰입시키기는 쉽지가 않다.
사진=영화 '고지전' 스틸
‘고지전’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부대원들을 바라보는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 분)의 존재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 했다. 애록 고지의 부대원들 중 인민군과 내통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찾아내기 위해 그곳을 방문한 강은표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생긴다. 동시에 이곳에서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는 과정을 통해 영화의 반전 메시지를 강화하기도 한다.
‘장사리’가 선택한 것은 사연이다. 학도병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조명해 공감을 끌어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인 정서를 부여해 쉬운 몰입을 유도한 것이다. 가족이 북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분대장 성필(최민호 분)의 사연이나 형제가 많아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삐뚤어졌던 하륜(김성철 분), 대를 이어야 할 오빠를 대신해 전쟁에 떠밀린 종녀(이호정 분) 등 뭉클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졌지만, ‘고지전’처럼 극에 녹아들어 메시지를 강화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사연이 인물의 독백 대사를 통해 전달됐으며, 희생된 학도병들의 아픔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탓이다.
그럼에도 ‘장사리’는 잊혀져선 안 될, 수 백 명의 희생자를 남긴 장사리 전투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가 있다. 실화가 주는 분명한 힘도 느껴진다. 영화가 담은 진심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증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