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 탑다운(Top-down)보다는 바텀업(Bottom-up). 화려함보단 소탈함. 한번 결단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추진력을 보이지만 결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누구보다 기업 경영, 그리고 증권업에 진심인 오너. 뻔한 ‘금수저’ 중 한명이 아닌, 전문경영인보다 더 전문적인 오너라는 평을 듣기까지.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이 내린 수많은 선택들 중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 한국 대표 금융사를 향한 도전과 도약 2004년 당시만 해도 증권업계에서 김남구 회장의 존재감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부친인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사들인 옛 한신증권의 업계 위상이 선두까지 미치지는 못한 데다가 40대 초반 젊은 ‘재벌 2세’에 대한 기대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1991년 게이오대 대학원 졸업 후 동원증권에 입사하면서 증권맨으로 금융바다에 뛰어든 김 회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지 4개월 만에 한국투자신탁증권 인수에 성공하며 단숨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래를 삼킨 새우’. 동원증권의 한국투자신탁 인수가 딱 그 격이었다. 김남구 당시 동원증권 대표이사는 인수전에서 경쟁했던 미국 칼라일그룹보다 불과 12억원 많은 금액인 5412억원을 제시하며 당시 매물이었던 한국투자신탁증권을 품에 안았다. 공교롭게도 김재철 명예회장이 한신증권 인수시 경쟁했던 태평양화학, 미륭건설과 불과 250만원 안팎의 금액 차로 승리를 따낸 것과 묘하게 닮았었다. 독자 노선을 택한 김 회장의 행보는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같은 해 12월 동원그룹에서 완전히 독립하며 이듬해 사명 역시 동원금융지주에서 한국투자금융지주로 바꿔달았다. 동원이라는 그늘을 벗어나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사로 성장시키겠다는 그의 의지는 일찌감치 공표된 셈이다. 한국투자증권 인수로 단숨에 5위권에 진입한 회사는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김 회장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IB가 되겠다는 목표로 ‘비전 2020’을 선언하며 IPO, 인수영업 등 IB업무와 자산관리(AM) 영업을 강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했다. 해외사업을 확대하는가 하면 선진금융기관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한국형 투자은행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기자본 확대는 필수였다. 2009년 말 1조원대였던 자기자본은 2015년 3조원, 2020년 5조원, 그리고 2023년 현재 8조원을 넘어섰다. 김 회장에게도 아쉬운 순간은 있었다. 2015년과 2016년 증권업계 최고 이슈였던 대우증권과 현대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김 회장의 석패였다. 당시 인수전 패배를 두고 한국투자증권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도 적잖았다. 어느새 규모가 경쟁력이 돼 버린 자본시장에서 좋은 먹잇감을 놓친 것은 자사의 성장 기회 상실일 뿐 아니라 승자에게 짓눌릴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오히려 “달라진 것은 없다”며 흔들림없는 경영을 숫자로 증명해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동안 증권업계 순이익 기준 1위를 차지한 건 바로 한국투자증권이었다. 주식위탁매매수수료 등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투자금융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꾸준히 확대했다. 저금리 시대에 부동산 투자에 대한 열기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한국투자증권은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2020년 미래에셋증권에 잠시 밀렸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한 수익성 확대를 기반으로 2021년 다시 1위를 회복하며 흔들리지 않는 위상을 보여줬다. 자회사들을 통한 탄탄한 수익 구도도 김 회장이 ‘위기의 강자’임을 확인시켜주는 데 한 몫했다. 이어 2017년 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며 은행지주사로 변모한 뒤 한국투자증권은 초대형 투자은행으로서 또 한번의 진화를 이뤄냈다. ■ 러닝메이트 유상호의 활약 한국투자증권이 이 같은 성장을 거두기까지 김 회장 곁을 지킨 오랜 ‘러닝 메이트’들이 있다. 유상호, 이강행 부회장은 지금도 김 회장이 깊은 신뢰를 갖는 키맨들이다. 특히 유상호 부회장은 2007년 당시 김 회장이 9개월간의 ‘삼고초려’ 끝에 영입에 성공해 최연소 최고경영자(CEO)로 지휘봉을 잡은 뒤 업계 최장수 CEO가 되기까지 무려 12년간 김 회장의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감당했다. 오늘날 한국투자증권이 업계에서 대형사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던 데에는 유 사장의 공이 적지 않다는 게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그는 취임 1년 만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다양한 인재를 영입하고 차세대 IT시스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등 차별화된 전략으로 이목을 끌었다. 금융의 도약기에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던 그의 판단대로 한국투자증권은 2011년 이후 3년 연속 업계 1위 실적을 달성했다. IPO 시장에서는 물론 자산관리 부문도 자회사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을 통한 시너지를 통해 수익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글로벌 IB라는 비전을 향해 달리는 김 회장이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때마다 함께 뛴 파트너 역시 유 부회장이었다. 그중에도 2010년 베트남 현지 합작증권사 ‘KIS 베트남’ 인수를 위해 김 회장과 유 부회장은 수년간 신뢰를 쌓고 네트워크를 넓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를 포함해 앞선 두차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 당시 유 부회장의 출마설은 끊이지 않았다. 금융투자시장의 성장기의 한복판에서 업계를 이끌어 온 유 부회장이 시장에서도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 하지만 유 부회장에 대한 김 회장의 신뢰는 여전하다. 현재도 김 회장이 주력하고 있는 글로벌 사업 확대에서 유 부회장은 중심에 있다. 뉴욕을 비롯한 한국투자증권의 글로벌 전략 핵심 기지마다 유 부회장은 여전히 최전선의 ‘지휘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 정통 IB맨 정일문의 파워 2018년 11월, 김 회장이 한국투자증권의 새로운 CEO 인사를 내놨을 때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유 부회장의 연임 기록이 멈춘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리더를 통해 김 회장이 그리는 한국투자증권의 새로운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시장은 그의 선택에 주목했다. 김 회장은 ‘포스트 유상호’로 ‘정통 IB맨’ 정일문 사장을 택했다. 당시 내부에서 또다른 후보로 거론됐던 김성환 부사장이다. 현재 개인고객그룹장을 맡고 있는 김 부사장은 부동산 PF부문에 특화된 인물로 평가됐다. 결국 김 회장은 한국투자증권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여온 기업공개(IPO) 등 IB 부문 전체에서 잔뼈가 굵은 정 사장을 선택해 그에게 경영을 맡겼다. 특히 김 회장은 정 사장 취임 전까지 약 3년간 개인고객그룹을 맡기며 새로운 미션을 던져줬다. 증권사의 기본이자 핵심인 현장에서 정 사장의 능력을 평가하려던 김 회장의 의도에 맞게 정 사장은 개인자산관리부문에서 2조원 이상의 수탁액을 늘리는 등 성과를 냄으로써 미션을 훌륭히 성공해냈다. 취임 후 만 5년을 맞은 정 사장은 서서히 경영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이다. 유상호 체제에서 증권사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정 사장은 업계 최고 증권사라는 입지에 걸맞는 직원 대우와 복지 등 세밀한 부분을 챙겼다. IB맨 시절 30년동안 300만km를 누볐다는 정 사장은 직원들과 스킨십을 통해 한투 특유의 소통 문화를 여전히 강조한다. “내부 출신인 정 사장을 통해 조직이 보다 안정화됐다"는 평도 나온다. ■ 12월, 다시 임박한 김남구의 선택 찬바람이 부는 계절. 12월 그룹의 임원 정기인사를 앞두고 한국투자증권에도 긴장감이 흐른다. 긴 호흡으로 경영진을 신뢰하는 김 회장의 인재술을 생각하면 잦은 CEO 교체는 그의 이력에 잘 없었다. 다만 정 사장이 어느새 5년 임기를 이어온데다 내년 금리 인상기 종료에 따른 시장 변화를 또 한번의 기회로 삼으려는 김 회장의 경영전략이 어떤 결정으로 이어질지는 변수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영업이익은 4467억원. 업계 4위 수준이다. 수익구조 다변화를 추구해왔지만 PF 시장 불황에 따른 충당금 여파 등으로 남은 하반기 실적 역시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9월말 현재 한국투자증권의 부동산 PF 신용공여 규모는 2조2986억원으로 증권업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글로벌 IB라는 김 회장의 목표까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한국금융지주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미래에셋증권을 비롯해 증권업계에 일고 있는 세대교체 흐름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김 회장은) 인재술에서 워낙 신중한 스타일이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쟁사들 상황이나 업계 분위기보다는 내년과 그 이후 경제 전반의 상황과 다양한 변수들, 내부적인 조직 변화의 필요성, 새로운 인물의 적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선의 판단을 하시지 않겠냐”고 했다. [뷰파인더] 코너는 국내 금융회사의 이슈와 전략을 조금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현재의 기업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업의 발자취, 그간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업 CEO와 대주주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겠죠.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김남구의 선택, 유상호 정일문 그리고...[뷰파인더]

증권업에 '진심' 오너 경영인의 승부사 기질과 인재술
다가온 12월 인사, 다시 주목되는 김남구의 선택

박민선 기자 승인 2023.11.09 10:11 | 최종 수정 2023.11.23 07:55 의견 0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


탑다운(Top-down)보다는 바텀업(Bottom-up). 화려함보단 소탈함. 한번 결단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추진력을 보이지만 결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누구보다 기업 경영, 그리고 증권업에 진심인 오너. 뻔한 ‘금수저’ 중 한명이 아닌, 전문경영인보다 더 전문적인 오너라는 평을 듣기까지.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이 내린 수많은 선택들 중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 한국 대표 금융사를 향한 도전과 도약

2004년 당시만 해도 증권업계에서 김남구 회장의 존재감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부친인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사들인 옛 한신증권의 업계 위상이 선두까지 미치지는 못한 데다가 40대 초반 젊은 ‘재벌 2세’에 대한 기대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1991년 게이오대 대학원 졸업 후 동원증권에 입사하면서 증권맨으로 금융바다에 뛰어든 김 회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지 4개월 만에 한국투자신탁증권 인수에 성공하며 단숨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고래를 삼킨 새우’. 동원증권의 한국투자신탁 인수가 딱 그 격이었다. 김남구 당시 동원증권 대표이사는 인수전에서 경쟁했던 미국 칼라일그룹보다 불과 12억원 많은 금액인 5412억원을 제시하며 당시 매물이었던 한국투자신탁증권을 품에 안았다. 공교롭게도 김재철 명예회장이 한신증권 인수시 경쟁했던 태평양화학, 미륭건설과 불과 250만원 안팎의 금액 차로 승리를 따낸 것과 묘하게 닮았었다.

독자 노선을 택한 김 회장의 행보는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같은 해 12월 동원그룹에서 완전히 독립하며 이듬해 사명 역시 동원금융지주에서 한국투자금융지주로 바꿔달았다. 동원이라는 그늘을 벗어나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사로 성장시키겠다는 그의 의지는 일찌감치 공표된 셈이다.

한국투자증권 인수로 단숨에 5위권에 진입한 회사는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김 회장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IB가 되겠다는 목표로 ‘비전 2020’을 선언하며 IPO, 인수영업 등 IB업무와 자산관리(AM) 영업을 강화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했다. 해외사업을 확대하는가 하면 선진금융기관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한국형 투자은행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기자본 확대는 필수였다. 2009년 말 1조원대였던 자기자본은 2015년 3조원, 2020년 5조원, 그리고 2023년 현재 8조원을 넘어섰다.

김 회장에게도 아쉬운 순간은 있었다. 2015년과 2016년 증권업계 최고 이슈였던 대우증권과 현대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김 회장의 석패였다. 당시 인수전 패배를 두고 한국투자증권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도 적잖았다. 어느새 규모가 경쟁력이 돼 버린 자본시장에서 좋은 먹잇감을 놓친 것은 자사의 성장 기회 상실일 뿐 아니라 승자에게 짓눌릴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오히려 “달라진 것은 없다”며 흔들림없는 경영을 숫자로 증명해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동안 증권업계 순이익 기준 1위를 차지한 건 바로 한국투자증권이었다. 주식위탁매매수수료 등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투자금융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꾸준히 확대했다. 저금리 시대에 부동산 투자에 대한 열기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한국투자증권은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2020년 미래에셋증권에 잠시 밀렸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한 수익성 확대를 기반으로 2021년 다시 1위를 회복하며 흔들리지 않는 위상을 보여줬다.

자회사들을 통한 탄탄한 수익 구도도 김 회장이 ‘위기의 강자’임을 확인시켜주는 데 한 몫했다. 이어 2017년 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되며 은행지주사로 변모한 뒤 한국투자증권은 초대형 투자은행으로서 또 한번의 진화를 이뤄냈다.


■ 러닝메이트 유상호의 활약

한국투자증권이 이 같은 성장을 거두기까지 김 회장 곁을 지킨 오랜 ‘러닝 메이트’들이 있다. 유상호, 이강행 부회장은 지금도 김 회장이 깊은 신뢰를 갖는 키맨들이다.

특히 유상호 부회장은 2007년 당시 김 회장이 9개월간의 ‘삼고초려’ 끝에 영입에 성공해 최연소 최고경영자(CEO)로 지휘봉을 잡은 뒤 업계 최장수 CEO가 되기까지 무려 12년간 김 회장의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감당했다.

오늘날 한국투자증권이 업계에서 대형사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던 데에는 유 사장의 공이 적지 않다는 게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그는 취임 1년 만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다양한 인재를 영입하고 차세대 IT시스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등 차별화된 전략으로 이목을 끌었다. 금융의 도약기에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던 그의 판단대로 한국투자증권은 2011년 이후 3년 연속 업계 1위 실적을 달성했다. IPO 시장에서는 물론 자산관리 부문도 자회사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을 통한 시너지를 통해 수익성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글로벌 IB라는 비전을 향해 달리는 김 회장이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때마다 함께 뛴 파트너 역시 유 부회장이었다. 그중에도 2010년 베트남 현지 합작증권사 ‘KIS 베트남’ 인수를 위해 김 회장과 유 부회장은 수년간 신뢰를 쌓고 네트워크를 넓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를 포함해 앞선 두차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 당시 유 부회장의 출마설은 끊이지 않았다. 금융투자시장의 성장기의 한복판에서 업계를 이끌어 온 유 부회장이 시장에서도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

하지만 유 부회장에 대한 김 회장의 신뢰는 여전하다. 현재도 김 회장이 주력하고 있는 글로벌 사업 확대에서 유 부회장은 중심에 있다. 뉴욕을 비롯한 한국투자증권의 글로벌 전략 핵심 기지마다 유 부회장은 여전히 최전선의 ‘지휘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 정통 IB맨 정일문의 파워

2018년 11월, 김 회장이 한국투자증권의 새로운 CEO 인사를 내놨을 때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유 부회장의 연임 기록이 멈춘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리더를 통해 김 회장이 그리는 한국투자증권의 새로운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시장은 그의 선택에 주목했다.

김 회장은 ‘포스트 유상호’로 ‘정통 IB맨’ 정일문 사장을 택했다. 당시 내부에서 또다른 후보로 거론됐던 김성환 부사장이다. 현재 개인고객그룹장을 맡고 있는 김 부사장은 부동산 PF부문에 특화된 인물로 평가됐다. 결국 김 회장은 한국투자증권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여온 기업공개(IPO) 등 IB 부문 전체에서 잔뼈가 굵은 정 사장을 선택해 그에게 경영을 맡겼다.

특히 김 회장은 정 사장 취임 전까지 약 3년간 개인고객그룹을 맡기며 새로운 미션을 던져줬다. 증권사의 기본이자 핵심인 현장에서 정 사장의 능력을 평가하려던 김 회장의 의도에 맞게 정 사장은 개인자산관리부문에서 2조원 이상의 수탁액을 늘리는 등 성과를 냄으로써 미션을 훌륭히 성공해냈다.

취임 후 만 5년을 맞은 정 사장은 서서히 경영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이다. 유상호 체제에서 증권사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정 사장은 업계 최고 증권사라는 입지에 걸맞는 직원 대우와 복지 등 세밀한 부분을 챙겼다.

IB맨 시절 30년동안 300만km를 누볐다는 정 사장은 직원들과 스킨십을 통해 한투 특유의 소통 문화를 여전히 강조한다. “내부 출신인 정 사장을 통해 조직이 보다 안정화됐다"는 평도 나온다.

■ 12월, 다시 임박한 김남구의 선택

찬바람이 부는 계절. 12월 그룹의 임원 정기인사를 앞두고 한국투자증권에도 긴장감이 흐른다.

긴 호흡으로 경영진을 신뢰하는 김 회장의 인재술을 생각하면 잦은 CEO 교체는 그의 이력에 잘 없었다. 다만 정 사장이 어느새 5년 임기를 이어온데다 내년 금리 인상기 종료에 따른 시장 변화를 또 한번의 기회로 삼으려는 김 회장의 경영전략이 어떤 결정으로 이어질지는 변수다.

올해 상반기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영업이익은 4467억원. 업계 4위 수준이다. 수익구조 다변화를 추구해왔지만 PF 시장 불황에 따른 충당금 여파 등으로 남은 하반기 실적 역시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9월말 현재 한국투자증권의 부동산 PF 신용공여 규모는 2조2986억원으로 증권업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글로벌 IB라는 김 회장의 목표까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한국금융지주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미래에셋증권을 비롯해 증권업계에 일고 있는 세대교체 흐름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김 회장은) 인재술에서 워낙 신중한 스타일이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쟁사들 상황이나 업계 분위기보다는 내년과 그 이후 경제 전반의 상황과 다양한 변수들, 내부적인 조직 변화의 필요성, 새로운 인물의 적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선의 판단을 하시지 않겠냐”고 했다.

[뷰파인더] 코너는 국내 금융회사의 이슈와 전략을 조금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현재의 기업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업의 발자취, 그간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업 CEO와 대주주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겠죠.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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