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개월 삼성생명 주가 흐름(자료=KRX)


삼성생명 주가가 최근 5거래일 연속 12만원 위에서 움직입니다. 16일에는 장 중 한때 13만원을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의 역사적 고점(13만8500원)까지 뚫을 기세입니다. 시가총액은 25조원을 넘어 코스피 20위권에 진입했습니다. 지난 3일 대통령선거 이후 불과 9거래일 만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해당 기간 주가상승률은 26.9%에 달합니다.

한 가지 눈여겨볼 지점은 대선 전이나 후나 외국인 지분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입니다. 최근의 주가 급등은 국내 기관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5~6월 투자자별 매매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달 11일 대선 후보 확정 시점까지도 거래량과 주가에 큰 변동이 없다가 여권의 후보 단일화가 불발되고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질 무렵(5월19일)부터 기관들의 집중적인 매집이 진행됐습니다. 외국인의 경우 대선 후 이틀 정도만 집중 매수하고 이후에는 줄곧 매도 우위 흐름입니다.

해석해 보자면 외국인은 대선 후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에 의미를 둔 반면, 국내 기관들은 더 나아가 상법 개정 등 ‘정권교체 효과’까지 주가에 반영시키고 있는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대선 전이나 후나 삼성생명의 펀더멘탈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금리 인하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건전성 관리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죠. 회사의 본질적 변화가 아닌, 정치적 이벤트로 급등한 주가는 되돌려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이번 이벤트만큼은 예외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번 정치적 이벤트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생명의 CEO는 삼성생명의 이익만을 위해 전력 질주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미션인 삼성그룹 전체를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삼성생명이 삼성생명만의 이익을 위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8.51%를 전부 또는 일부 매각하면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홍원학이라는 사람을 삼성생명 CEO에 앉혀준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입니다. 홍원학 사장에게 삼성생명 일반주주의 이익이 지배주주의 이익보다 우선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되면 삼성생명 CEO는 삼성그룹 전체가 아닌, 삼성생명의 이익만을 위해 전력 질주해야 합니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일방적으로 지배주주 편만을 들 수는 없는 것이죠. 그랬다가는 바로 소송감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끊임없이 자행돼 온 많은 편법들, 즉 쪼개기 상장, 자사주의 마법, 승계를 위한 주가 누르기 등이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증권가에서는 계열사 지분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 이내로 규정한 보험업법을 고려했을 때 삼성생명이 앞으로 매각할 삼성전자 지분이 6%(약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삼성생명의 3월말 기준 총자산은 319조원인데, 이의 3%는 9조5700억원입니다. 17일 종가 기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8.51%) 평가액은 29조2769억원입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30조원 지분 중에 10조원만 남기고 20조원은 처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분할 지분을 그룹 지주사인 삼성물산이 받아 가고 말고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삼성생명은 지분 매각 차익의 일부를 과거 유배당 보험상품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삼성생명 보험계약자의 보험료(5444억원)를 토대로 삼성전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5444억원의 지분가치가 29조원으로 불어났으니 보험계약자들이 받을 배당금 수익은 천문학적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생존자가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려 45년 전 투자였으니까요. 40세에 가입했다면 현재 85세입니다. 해당 상품 가입자들은 과거 ‘이익배당금 10조원 지급’ 등 여러 차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이런 정황을 고려했을 때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20조원어치를 처분한 뒤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할 금액은 6조원 안팎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법인세(약 3조원)를 포함해도 나갈 돈은 10조원을 넘기지 않는다는 계산입니다. 이는 삼성생명 재무제표에 10조원 이상의 이익잉여금이 일시에 잡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삼성생명 주가를 짓눌러 왔던 자본활용 비효율성 문제와 지배구조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자본 확대에 따른 건전성 개선, 주주환원 확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 되면 현재의 주당 12만원 가격은 결코 비싸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삼성전자 지분 매각이라는 변수를 빼고 보면 과연 현 주가가 적정한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릅니다. 삼성생명의 3월말 기준 ROE(자기자본이익률)는 5.97%입니다. 22개 생보사 평균(8.58%)에 한참 못 미칩니다. 그럼에도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75배로 0.2~0.3배 수준에 머물고 있는 다른 상장사들(한화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을 압도합니다. 생보업계 절대강자의 지위를 감안하더라도 ‘삼성 프리미엄’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게다가 금리 하락기여서 지급여력(K-ICS)비율 급락 등 생보업계의 수익성과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입니다. 삼성생명은 1년 반이 지나도록 아직 밸류업 프로그램도 구체화시키지 못했습니다. '12만원도 싸다'는 시각의 다른 한편에 ‘펀더멘탈에 비해 주가가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대선 이후 외국인들은 삼성생명의 투자가치를 펀더멘탈 수준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국내 기관들은 삼성전자 지분 매각 등 미래가치에 더 포커스를 맞추는 분위기입니다. 과연 상법 개정은 조만간 이뤄질까요.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까요. 삼성생명 주가 상승세는 지속될 수 있을까요. 삼성생명의 올해 최고가는 얼마일까요.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답이 나오겠지만 현재로선 선뜻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자본시장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보유 지분율은 평균 3.5%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지닌 의결권은 내부 출자 구조를 통해 60%에 달합니다. 모 애널리스트는 상법 개정만 이뤄져도 최소 40~100% 이상의 주가 상승이 가능하다고 분석합니다. 후진적 지배구조, 소액주주 미보호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30~60% 할인 거래되고 있는데 이런 악습이 일시에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죠.

삼성그룹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을 통해 이미 지배구조 변화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오랫동안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 온 국내 소액주주들이 따뜻한 볕을 만끽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