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라고 봐야 할까요?"
SK에코플랜트의 건설사 색채가 옅어지고 있다. 아시아 대표 환경기업을 표방한 후 3년 가까이 그려낸 덧그림의 결과다. 건설업계 안팎에서는 최근 건설경기 악화와 맞물려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장래에는 SK에코플랜트를 건설사로 보기 더 힘들어지지 않겠냐는 평가도 나온다. 1977년 선경그룹(현 SK그룹) 품에 안긴 이후 40년이 넘게 국내 주요 건설사의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건설업자가 아닌 환경에너지업자의 이미지가 확실히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SK에코플랜트 수송사옥(사진=SK에코플랜트)
■ '중동 붐' 함께했던 SK에코플랜트, 플랜트부터 주택 강자까지
SK에코플랜트는 1962년 설립된 협우산업을 모태로 한다. 협우산업은 설립 3년 만에 건설업 허가를 받았다. 이후 1977년 선경그룹에 인수돼 삼덕과 통합하면서 '선경종합건설'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선경은 사우디아라비아 내에 조경공사 및 하수도 공사 등 주택은 물론 종합건설업 진출을 위해 공을 들였다.
선경종합건설은 이후 선경그룹의 주요 플랜트 공사를 도맡으면서 성장했다. 인도네시아 내 그룹 플랜트 공사와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정유공장 현대화 프로젝트도 수행하면서 해외 플랜트 역량도 쌓았다.
특히 1984년에는 선경종합건설에서 선경건설로 사명을 변경한 뒤 90년대 들어서 업계 최초 아파트 브랜드 선경 호멕스를 론칭해 주택사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1980년대에는 시공능력평가순위 30위권이었으나 플랜트의 탄탄한 역량과 주택사업의 성공적인 진출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SK건설로 사명을 바꾼 1998년에 이르러서는 9위에 오르면서 10위권 진입까지 성공했다. 2000년대 초에 들어서는 아파트 브랜드 'SK뷰'와 오피스텔 브랜드 'SK HUB'를 선보이는 등 주택 시장에 지속적으로 공을 들이면서 시공능력평가 순위 10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SK에코플랜트 자회사 테스가 준공한 라스베이거스 공장 전경. (사진=SK에코플랜트)
■ 위기의 플랜트,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친환경·에너지
쾌속성장하던 SK건설은 2002년에 1250억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9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1917억원에 달했다. 손실처리한 대손충당금만 1134억원에 달했다. 멕시코 석유화학단지에서 대규모 공사 미수금이 발생한 탓이다. 악화된 재무지표로 2003년과 2004년에는 시평 순위가 12위, 14위로 연속해서 내려갔다.
SK건설의 부진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규모 영업손실이 발생한 이듬해 곧바로 129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당기 순이익도 198억원 수준으로 적자를 벗어나면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이어 주종목인 플랜트에서 잭팟을 터트렸다. 2005년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OC)로부터 12억달러 규모의 대형 플랜트를 수주했다.
그러나 플랜트에서 다시 발목이 잡혔다. 2011년 수주한 사우디 가스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손실로 2013년 영업적자 5540억원을 냈다.
플랜트로 울고 웃던 SK건설은 결단을 내렸다. 포트폴리오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고 아시아 대표 환경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구상을 그렸다.
SK건설은 2020년 국내 수처리·폐기물 처리 전문회사 EMC홀딩스(현 환경시설관리) 인수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종합환경기업으로 입지 다지기에 나섰다. 이듬해에는 SK건설에서 23년만에 사명 변경에 나섰다. 종합환경기업을 표방하는 SK에코플랜트의 시작이었다.
SK에코플랜트로 사명변경과 함께 올해까지 총 3조원을 투자해 환경기업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내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이른바 '볼트온(Bolt-on) 전략' 아래 싱가포르 폐배터리 리사이클 기업 '테스(TES)'를 인수했고 북미 폐배터리 재활용 혁신기업 어센드 엘리먼츠와도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국내에서는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영위하는 삼강엠엔티(현 SK오션플랜트)까지 품었다. SK에코플랜트의 국내 환경자회사 수는 2020년 1개에서 올해 24개까지 늘었다.
SK에코플랜트 자회사 SK오션플랜트가 국내 최초로 해상풍력 발전기 하부구조물을 제작해 대만 장화연 해상풍력발전단지로 수출하는 모습. (사진=SK에코플랜트)
■ "쓰레기, 돈이 됩니다"…투자 성과 본격화에 재무 건전성도 한숨돌려
SK에코플랜트가 환경·에너지 사업에 집중하는 동안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놓고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2021년 플랜트 사업 부문 일부를 물적분할하자 내부에서 잡음이 나오기도 하는 등 포트폴리오 전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올해 물적분할한 플랜트 사업 부문을 새로운 자회사인 SK에코엔지니어링으로 흡수합병하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됐으나 초기에는 직원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이와 함께 공격적인 투자로 인한 재무 건전성도 불안 요소로 떠올랐다. SK에코플랜트의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으로 2021년말에 420%를 기록했다. 기업공개(IPO)를 염두에 두고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RFRS)으로 변경하면서 해당 부채 비율이 573%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을 226% 가량까지 낮췄다. 올해 3분기말 기준으로는 210% 수준을 나타내는 등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환경에너지 사업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 투자 성과는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6조5138억, 영업이익은 2981억원을 거두고 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3.1%, 76.2%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SK오션플랜트의 실적 반영이 호실적을 견인했다.
환경에너지기업으로의 포트폴리오 전환도 한눈에 보인다. 2021년에 아파트와 주택사업을 포함한 솔루션 부문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4.7%였으며 환경·에너지가 15.3%에 불과했지만 올 3분기 기준으로는 환경·에너지 부문 매출 비중이 35.1%까지 증가했다.
SK에코플랜트 자회사 테스의 싱가포르 사업장에서 작업자들이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설비를 점검하는 모습. (사진=SK에코플랜트)
■ 여전한 환경기업 성장성, IPO까지 책임질까
SK에코플랜트는 폐기물 처리와 같은 다운스트림 외에도 폐배터리 등 고부가가치 리사이클링 기술 및 시장 확보에도 나서면서 성장성을 더욱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말 그대로 쓰레기를 고부가 광물을 만드는 연금술을 선보이고 있다. 정확히는 버려진 배터리를 '광맥'으로 삼고 이를 채굴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 국내 유수의 연구기관과 함께 니켈·코발트 97%, 리튬 90% 등 희소금속 회수기술을 개발한 게 대표적이다.
SK에코플랜트는 '폐배터리 수거-리사이클링-소재-배터리'로 이어지는 공급망 및 밸류체인 글로벌 거점을 갖췄다는 점도 성장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SK에코플랜트의 남은 과제는 IPO다. 당장의 건설사의 이미지가 옅어지고 있다는 점은 IPO 측면에서는 호재로 여겨진다. 건설사는 경기 변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안전 사고 문제 등 투자자나 회사 입장에서 적지 않은 리스크가 상존한다. 반면 환경·에너지업은 이 같은 문제에서 한발짝 떨어져있다.
문제는 시장 자체가 좋지 못하다. 투자 심리 악화로 IPO 시장에 한파가 닥쳤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IPO를 노린 주요 기업들이 수요예측에서부터 찬바람을 맞는 사례도 나온다.
SK에코플랜트도 지난해 대표 주관사를 선정하고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국내외 경제, 증시 등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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