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수소환원제철개발센터 (사진=포스코)

■ “설비 다시 지어야 감축된다”…구조적 한계

탄소중립 시계가 빨라지며 가장 먼저 절벽 앞에 선 산업은 탄소 고배출 업종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철강이다. 감축을 위해서는 고로·전로 등 핵심 설비를 대규모로 교체해야 하지만, 투입되는 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인 데다 투자 대비 감축 성공을 확신할 수 있는 기술적 보장도 없다.

철강은 산업 부문 전체 배출의 약 20% 안팎을 차지하는 대표적 난(難)감축 산업이다. 철강산업의 감축 해답은 수소환원제철 전환과 전기로 확대로 들 수 있다. 이는 기존 고로 시스템을 사실상 해체하고 수십조 원 규모의 설비를 다시 짓는 작업과 다름없다.

철강업계가 2030년까지 투입해야 할 감축 관련 투자 규모는 40조~5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한국철강협회 분석에 따르면 포스코가 보유한 고로를 모두 수소환원제철 설비로 교체하면 매몰비용 27조 원과 신규 설비 건설비 27조 원이 더해져 약 54조 원이 필요하다. 현대제철까지 포함하면 총 68조5000억 원이 넘는다. 공정 하나에 수천억~수조 원이 투입되는 셈이다.

■ 수소환원제철, ‘꿈의 제철’이지만… 경제성·전력수급 모두 오르막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물만 배출하는 ‘무탄소 공정’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존 고로 방식 대비 생산비용이 최대 69% 높고 탄소 1t을 감축하는 데 91~239달러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면 고로에서 나오던 부생가스가 사라져 자가발전 기반이 무너진다. 전력 수요는 기존 대비 수배 이상 증가해 전기로 생산원가가 20~30%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철강사의 감산 또는 생산비 급등이 불가피하다.

현대제철은 독자적인 전기로를 구축해 탄소중립에 나선다. (사진=현대제철)

■ 2030년 상용화 전망한 정부…현실은 아직 데모 플랜트

정부는 산업부문 공청회에서 수소환원제철의 2030년 상용화 기반 구축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한참 뒤에 있다. 포스코는 자체 공법인 ‘HyRex’를 기반으로 연 30만t 규모의 데모 플랜트를 짓고 있으며 2030년에야 실증 플랜트 구축, 2032년 상용 플랜트(250만t)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애초 2026년 구축 예정이던 실증 플랜트 일정도 이미 지연됐다.

연구결과와 기술 완성도에 따라 상용화 시기가 더 늦춰질 가능성도 열려 있어 인프라가 완성 되기도 전에 감축 목표를 먼저 달성해야 할 수 있다. 정부가 제시한 감축 로드맵이 기술과 인프라의 현실속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

철강 감축의 필수조건은 청정수소 안정 공급이다. 그러나 정부 목표(2030년 6GW 공급)와 실제 가용량(2GW 내외)의 격차는 매우 크다. 대부분이 계획·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고, ▲수소 파이프라인 ▲운송망 ▲저장시설 등 기본 인프라도 구축되지 않았다. 기업이 자체 조달하면 물류비가 생산비를 웃도는 ‘역(逆)경제성’이 발생한다.

■ 한국 제조업의 체질 변화 흔들 구조적 전환…기업 혼자 감당 못해

철강은 제조업 가치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기초소재 산업이다. 이 산업이 흔들리면 자동차·조선·기계 등 후방산업 전체의 원가와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2030년 감축 목표만 앞서가는 지금의 구조는 철강산업의 현실적 전환을 어렵게 만든다. 기술·경제성·인프라가 모두 불안정한 상황에서 설비교체만 요구하는 방식은 결국 기업의 조기 폐기 부담과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뿐이다.

기업이 오랜 시간 공들여 세워 온 감축 로드맵이 현실성과 지속가능성을 갖추려면 국가 전략 차원에서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정부의 실행력과 인프라 설계능력, 그리고 목표 제시에 맞춘 속도감이 한국 산업의 탄소 전환 가능성을 가르는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