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부터 이석용 농협은행장,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전속모델 변우석, 지준섭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2024년 9월 22일 농협중앙회 본사에서 쌀 소비 촉진 상품 'NH든든밥심예금' 가입행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자료=NH농협은행) ‘농협금융은 왜 이렇게 잘 나가는 거야?’ 기자가 아닌, 금융 소비자로서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 하나입니다. ‘전원일기’ 세대인 기자에게 농협은 말 그대로 농업협동조합, 즉 농민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세를 키우더니 지금은 국민, 신한, 하나, 우리에 이어 대한민국 5대 금융지주의 자리에 있습니다. NH농협은행은 시중은행의 일원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은행은 일반은행과 특수은행으로 분류되는데 NH농협은행은 수협은행,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과 함께 특수은행에 속합니다. 일반은행에는 시중은행(6개), 지방은행(6개), 인터넷전문은행(3개)이 있죠. NH농협은행과는 별도인 지역단위 농협의 경우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처럼 조합원 상호 간의 원활한 자금 융통을 꾀한다는 점에서 상호금융기관으로 분류되는, 독특한 조직입니다. 60년이 넘는 농협 역사에서 2012년은 매우 특별한 해였습니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이른바 ‘신경분리’가 단행된 해입니다. 농협은 농협법에 따라 농림수산식품부가 감독의 주요 주체였습니다. 하지만 신경분리 이후 금융 기능을 수행하는 신용사업(농협금융지주회사)은 금융위원회가 관리감독 주체가 됩니다. 금융 관련 법을 우선적으로 적용받으면서 독립경영이 보장됐지만 지분은 농협중앙회가 100% 갖는 독특한 지배구조가 만들어진 것이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은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에 당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신경분리’를 주축으로 하는 사업구조 개편과 6조원의 정부지원금 조달을 연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법이 통과되고 2012년 3월 농협금융지주가 출범했지만 신충식 초대 회장은 취임 98일 만에 자진 사퇴합니다.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재무부 출신의 신동규 2대 회장이 바통을 물려받았지만 역시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납니다. 농협중앙회와 마찰이 잦았던 그는 떠나면서 “농협금융 회장은 제갈량이 와도 안 되는 자리”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임종룡 3대 회장(현 우리금융 회장)이 취임하면서 조직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농협중앙회와의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정부지원금과 금융당국의 암묵적 지원을 바탕으로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우리금융저축은행 인수에 성공합니다. 이후 농협금융 회장 자리는 관료들 몫으로 인식됐습니다. 6대(손병환) 회장을 뺀 4대(김용환), 5대(김광수), 7대(이석준) 회장이 모두 관료 출신입니다. 그렇다고 농협중앙회가 손해본 장사를 한 것은 아닙니다. 금융당국 비호 아래 몸집과 수익을 몰라보게 키웠으니까요. 현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한 때 농협대학 총장을 맡아 농협 밥을 먹으며 재기에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이랬던 관료와 농협의 밀월관계가 올해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25대)이 취임하면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올해 초 NH투자증권 차기 CEO 인사권을 두고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마찰을 빚은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금감원은 지난 5월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진행하면서 이례적으로 “지주회사법, 은행법 등 관련 법규에서 정하는 대주주(농협중앙회) 관련 사항을 살펴보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에 규정된 ‘주요 출자자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금지’ 조항을 어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해당 법에서는 “은행지주회사의 주요출자자는 은행지주회사의 이익에 반해 주요출자자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인사 또는 경영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는 예전부터 농협금융지주에 대해 직·간접적인 인사권을 행사했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이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며 근본적으로 손을 볼 필요가 있다고 공언한 것이지요. 상황은 농협에 여러 모로 불리합니다. 올해 농협은행에선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졌습니다. 지난 3월과 5월 각각 110억원, 64억원 규모의 부당 대출 사고가 발생했고, 8월에는 120억원 규모의 직원 횡령 사고가 터졌습니다. 지난달에는 자체적으로 약 1700억원 규모의 부동산 PF 부실을 적발해 감사에 착수한 바 있습니다. 최근 우리금융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이슈가 크게 부각됐지만 금융사고 횟수나 규모 면에서 농협금융의 상황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준입니다. 금융당국은 농협금융이 금융사고에 특히 취약한 배경에 지배구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군 지부장을 맡고 있는 농협중앙회 출신 직원이 관할 은행지점의 내부통제를 총괄함에 따라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농협의 끈끈한 조직문화는 좋게 보면 ‘정(情)’이지만 나쁘게 보면 ‘끼리끼리’ 청탁 문화가 만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명절 때마다 주요 간부의 집 앞에는 선물보따리가 산처럼 쌓입니다. ‘신뢰’가 자산인 금융기관에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고가 빈번하면 당국으로선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원적인 처방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법이 어떻고, 내부통제가 어떻고 말들은 많지만 사실 핵심은 농협금융 회장에 관료를 앉힐 것이냐, 농협중앙회 인사를 앉힐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전·현직 관료들 입장에선 2012년 195조원에 불과했던 농협은행 자산을 지난해 397조원까지 키워준 공(功)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애써서 키워줬더니 은혜를 잊고 감히 마이웨이를 외쳐?’라고 내심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죠. 반대로 농협중앙회는 ‘엄연히 민간기업인데 이제는 관료 손아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15년 만에 부활된 직선 체제의 초대 회장인 강호동 회장은 조합원들로부터 ‘농협중앙회 권한 강화’ 얘기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중앙회 권한이 강화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은행업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입니다. 정부가 진입장벽을 높게 쌓아 과점 이익을 보장해 주는 대신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엄격한 룰을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은행이 연쇄 도산하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건전성 규제는 아무리 지나쳐도 과함이 없습니다. 이는 만국 공통입니다. 최근 정부의 상생금융 요구까지 드세 은행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그래도 참습니다. 기분대로 맞서다가는 어떤 부메랑이 돌아올 지 모릅니다. 묵묵히 참고 견디다 때가 되면 다른 방식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는 것이 은행이 당국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아무 사고도 없고 건전성과 수익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이라면 농협중앙회의 ‘마이웨이’를 당국도 어느 정도 고려는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은행의 도덕성과 신뢰도가 바닥에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당국은 그 핵심 원인으로 농협중앙회의 인사 및 경영 간섭을 꼽고 있습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정부가 이익을 보장해 주는 농협금융지주의 흑자가 없으면 농협중앙회와 농협경제지주는 존립 자체가 어렵습니다. 농협중앙회 입장에서는 구성원들의 금융업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여기겠지만 경쟁 은행원들의 생각은 사뭇 다릅니다. 한 뱅커는 KB금융 사례를 듭니다. 현재 1등인 KB국민은행조차도 리테일 외에는 경쟁력이 없어 장기신용은행 직원들을 희생양 삼아 오랫동안 고생한 끝에 겨우 실력을 키울 수 있었는데 현 시점에서 농협중앙회의 마이웨이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등소평의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대외 방침처럼 실력을 더 키우기 전까지는 관료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시점이 묘합니다.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입니다.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이석용 농협은행장의 2년 임기가 내년 1월이면 동시에 끝납니다. 반면, 올해 취임한 강호동 회장의 경우 임기 4년이 보장돼 있습니다. 개혁 공약을 내걸고 직선으로 당선된 강 회장 입장에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당연합니다. 간선제 시절에도 중앙회 회장이 바뀌면 금융지주 CEO들은 물갈이가 되곤 했습니다. 올해 농협금융의 각종 사건사고를 감안하면 이석용 은행장의 연임은 어렵다는 평이 높은 게 현실입니다. 문제는 이석준 회장입니다. 이 회장은 관료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강 회장이 이번에 중앙회 인사로 갈아치운다면 관료와의 연합전선이 깨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5대 회장(김광수)까지가 '관료의 시대'이고 6대 회장(손병환)부터 내부 인사로 정상화됐는데 7대 회장(이석준) 때문에 다시 과거로 회귀했다는 인식을 강 회장은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관료들은 농협 회장 자리는 원래 관료의 자리인데 손병환 회장이 끼어들었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양측 모두 '비정상의 정상화'를 생각합니다. 강 회장의 무기는 4년 임기와 200만명의 '표'이고, 관료의 무기는 각종 인·허가와 감독권입니다. 공교롭게도 5대 은행장 모두 연말에 임기가 종료됩니다. 차기 CEO 선임을 두고 정권과 당국, 금융기관 간 물밑 접촉이 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4대 금융지주와 달리 농협금융은 강호동 회장이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농협중앙회는 다시 관료들과 밀월관계를 복원할까요. 아니면 '마이웨이'를 선언할까요. 저울추를 쥔 이복현 원장은 농협 지배구조에 어떤 용도의 메스를 들이댈까요. 그 결과는 과연 어느 쪽에 무게 추를 더해줄까요.

강호동의 ‘마이웨이’ 가능할까 [뷰파인더]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9.26 10:30 | 최종 수정 2024.09.26 14:09 의견 0
오른쪽부터 이석용 농협은행장,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전속모델 변우석, 지준섭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2024년 9월 22일 농협중앙회 본사에서 쌀 소비 촉진 상품 'NH든든밥심예금' 가입행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자료=NH농협은행)

‘농협금융은 왜 이렇게 잘 나가는 거야?’

기자가 아닌, 금융 소비자로서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중 하나입니다. ‘전원일기’ 세대인 기자에게 농협은 말 그대로 농업협동조합, 즉 농민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세를 키우더니 지금은 국민, 신한, 하나, 우리에 이어 대한민국 5대 금융지주의 자리에 있습니다.

NH농협은행은 시중은행의 일원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은행은 일반은행과 특수은행으로 분류되는데 NH농협은행은 수협은행,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과 함께 특수은행에 속합니다. 일반은행에는 시중은행(6개), 지방은행(6개), 인터넷전문은행(3개)이 있죠. NH농협은행과는 별도인 지역단위 농협의 경우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처럼 조합원 상호 간의 원활한 자금 융통을 꾀한다는 점에서 상호금융기관으로 분류되는, 독특한 조직입니다.

60년이 넘는 농협 역사에서 2012년은 매우 특별한 해였습니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이른바 ‘신경분리’가 단행된 해입니다. 농협은 농협법에 따라 농림수산식품부가 감독의 주요 주체였습니다. 하지만 신경분리 이후 금융 기능을 수행하는 신용사업(농협금융지주회사)은 금융위원회가 관리감독 주체가 됩니다. 금융 관련 법을 우선적으로 적용받으면서 독립경영이 보장됐지만 지분은 농협중앙회가 100% 갖는 독특한 지배구조가 만들어진 것이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은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에 당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신경분리’를 주축으로 하는 사업구조 개편과 6조원의 정부지원금 조달을 연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법이 통과되고 2012년 3월 농협금융지주가 출범했지만 신충식 초대 회장은 취임 98일 만에 자진 사퇴합니다.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재무부 출신의 신동규 2대 회장이 바통을 물려받았지만 역시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납니다. 농협중앙회와 마찰이 잦았던 그는 떠나면서 “농협금융 회장은 제갈량이 와도 안 되는 자리”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임종룡 3대 회장(현 우리금융 회장)이 취임하면서 조직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농협중앙회와의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정부지원금과 금융당국의 암묵적 지원을 바탕으로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우리금융저축은행 인수에 성공합니다. 이후 농협금융 회장 자리는 관료들 몫으로 인식됐습니다. 6대(손병환) 회장을 뺀 4대(김용환), 5대(김광수), 7대(이석준) 회장이 모두 관료 출신입니다. 그렇다고 농협중앙회가 손해본 장사를 한 것은 아닙니다. 금융당국 비호 아래 몸집과 수익을 몰라보게 키웠으니까요. 현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한 때 농협대학 총장을 맡아 농협 밥을 먹으며 재기에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이랬던 관료와 농협의 밀월관계가 올해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25대)이 취임하면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올해 초 NH투자증권 차기 CEO 인사권을 두고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마찰을 빚은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금감원은 지난 5월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진행하면서 이례적으로 “지주회사법, 은행법 등 관련 법규에서 정하는 대주주(농협중앙회) 관련 사항을 살펴보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에 규정된 ‘주요 출자자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 금지’ 조항을 어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해당 법에서는 “은행지주회사의 주요출자자는 은행지주회사의 이익에 반해 주요출자자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인사 또는 경영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는 예전부터 농협금융지주에 대해 직·간접적인 인사권을 행사했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이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며 근본적으로 손을 볼 필요가 있다고 공언한 것이지요.

상황은 농협에 여러 모로 불리합니다. 올해 농협은행에선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졌습니다. 지난 3월과 5월 각각 110억원, 64억원 규모의 부당 대출 사고가 발생했고, 8월에는 120억원 규모의 직원 횡령 사고가 터졌습니다. 지난달에는 자체적으로 약 1700억원 규모의 부동산 PF 부실을 적발해 감사에 착수한 바 있습니다. 최근 우리금융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이슈가 크게 부각됐지만 금융사고 횟수나 규모 면에서 농협금융의 상황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준입니다.

금융당국은 농협금융이 금융사고에 특히 취약한 배경에 지배구조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군 지부장을 맡고 있는 농협중앙회 출신 직원이 관할 은행지점의 내부통제를 총괄함에 따라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농협의 끈끈한 조직문화는 좋게 보면 ‘정(情)’이지만 나쁘게 보면 ‘끼리끼리’ 청탁 문화가 만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명절 때마다 주요 간부의 집 앞에는 선물보따리가 산처럼 쌓입니다. ‘신뢰’가 자산인 금융기관에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고가 빈번하면 당국으로선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원적인 처방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법이 어떻고, 내부통제가 어떻고 말들은 많지만 사실 핵심은 농협금융 회장에 관료를 앉힐 것이냐, 농협중앙회 인사를 앉힐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전·현직 관료들 입장에선 2012년 195조원에 불과했던 농협은행 자산을 지난해 397조원까지 키워준 공(功)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애써서 키워줬더니 은혜를 잊고 감히 마이웨이를 외쳐?’라고 내심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죠. 반대로 농협중앙회는 ‘엄연히 민간기업인데 이제는 관료 손아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15년 만에 부활된 직선 체제의 초대 회장인 강호동 회장은 조합원들로부터 ‘농협중앙회 권한 강화’ 얘기를 끊임없이 듣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중앙회 권한이 강화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은행업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입니다. 정부가 진입장벽을 높게 쌓아 과점 이익을 보장해 주는 대신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엄격한 룰을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은행이 연쇄 도산하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건전성 규제는 아무리 지나쳐도 과함이 없습니다. 이는 만국 공통입니다. 최근 정부의 상생금융 요구까지 드세 은행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그래도 참습니다. 기분대로 맞서다가는 어떤 부메랑이 돌아올 지 모릅니다. 묵묵히 참고 견디다 때가 되면 다른 방식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는 것이 은행이 당국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아무 사고도 없고 건전성과 수익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준이라면 농협중앙회의 ‘마이웨이’를 당국도 어느 정도 고려는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은행의 도덕성과 신뢰도가 바닥에 추락했습니다. 그리고 당국은 그 핵심 원인으로 농협중앙회의 인사 및 경영 간섭을 꼽고 있습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정부가 이익을 보장해 주는 농협금융지주의 흑자가 없으면 농협중앙회와 농협경제지주는 존립 자체가 어렵습니다.

농협중앙회 입장에서는 구성원들의 금융업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여기겠지만 경쟁 은행원들의 생각은 사뭇 다릅니다. 한 뱅커는 KB금융 사례를 듭니다. 현재 1등인 KB국민은행조차도 리테일 외에는 경쟁력이 없어 장기신용은행 직원들을 희생양 삼아 오랫동안 고생한 끝에 겨우 실력을 키울 수 있었는데 현 시점에서 농협중앙회의 마이웨이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등소평의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대외 방침처럼 실력을 더 키우기 전까지는 관료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시점이 묘합니다.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입니다.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이석용 농협은행장의 2년 임기가 내년 1월이면 동시에 끝납니다. 반면, 올해 취임한 강호동 회장의 경우 임기 4년이 보장돼 있습니다. 개혁 공약을 내걸고 직선으로 당선된 강 회장 입장에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당연합니다. 간선제 시절에도 중앙회 회장이 바뀌면 금융지주 CEO들은 물갈이가 되곤 했습니다.

올해 농협금융의 각종 사건사고를 감안하면 이석용 은행장의 연임은 어렵다는 평이 높은 게 현실입니다. 문제는 이석준 회장입니다. 이 회장은 관료 조직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강 회장이 이번에 중앙회 인사로 갈아치운다면 관료와의 연합전선이 깨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5대 회장(김광수)까지가 '관료의 시대'이고 6대 회장(손병환)부터 내부 인사로 정상화됐는데 7대 회장(이석준) 때문에 다시 과거로 회귀했다는 인식을 강 회장은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관료들은 농협 회장 자리는 원래 관료의 자리인데 손병환 회장이 끼어들었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양측 모두 '비정상의 정상화'를 생각합니다. 강 회장의 무기는 4년 임기와 200만명의 '표'이고, 관료의 무기는 각종 인·허가와 감독권입니다.

공교롭게도 5대 은행장 모두 연말에 임기가 종료됩니다. 차기 CEO 선임을 두고 정권과 당국, 금융기관 간 물밑 접촉이 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4대 금융지주와 달리 농협금융은 강호동 회장이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농협중앙회는 다시 관료들과 밀월관계를 복원할까요. 아니면 '마이웨이'를 선언할까요. 저울추를 쥔 이복현 원장은 농협 지배구조에 어떤 용도의 메스를 들이댈까요. 그 결과는 과연 어느 쪽에 무게 추를 더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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