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이 사업을 영위하는 근본적 이유는 이익 추구입니다. 자본시장의 중심에 있는 증권사들 역시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은 그들의 최대 목표이자 과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투자증권이 3개분기만에 1조원 이상의 이익을 기록한 것은 상당한 성과입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된 2500여개 기업 가운데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긴 기업 수는 41개. 상위 0.01%에 든 셈입니다. 특히 3년 전 부동산 경기 호조에 기댔던 때와 비교하면 제법 균형도 잡혔습니다. 기업금융(IB)의 경우 IPO 주관, 국내채권인수, ECM 주관 모두 리그 테이블 3위권을 지키면서 고른 이익을 확보했습니다. 빠르게 증가한 개인고객 금융상품 잔고를 기반으로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 수익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 1800억원대였던 이익을 10년 만에 이렇게 빠르게 키울 수 있었던 동력을 꼽자면 철저한 성과주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대표는 올해 초 취임식에서 “최고의 성과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최고의 인재들이 일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본래 성과체계가 자리잡은 증권업계라지만 CEO의 확고한 성과주의 원칙은 직원들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동기부여가 되기 마련입니다. 다만 이 같은 성과주의를 통해 거둔 이익이 '순도'까지 아름답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증권사들에게 편법과 위법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사실 일상 아닌 일상이 돼 버린지 오랩니다. 지난달 증시에 상장한 에이럭스 공모가 논란이 하나의 예입니다. 에이럭스의 상장 주관을 맡았던 한국투자증권은 공모가 산정 과정에 과거 실적을 활용하는 동시에 비교 기업으로는 미래 성장성을 기준으로 브이원텍과 로보스타를 선정하며 공모가를 희망밴드(1만1500~1만3500원) 상단보다 훨씬 높은 1만6000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이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51배 수준으로 이노스페이스(44배) 대비 높아 공모 흥행에 불안 요소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에이럭스는 상장 당일 무려 38% 넘게 하락하며 한국 IPO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라는 오명을 안아야 했습니다. 특히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날 장중 기관의 보유 물량이 대량 출회되며 낙폭이 확대됐는데 매도 주체가 바로 한국투자증권이었습니다. 지난 2020년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한투증권이 취득한 에이럭스 지분의 주당 단가는 3600원. 기업이 상장을 통해 적정한 가치로 평가받도록 돕고 투자시장에서 성장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할 증권사가 주관했던 기업의 주식을 상장 당일 매도했다는 것은 공모가 부풀리기에 대한 의혹을 스스로 키운 셈이죠. IPO 시장에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뻥튀기 상장 논란을 일으켰던 파두를 비롯해 사상 초유의 상장 무효 사태를 빚은 이노그리드까지 줄곧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수억원대 적자를 내고 있는 아이엠포텐과 상장 주관계약을 체결하며 안팎에서 '무리수'란 지적도 나왔습니다. 한투증권의 분기 손익만 따져보면 에이럭스 상장 주관을 통해 거둔 수수료 수익은 물론 매입 가격 대비 수배 높은 공모가에 주식 처분까지 성공했으니 운용 수익 역시 적잖은 재미를 봤을 겁니다. 다만 반복되는 논란으로 시장과 고객들 신뢰를 잃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실질적 이익은 어느 정도일까요. 주관사들의 IPO 기업 선정 및 가치평가의 적정성, 여기에 상장 직후 반복되고 있는 공모주들의 부진이 불러온 시장의 위축 손실은 또 어떻게 산정해야 할까요. 성과주의에 치우친 것은 비단 한국투자증권 만의 일이 아닙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유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입니다. 무려 13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손실을 발생시킨 신한투자증권의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LP) 운용 사고도,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를 도왔던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의 자사주 공개매입 및 유상증자 관련 이슈도 합법과 위법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증권사들이 스스로 놓은 덫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증권가에선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개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이 화두로 오르곤 하는데요. 잡음이 끊이지 않는 공모주 시장을 포함해 툭하면 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는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는 국내 자본시장의 후진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투자자들의 외면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증권사의 수익구조가 다변화됐다고 하더라고 투자자로부터 버림받은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장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국내 기업 중에서 20년 이상 영업이익 1조원을 유지해 온 기업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두 곳 뿐이라고 합니다. 이제 막 문을 연 증권사들의 1조클럽 시대는 과연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당장 손에 잡히는 이익에만 매달리지 말고 손가락 틈새로 새어나가는 투자자와 그들의 신뢰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민선의 View+] '1조클럽' 한투증권의 손익계산서

박민선 기자 승인 2024.11.12 15:24 | 최종 수정 2024.11.12 17:12 의견 0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이 사업을 영위하는 근본적 이유는 이익 추구입니다. 자본시장의 중심에 있는 증권사들 역시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은 그들의 최대 목표이자 과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투자증권이 3개분기만에 1조원 이상의 이익을 기록한 것은 상당한 성과입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된 2500여개 기업 가운데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긴 기업 수는 41개. 상위 0.01%에 든 셈입니다.

특히 3년 전 부동산 경기 호조에 기댔던 때와 비교하면 제법 균형도 잡혔습니다. 기업금융(IB)의 경우 IPO 주관, 국내채권인수, ECM 주관 모두 리그 테이블 3위권을 지키면서 고른 이익을 확보했습니다. 빠르게 증가한 개인고객 금융상품 잔고를 기반으로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 수익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 1800억원대였던 이익을 10년 만에 이렇게 빠르게 키울 수 있었던 동력을 꼽자면 철저한 성과주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대표는 올해 초 취임식에서 “최고의 성과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최고의 인재들이 일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본래 성과체계가 자리잡은 증권업계라지만 CEO의 확고한 성과주의 원칙은 직원들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동기부여가 되기 마련입니다.

다만 이 같은 성과주의를 통해 거둔 이익이 '순도'까지 아름답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증권사들에게 편법과 위법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사실 일상 아닌 일상이 돼 버린지 오랩니다.

지난달 증시에 상장한 에이럭스 공모가 논란이 하나의 예입니다. 에이럭스의 상장 주관을 맡았던 한국투자증권은 공모가 산정 과정에 과거 실적을 활용하는 동시에 비교 기업으로는 미래 성장성을 기준으로 브이원텍과 로보스타를 선정하며 공모가를 희망밴드(1만1500~1만3500원) 상단보다 훨씬 높은 1만6000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이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51배 수준으로 이노스페이스(44배) 대비 높아 공모 흥행에 불안 요소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에이럭스는 상장 당일 무려 38% 넘게 하락하며 한국 IPO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라는 오명을 안아야 했습니다. 특히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날 장중 기관의 보유 물량이 대량 출회되며 낙폭이 확대됐는데 매도 주체가 바로 한국투자증권이었습니다. 지난 2020년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한투증권이 취득한 에이럭스 지분의 주당 단가는 3600원. 기업이 상장을 통해 적정한 가치로 평가받도록 돕고 투자시장에서 성장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할 증권사가 주관했던 기업의 주식을 상장 당일 매도했다는 것은 공모가 부풀리기에 대한 의혹을 스스로 키운 셈이죠.

IPO 시장에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뻥튀기 상장 논란을 일으켰던 파두를 비롯해 사상 초유의 상장 무효 사태를 빚은 이노그리드까지 줄곧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수억원대 적자를 내고 있는 아이엠포텐과 상장 주관계약을 체결하며 안팎에서 '무리수'란 지적도 나왔습니다.

한투증권의 분기 손익만 따져보면 에이럭스 상장 주관을 통해 거둔 수수료 수익은 물론 매입 가격 대비 수배 높은 공모가에 주식 처분까지 성공했으니 운용 수익 역시 적잖은 재미를 봤을 겁니다. 다만 반복되는 논란으로 시장과 고객들 신뢰를 잃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연 실질적 이익은 어느 정도일까요. 주관사들의 IPO 기업 선정 및 가치평가의 적정성, 여기에 상장 직후 반복되고 있는 공모주들의 부진이 불러온 시장의 위축 손실은 또 어떻게 산정해야 할까요.

성과주의에 치우친 것은 비단 한국투자증권 만의 일이 아닙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유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입니다.

무려 13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손실을 발생시킨 신한투자증권의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LP) 운용 사고도,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를 도왔던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의 자사주 공개매입 및 유상증자 관련 이슈도 합법과 위법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증권사들이 스스로 놓은 덫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증권가에선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개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이 화두로 오르곤 하는데요. 잡음이 끊이지 않는 공모주 시장을 포함해 툭하면 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는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는 국내 자본시장의 후진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투자자들의 외면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증권사의 수익구조가 다변화됐다고 하더라고 투자자로부터 버림받은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장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국내 기업 중에서 20년 이상 영업이익 1조원을 유지해 온 기업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두 곳 뿐이라고 합니다. 이제 막 문을 연 증권사들의 1조클럽 시대는 과연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당장 손에 잡히는 이익에만 매달리지 말고 손가락 틈새로 새어나가는 투자자와 그들의 신뢰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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