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출처+셀트리온 사업보고서 및 2024년 4분기 IR자료)
2015년은 셀트리온에 있어 '출발점'이자 '변곡점'의 해였다. 국내외에서 램시마가 질주하면서, 그룹이 고속성장 본궤도에 올라서는 '도약의 시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소유와 경영의 분리'도 실시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이루려던 셀트리온의 '글로벌시장 점령의 꿈'은 10년 뒤 '매출 3조원 시대' 개막으로 돌아왔다. 램시마를 무기로 한 셀트리온의 '출발점'과 '변곡점'은 이제 '글로벌 빅파마 도약'을 향해 가는 중이다.
19일 셀트리온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3조5573억원을 기록하며 연매출 1년만에 1조원 넘게 덩치를 키웠다. 이는 전년 매출 2조1764억원을 63.45% 증가한 데다 10년 전에 비해선 외형이 무려 6배 가량 커진 것이다. 특히 지난해 실적 중 유럽(1조5468억원)과 북미(1조원)에서의 매출의 합이 2.5조원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거둬들인 매출은 전체에서 71%를 넘어선다.
셀트리온은 이 추세를 이어 올해 매출 5조원을 달성하고 2027년까지 매출액을 연평균 30% 이상 성장시키겠단 청사진을 제시했다. 수익성도 확대해 7% 이상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달성할 계획이다.
■10년만에 탄생한 램시마, '매출 3조 꿈' 이룬 효자
셀트리온이 지나온 발자취는 크게 ▲2000~2002 창업의 시기 ▲2003~2008년 기반의 시기 ▲2009~2014 개척의 시기 ▲2015~현재 도약의 시기로 분류된다. 셀트리온은 1999년 12월31일 인천 연수구청 7층 벤처센터에 단 2명의 창업멤버들과 함께한 넥솔이 모태다. 실업자 신세로 내몰린 서정진 회장은 이후 3년여간 다양한 비즈니스 가능성을 타진하고 바이오의약품 생산 설비를 구축해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셀트리온은 사업 초기 CMO, 즉 남의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비즈니스를 영위해 왔다. 회사 설립 5년만인 2006년 CMO 사업을 통해 거둬들인 첫 수익은 15억원.
그러나 셀트리온은 에이즈 백신개발 프로젝트 3상 임상시험이 모두 실패하는 등 시련을 겪으면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개발에 돌입해 첫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개발한다. 램시마가 한국판매허가를 획득한 것은 2012년 7월로, 설립 10년째가 되어서야 국내 시판을 시작한다. 이후 2014년 1월 두번째 글로벌 임상시험을 완료한 항체 바이오시밀러 허쥬마(유방암치료제)와 2016년 11월 세번째 바이오시밀러인 트룩시마(혈액암치료제)가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허가를 받는데 성공한다.
2015년을 그룹이 '도약의 시기'로 분류하는 데는 램시마를 통해 셀트리온이 고속성장 궤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램시마가 단일제품으로 누적 수출액 1조원을 달성, 셀트리온은 항체 신약, 백신, ADC(항체-약풀결합) 등 새로운 신약과 신기술 개발에 앞장서면서 글로벌 종합생명공학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춰 나간다. 그해 3월은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언하고 전문경영인에 의한 글로벌 경영 체제로 전환한 시기였다.
구체적으로 셀트리온 경영체제는 ▲설립 초기부터 생산, 임상 및 허가부문을 담당하고 램시마의 유럽 허가를 진두지휘한 기우성 부회장(당시 사장)이 생산, 품질, 임상, 허가 부문을 ▲창립멤버로 전략 기획 및 재무 담당을 국내외 투자유치를 이끈 김형기 부회장(당시 사장)이 경영관리, 재무, 연구개발을 ▲서 회장은 이사회 회장으로서 그룹의 미래비전 및 중장기 전략 구상, 해외네트워크 강화를 맡는 방식이었다. 즉, 각자의 역할을 굵직하게 따지면 ▲기우성·김형기 부회장이 기반이 다져진 제품 연구와 그룹 운영을 맡고▲서 회장은 시장개척에 앞장 선다는 것이었다.
■2015년부터 시작된 고속성장, 배경은 '영업맨 1호'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2월21일 모교인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제137회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졸업생들에게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 당시부터 서 회장은 주로 해외에 머물며 판촉을 독려하며 제품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특히 셀트리온 매출이 높은 영업이익으로 이어진 것은 해외 파트너사와 손잡고 현지 시장에 진출(통상 20~30% 수수료 지불)하기 보다 직접 판매체계를 구축한 영향이 컸다. 셀트리온은 유럽에서는 2020년 램시마 직접판매를 시작으로 2022년 하반기부터 트룩시마, 허쥬마도 직접판매를 시작하며 유럽 시장에서 전제품에 대한 판매 방식을 직접판매로 전환했다. 또 2023년에는 글로벌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 구조 역시 직접판매 형태로 전환했다.
서 회장은 지난해까지도 미국에 머물면서 영업활동을 진두지휘하며 처방확대를 이끌었고 싱가포르·홍콩·미국 등에서 실시되는 해외기업설명회도 직접 지휘했다. 스스로 "우리 그룹에서 영업현장에 가장 많이 다니는 사람이 나"라고 밝힐 만큼, 서 회장은 '셀트리온의 1호 영업맨'이기도 하다.
덕분에 셀트리온그룹은 10년새 외형이 6배 가량 커졌다. 2015년 6034억원이었던 매출은 4년뒤엔 '1조원(2019년 1조1285억원)'을 찍었고 또 3년 뒤엔 '2조원(2022년 2조22840억원)'을 넘어선 데 이어 또 2년만인 지난해 '3조원(2024년 3조5570억원)'을 기록한 것이다. 덩치가 커진 주된 배경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안착이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제품들은 전세계 11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특히, 주요 바이오/제약 시장인 유럽을 중심으로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미국 시장에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램시마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62%에 달하며, 램시마SC까지 합산하면 유럽 주요국가인 영국 88.8%, 프랑스 80%, 스페인 75.8%, 독일 73.8% 등 압도적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램시마SC만으로도 이들 EU5(유럽 5대 의약품 시장)에서 25%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미국에서 신약으로 판매되는 짐펜트라도 지난해 3분기말 기준 시장점유율이 27%에 달하고, 트룩시마는 유럽과 미국에서 30%대 점유율을, 허쥬마는 일본에서 72%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는 한편, 유럽에서도 29%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더욱이 셀트리온의 지난해 성적표는 서 회장이 지난 2023년 은퇴 2년만에 경영에 복귀 한 것을 두고 '구원투수'라 일컫던 시장 평가가 입증된 셈이다. 셀트리온은 2021년 3월 서 회장의 용퇴 선언에 '1호 영업맨'을 놓친 바 있다. 그 사이 셀트리온은 셀트리온이 개발한 국산 1호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인 '렉키로나주' 공급이 중단되고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 3사 합병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사업 환경이 급속히 악화됐으며 주가도 반토막 났다. 결국 서 회장은 2023년 3월 '특급 소방수'로 경영에 복귀했고 앞선 숙제들을 해결하며 주주들에게 보답했다.
셀트리온은 오는 25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통해 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의결할 계획이다. 서 회장의 임기 연장은 지난 2년간 보였던 글로벌 시장에서 회장으로써 내릴 수 있는 빠른 판단과 의사결정의 결실이었단 점에서 그룹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025년엔 매출원가율 20%, 10년 전 수준 달성 "YES"
(출처=셀트리온 사업보고서)
이제 남은 것은 셀트리온이 경영실적(IR)을 발표하며 세웠던 '매출 5조원'과 수익성 개선이다. 셀트리온은 올해 제품 확대에 따라 매출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바이오의약품 11개 제품의 라인업이 완성된 만큼 기존 제품의 안정적인 성장세와 신규 제품의 시장 확대 가속화를 발판으로 연매출 5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셀트리온은 신규 포트폴리오 출시와 원가율 개선, 비용 효율화로 내실을 다져 질적 성장세도 이어간단 전략이다.
실제 셀트리온은 10년 새 매출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지난해의 경우 52.73%를 보였는데, 이는 1000원어치 팔아 약 472.7원을 남겼다는 의미다. 셀트리온의 10년 전 매출원가율은 38.23%로 617.7원을 거뒀던 점을 감안하면 이익이 줄어든 셈이다. 이 때문인지 셀트리온 영업이익은 10년 전과 비교해 약 2배 성장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합병 직후인 2023년 4분기 63%까지 치솟았던 매출원가율이 지난해 4분기 45% 수준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 셀트리온은 고(高)원가 재고 소진과 3공장 생산 확대, 기존 제품 개발비 상각 종료 등에 따라 매출원가율이 빠르게 개선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낮은 제조원가의 신규 제품 비중 증가로 올해 4분기엔 20%대까지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합병 관련 판권 상각 종료 및 외형 성장에 따른 레버리지 효과로 올해는 영업이익 및 영업이익률 모두 큰 폭의 상승이 기대되고 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지난 2024년은 셀트리온 합병법인 출범 첫 해로, 핵심 사업인 바이오의약품의 글로벌 처방 확대를 통한 외형 성장을 실현한 한해였다"며 "올해는 새로운 포트폴리오 출시와 원가 개선 및 비용 효율화를 통해 양적·질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