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5' LG에너지솔루션 부스 전경. (사진=LG에너지솔루션)

미국 하원이 '해외 적대국 배터리 의존도 감소법'을 통과시키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한숨을 돌렸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전기차에 부정적인 시선를 보인만큼 불안 요소는 여전하고,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성장세도 무섭다. 국내 업계가 헤쳐나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최근 중국산 배터리를 대상으로 하는 '해외 적대국 배터리 의존도 감소법'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미국 국토안보부의 자금을 사용하는 경우 중국산 배터리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중국 CATL, BYD, EVE 등 6곳의 주요 배터리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다.

'해외 적대국 배터리 의존도 감소법'은 타 정부기관이나 민간기업의 구매 활동을 제한하지는 않지만, 향후 효력을 발휘한다면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미국은 중국산 배터리에 대해 45%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이번 법안을 시작으로 비관세 장벽을 더하는 방안이 입법화될 가능성이 높다.

위기에 놓인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게는 희소식이다. 미국서 추진 중인 ESS(에너지저장장치)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업계는 ESS용 LFP 배터리 생산 체제를 강화하며 양산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 같은 단기적인 호재에도 불구하고, 국내 배터리 산업이 근본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직후 전임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기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관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역시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IRA는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세액공제 방식으로 보조금을 지급, 전기차 구매 부담을 줄여주는 법이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과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69%에 달하며, CATL과 BYD 같은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업고 급성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 배터리 3사(LG엔솔·삼성SDI·SK온)의 글로벌 시장 합산 점유율은 약 14% 수준에 그쳤다.

특히 국내 업체들은 그동안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집중해 왔지만, 중국 기업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경제성을 확보하게 되자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LFP 배터리는 원가 절감과 내구성에서 강점을 보이며 전기차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캐즘을 돌파하기 위해 LFP 배터리가 탑재된 보급형 전기차가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대외적 불안 요소에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는 배터리산업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부족하다. 정부가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설비 투자에 대해 15% 세액공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영업손실을 내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SK온은 매년 3000억원 이상을 공장 증설을 위해 투입하지만 세액공제를 받은 적이 없다. 국내 세법은 세액공제 금액을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고, 적자 기업은 법인세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향후 흑자를 낸다면 그간의 투자금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시장 전망이 어두운 만큼 세액공제 가능성도 불투명하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과의 가격 경쟁 등에서 점유율이 밀리고 있고 미국 관세 영향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크다"며 "우리나라도 배터리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현실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