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판교 엔씨소프트 R&D 센터. (사진=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는 지난 10년 동안 게임 시장 변화 속에서 도전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모바일 시대를 맞아 ‘리니지M’으로 큰 성장을 이뤄낸 엔씨소프트는 이후 ‘리니지2M’, ‘리니지W’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모바일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신작 부진과 함께 체질 개선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면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 중이다.

■ PC 시대의 강자, 모바일로 재도약…‘리니지’ IP 확장과 글로벌 공략

2012년 이후 게임 업계는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전환되는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리니지’, ‘아이온’, ‘블레이드 & 소울’ 등 굵직한 PC온라인 MMORPG를 기반으로 입지를 다져왔던 엔씨소프트는 플랫폼 전환이 본격화된 시장 흐름에 맞춰 모바일 신작 개발에 뛰어들었다.

원작 ‘리니지’ IP의 핵심 요소를 자체 보유한 기술력과 결합해 최적화된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모바일 게임 개발에 착수했고, 그 결과 2017년 출시한 ‘리니지M’은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리니지M’ 출시 이후 그 해 연간 매출 1조 7587억 원, 영업이익 5850억 원을 기록하며 크게 성장했다. ‘리니지M’은 출시 8년차인 현재까지도 모바일 게임 매출 상위를 지키며 엔씨소프트의 핵심 타이틀로 자리 잡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에 이어 2019년 ‘리니지2M’, 2021년 ‘리니지W’를 차례로 출시하며 모바일 MMORPG 흥행 시대를 열었다. ‘리니지2M’은 기술적 완성도와 대규모 전투 시스템으로 주목받으며 모바일 MMORPG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니지W’는 ‘글로벌 원빌드’ 전략을 내세워 한국뿐만 아니라 대만,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도 매출 상위권을 기록했다.

특히, ‘리니지W’는 출시 직후 한국과 대만에서 구글플레이 매출 1위를 달성하며 엔씨소프트의 글로벌 사업 확대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 MMORPG의 불모지로 여겨지는 일본에서도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5위까지 오르는 등 국내를 넘어 아시아 시장에서도 ‘리니지’ IP의 존재감을 끌어올렸다.

■ 신작 부진으로 매출 감소, 조직 개편 및 스튜디오 체제 전환

그러나 2023년부터 매출 감소로 엔씨소프트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출시한 신작들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내면서 신작 및 장르 다변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2024년, 엔씨소프트는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한 변화를 택했다. 창립 27년 만에 최초로 공동대표 체제를 도입하며 변화의 중심에 섰고, 본사에서 직접 게임을 만들고 배급해 온 기존의 개발 방식에서 다수의 독립 스튜디오 체제를 도입했다. 본사에 과도하게 집중된 인력을 분산 배치해 빠르게 변화하는 게임 시장에 대응하고, 개발 전문성과 경쟁력을 높이려는 의도다.

엔씨소프트의 김택진·박병무 공동대표. (사진=엔씨소프트)

올해 2월 설립된 개발 스튜디오 3곳 ▲퍼스트스파크 게임즈 ▲빅파이어 게임즈 ▲루디우스 게임즈는 각각 ‘TL(쓰론앤리버티)’, ‘LLL’, ‘TACTAN(택탄)’의 개발을 맡고 있다.

올해 주목할 점은 엔씨소프트의 퍼블리싱 도전이다. MMO 중심의 대작을 개발해 직접 서비스해온 엔씨소프트는 많은 인력과 여러 방면의 전문성을 지닌 것에 비해 개발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내부적으로는 스튜디오 체제로 전환해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면서, 투자를 통한 외부 IP 확보로 퍼블리싱 역량까지 증명하겠다는 계획이다.

■ MMORPG, 슈팅, 전략, 서브컬처 등 다양한 신작 라인업 준비

내부 정리를 마친 엔씨는 올해 MMORPG, 슈팅, 전략, 서브컬처 등 다양한 장르의 신작 라인업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다. ▲아이온2 ▲LLL ▲TACTAN(택탄) 등 엔씨가 직접 제작 중인 대작을 포함해 ▲빅게임스튜디오와 협업해 선보일 서브컬처 신작 ‘브레이커스’ ▲미스틸게임즈와 협업해 선보일 ‘타임 테이커즈’ 등 외부 스튜디오 투자를 통해 확보한 IP의 퍼블리싱도 예정되어 있다.

중국 텐센트, 북미/유럽 아마존게임즈, 동남아 VNG 등 유수의 기업과 파트너십을 구축한 것도 긍정적이다. 각 지역별 서비스 노하우를 지닌 현지 파트너사와 협력해 시장 특성에 맞는 게임을 선보이는 전략이다. 또, 북유럽 스웨덴 소재 ‘문로버게임즈’, 동유럽 폴란드 소재 ‘버추얼 알케미’, 미국의 ‘엠티베슬’ 등의 게임 스튜디오에 투자하며 엔씨소프트가 직접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리니지’ IP를 통해 지난 10년간 모바일 시장을 지배한 엔씨소프트는 또다른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스튜디오 체제와 퍼블리싱 전략이라는 변화의 키워드를 통해 다양한 장르와 글로벌 시장을 향해 발걸음을 넓히고 있는 엔씨소프트가 향후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