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공지능(AI) 수도가 되겠다는 대한민국의 목표 실현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그래픽저장장치(GPU) 26만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레이몬드 테 엔비디아 부사장은 지난 30일 경북 경주에서 열리고 있는 APEC CEO 서밋의 부대행사인 온라인 사전브리핑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계획을 밝혔다. 해당 내용은 젠슨 황 CEO가 31일 오후 APEC CEO 서밋 특별연설을 통해 발표했다.

APEC CEO 서밋에서 연설하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사진=연합뉴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한국에 최대 26만개에 달하는 GPU를 우선 배치한다는 점이다. GPU는 AI 인프라의 필수 제품이다. AI 시대를 맞아 GPU는 전 세계적으로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 엔비디아의 계획은 한국이 AI 인프라 구축에 유리한 고지를 제공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 공급 받는 GPU는 최신 ‘GB200 그레이스 블랙웰’이다.

우선 정부는 공공 부문에 최대 5만개 GPU를 배치해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반도체 제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반도체 AI 팩토리'를 구축한다. 향후 수년간 5만개 이상의 엔비디아 GPU를 도입해 AI 팩토리 인프라를 확충하고, 엔비디아의 시뮬레이션 라이브러리 옴니버스(Omniverse) 기반 디지털 트윈 제조 환경 구현을 가속화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추진하는 AI 팩토리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지능형 제조 혁신 플랫폼이다. 삼성전자는 AI 팩토리 구축을 통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 및 양산 주기를 단축하고, 제조 효율성과 품질 경쟁력을 혁신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AI 팩토리 구축과 함께 엔비디아에 ▲HBM3E ▲HBM4 ▲GDDR7 ▲SOCAMM2 등 차세대 메모리와 파운드리 서비스도 공급해 글로벌 AI생태계에서 삼성전자와 엔비디아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방침이다. 또 이미 공급 중인 메모리 제품뿐만 아니라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대폭 향상시킨 HBM4 공급, 업계 최초로 개발한 고성능 그래픽 D램(GDDR7)과 차세대 저전력 메모리 모듈 SOCAMM2 공급도 협의 중이다.

SK그룹 역시 엔비디아의 GPU와 제조 AI 플랫폼 '옴니버스'를 활용한 ‘제조 AI 클라우드’를 구축한다. SK그룹은 이를 제조업 관련 공공기관, 스타트업 등에도 개방해 대한민국 제조업 생태계가 AI 기반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 나갈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과 젠슨 황 CEO는 이날 CEO 서밋에서 만나 관련 의견을 나눴다. 최 회장은 "SK그룹은 엔비디아와 협력해 AI를 국내 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끄는 엔진으로 만들고 있다"며 "이를 통해 산업 전반이 규모, 속도, 정밀도의 한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엔비디아 AI 팩토리를 기반으로 SK그룹은 차세대 메모리, 로보틱스, 디지털 트윈, 지능형 AI 에이전트를 구동할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양 측은 이번 협력으로 그동안 높은 비용과 장비 수급 등의 이유로 AI 도입에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제조업 기업들이 제조 AI를 실현하는 데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양 측은 IMM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파트너스, SBVA 등 벤처캐피털(VC)과의 제조분야 AI 스타트업 육성 및 지원에 함께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AI 메모리 주요 파트너로, 업계 최고 수준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HBM3, HBM3E의 핵심 공급사 지위를 이어 가고 있다. 최근에는 업계 최고 속도와 성능을 지원하는 HBM4에 대한 공급 협의를 고객과 마무리하고 4분기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본격적인 판매 확대에 나선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함께 '엔비디아 블랙웰' 기반의 새로운 AI 팩토리 도입을 통해 자율주행차, 스마트 팩토리, 로보틱스 분야 혁신을 위한 협력을 강화한다. 양사는 모빌리티 설루션, 차세대 스마트 팩토리, 온디바이스 반도체 혁신을 위한 AI 역량을 함께 높이고 미래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는 5만 장의 블랙웰 GPU를 활용해 통합 AI 모델 개발, 검증, 실증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양사는 한국 정부의 국가 피지컬 AI 클러스터 구축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관계자들과 협력, 피지컬 AI 생태계 발전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이는 약 3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수반한다. 핵심 추진 사항으로는 ▲엔비디아 AI 기술 센터(AI Technology Center) ▲현대차그룹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Physical AI Application Center) ▲ 데이터센터 국내 설립 등이 포함된다.

이밖에 LG그룹도 엔비디아 생태계에 합류한다. LG전자는 엔비디아와 협업해 로보틱스 기술 역량을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LG전자는 엔비디아가 선보인 범용 휴머노이드 추론모델 ‘아이작 GR00T’를 기반으로 자체 피지컬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두 회사는 학습 데이터 생성과 강화학습 기반 로봇 학습 모델의 연구 협력을 지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네이버클라우드도 엔비디아와 MOU를 맺고 AI 인프라 구축에 가속 페달을 밟는다. 양사는 현실 공간과 디지털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차세대 ‘피지컬 AI’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고, 반도체·조선·에너지 등 국가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AI 인프라를 구축해 산업 현장의 AI 활용을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