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역대급 성장 속에 290조원대를 돌파했다. 연간 70%에 육박하는 증가세를 보인 시장에서 자산운용사들은 고객들에게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의 1년 성적표를 돌아봤다. -편집자주


출발부터 여유는 없었다. 3, 4위간 격차는 불과 4400억원. 소수점 자리까지 따져봐야 할 정도의 점유율 차이는 수없는 엎치락뒤치락을 예고했다. 일각에선 1위권 경쟁보다 더 치열하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해 말 나란히 ETF 순자산 13조원대에 진입한 KB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올해 1월 14조원 돌파 테이프도 같은 날 끊었다.

초기 흐름은 KB자산운용에 불리하지 않았다. 상반기 코스피지수가 크게 상승하면서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강점을 보이는 KB운용의 RISE ETF가 탄탄한 버팀목 역할을 해준 덕이다. 실제 ‘RISE 200’(2조2000억원)은 RISE ETF 가운데 올해 순자산 증가율 2위에 등극 중이다.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ETF 가운데 KODEX200과 TIGER200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가속도를 붙여온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추격은 만만치 않았다. 상반기 잠시 주춤했던 엔비디아, 구글 등 라인업의 핵심을 차지하는 기업들이 활기를 되찾으며 ACE 대표 ETF들의 순자산도 덩달아 불어나기 시작했다.

KB운용은 6월 ‘RISE 단기특수은행채액티브’를 상장시키며 영향력 확대를 도모했다. 이 ETF는 상장 이후 14거래일만에 1조원을 긁어모으며 두둑한 창고 역할을 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사격 덕도 있었다.

KB운용은 7월 다시 7.8%의 점유율로 한투운용을 앞서는 듯했다. 하지만 상반기 불과 0.5%p 안팎이었던 양 사의 점유율 차는 지난달 처음으로 1%p 이상으로 벌어졌다. 순자산 격차는 4조원 안팎. 팽팽했던 줄다리기가 한투운용의 역전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미국 기술주'의 ACE, '국내 주식·채권'의 RISE

한투운용 ETF 라인업은 미국, 그중에도 기술주에 특화돼 있다. ACE로 리브랜딩 이후 ETF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한투운용의 배재규 사장은 최근 간담회를 통해 “제조업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단언했을 정도로 향후 시대 먹거리로 미국 기술주에 비중을 싣고 있다.

실제 한투운용의 올해 순자산 증가율 상위 ACE ETF들을 살펴보면 ‘ACE 미국S&P500’, ‘ACE 미국나스닥100’, ‘ACE 테슬라밸류체인액티브’, ‘ACE 미국나스닥100미국채혼합50액티브’, ‘ACE 미국대형성장주액티브’, ‘ACE 미국빅테크TOP7 Plus’등 미국 기술주 관련 상품들이 싹쓸이 중이다. 여기에 국내 최초 금현물 ETF인 ‘ACE KRX금현물’은 올해 금 투자 열풍을 타고 나홀로 2조8000억원 이상 불어나면서 숨은 공신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반면 KB자산운용 RISE ETF 순자산 증가 상위에는 ‘RISE 단기특수은행채액티브’, ‘RISE KOFR금리액티브(합성)’, ‘RISE 머니마켓액티브’, ‘RISE 종합채권(A-이상) 액티브’ 등 채권을 중심으로 한 단기형 상품들의 무게가 높았다.

KB운용은 올 한해 글로벌 ETF 라인업 확대를 위해 집중했다. 연초 이후 새롭게 상장한 총 19종 ETF 가운데 단 3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인도, 중국 등 글로벌 ETF로 짜여졌다. 이는 글로벌 상품을 강화함으로써 시장 성장 흐름을 따라가겠다는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는 모두 ETF 리브랜딩을 거친 주인공들이다. 한투운용은 2022년 ACE ETF로 리브랜딩한 이후 ETF 순자산총액이 7배 성장을 거두며 화려한 변신에 성공했다. 대표상품들의 수익률(‘ACE 글로벌반도체TOP4 Plus 기준 출시 이후 375%’) 역시 빵빵하다.

이런 가운데 한투운용은 ACE ETF 고객 가운데 42% 가량이 개인 투자자라는 점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ACE를 경험한 투자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 여기에 향후 새로운 투자자층 유입 확대로 인한 ETF 시장 성장 시 수혜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것이다. 실제 지난달 기준 개인 순매수 시장에서 한투운용이 차지한 점유율은 8.8%로 KB운용(4.2%)의 두배를 웃돈다.

반면 RISE ETF는 지난해 7월 리브랜딩 이후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되레 최근 ETF 사업본부장을 교체하면서 2년 새 세번째 ETF 부문 헤드를 맞았다. 내년 성장 전략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지만 구심점을 잃은 조직에서 당장 술렁임만 새어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ETF 시장이 300조원대를 넘어서는 것을 기점으로 성장세가 더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되는 지금, KB자산운용은 다시 3위 타이틀을 되찾으며 원상복귀할 수 있을까. 시장의 시선은 ACE와 RISE의 경쟁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