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 뷰어스=김재범 기자] 배우 김혜수의 카리스마는 또래 여배우들 가운데서도 ‘비교불가’란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독보적이다. 남자 배우들로 그 범위를 넓혀도 김혜수의 존재감은 확실하게 눈에 띈다. 최근 개봉된 작품 속 김혜수 활용법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김혜수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맛이 진해지는 ‘와인’과도 같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 진함의 베이스는 분명할 듯하다. 가벼움의 그것을 알기에 진함의 무게감도 터득한 김혜수의 연기는 맛이 확실하다. 장르를 불문한 김혜수의 연기는 그래서 ‘역시 김혜수’란 찬사를 이끌어 낸다. 영화 ‘굿바이 싱글’의 김혜수는 그것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다소 작위적인 제목의 이 영화가 김혜수 출연 하나로 무게감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은 민감해질 수 있는 사회 문제를 곁들이며 진지함을 놓치지도 않았다. 이질적인 두 캐릭터의 대비가 가져올 수 있는 상황 속 코미디와 ‘다름’의 위치에서 발생할 ‘교감’의 중요성을 전한다. 웃음과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수를 발견했다. 물론 그 두 가지를 혼합하고 조율한 연출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가 절묘했다.
영화는 과거엔 톱스타 지금은 ‘국민 진상’으로 불리는 고주연(김혜수)의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를 그린다. 화려한 싱글을 즐기던 주연은 연하의 신인 배우이자 남자친구 지훈(곽시양)과 해피엔딩을 꿈꾼다. 하지만 지훈의 배신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슬픔과 고민 속에 얻은 답은 ‘가족’이었다. 조건 없이 자신의 편을 들어줄 가족이다. 황당하게도 그 가족은 ‘결혼’이 아닌 임신이다. 협찬 인생 속에 살아온 왕년의 톱스타가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것을 탐하게 된다.
임신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은 주연은 뜻밖의 만남을 갖는다. 중학교 3학년생 단지(김현수)다. 단지는 한 번의 실수로 임신을 하게 된 미성년자 미혼모다. 주연은 단지와 조금은 놀라운 거래를 하게 된다.
‘굿바이 싱글’은 이질적이면서도 다소 혐오적인 조합을 선택한다. 여성 톱스타와 미성년자 여중생, 그리고 미혼모와 유아 거래란 지점은 분명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관객들에겐 웃음을 선사한다. 웃음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웃음을 터트린다. 주연과 단지의 워맨스(Womance)와 주연과 평구(마동석)의 성을 뛰어넘은 ‘브로맨스’가 그 장치다.
주연과 단지는 공통점이 많다. 일찌감치 부모를 여의고 혼자 살고 있단 점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서로가 속마음을 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서로를 가족으로 원하고 또 인정하고 그리고 받아들인 상태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의 삶 속에 조금씩 스스로를 녹여낸다. 그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웃음의 코드는 익숙하면서도 영화 마지막에 몰려올 감동의 기운을 전할 예고편에 해당한다.
주연과 평구의 성을 뛰어 넘은 ‘브로맨스’는 더욱 강력하다. ‘불알친구’로 평구를 소개하는 주연의 털털함은 마초적 외모와는 달리 여성성이 강조된 평구의 그것과 대비되며 묘한 웃음을 유발한다. 사실 두 사람은 친구의 관계이면서도 모녀(母女)를 연상케 하는 기시감을 담고 있다. 평구는 ‘트러블메이커’ 주연의 사고처리 전담반으로서 역할을 분명히 한다. 때로는 사랑과 우정의 사이를 묘하게 줄타기하는 듯 보이면서도 두 사람의 가족 이상의 끈으로 연결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이해의 관계로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
그런 관계의 연속은 주연의 소속사 대표인 김대표(김용건), 로드 매니저 미래(황미영) 여기에 평구의 아내인 상미(서현진)에게도 동일시 적용된다. 사실 주연에겐 가족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곳에서 주연을 바라보고 함께 있어왔던 것이다.
그 의미는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고주연 일생일대 최악의 사건이 만들어 주는 아이러니함으로 막을 내린다. 어디서 본 듯한 웃음의 코드가 이 영화 속에선 분명히 넘쳐난다. 하지만 마지막 감동의 코드는 코미디 영화가 그릴 수 있는 혹은 지금까지 잊고 지내온 지점이다.
한 없이 가벼운 존재 속에 담긴 진지함의 무게가 진한 여운을 가져다준다. 오랜만에 러닝타임이 짧다고 느낄 영화가 나온 것 같다. 오는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1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