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김재범 기자] 100억이란 돈이 준비돼 있다. 이 돈을 어떻게든 써야 한다. 여기서 ‘어떻게’가 중요하다. 쓰임에 따라서 100억이 0원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마이너스될 위험도 있다. 물론 기회가 좋다면 2배 3배 4배가 돼 돌아올 가능성도 크다. 여름 성수기 극장가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이런 가능성에서 출발을 한다. ‘기획’이 흥행 절반을 차지한다는 말에서부터 시작하면 이 가능성에 투자를 하기에는 그 위험이 너무 크다. 하지만 반대로 투자해 볼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대박이란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셈이다. 여름 블록버스터의 명암은 그 가능성에서 드러나게 된다.
■ 2016년 여름 극장가 5파전
한 해 극장가를 찾는 인원은 약 2억 명 정도다. 이들 가운데 여름 시즌에만 무려 5000만 명이 집중한다. 관객 1인당 1만원의 관람료를 기본으로 계산한다면 7월부터 8월 두 달 약 60일 동안 약 5000억 원이 움직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돈을 위해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CJ, 롯데, 쇼박스, NEW)는 기본 제작비 100억대에 달하는 기획성 블록버스터를 출전시킨다. 각 투자 배급사의 이른바 ‘텐트폴’(흥행이 확실한 기대작) 영화가 이 시기에 집중한다.
올 여름 각 투자배급사 라인업은 ‘부산행’(NEW) ‘인천상륙작전’(CJ) ‘덕혜옹주’(롯데) ‘터널’(쇼박스) ‘국가대표2’(KM컬처)순서다. 이들 영화는 세밀한 성격을 따지면 분명 달라질 수 있지만 철저한 기획에서 출발됐다. 흥행을 위한 소재, 스토리 전개 방식, 연출의 선택과 집중, 영화 전반 기승전결 공식, 타깃 관객층, 극장가 스크린 점유율 등 ‘기획성 대작’ 영화의 그것을 오롯이 따라가고 있다.
물론 완성도에 따라서 이들 명암은 천차만별로 갈라진다. ‘부산행’과 ‘인천상륙작전’은 이미 개봉과 함께 흥행 시장을 양분 중이다. 하지만 관객과 평론 그리고 언론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여기에 ‘국가대표2’와 ‘덕혜옹주’가 예상 밖의 호평을 이끌어 내면서 흥행 시장은 한 치 앞으로 내다보기 힘들어졌다. ‘터널’ 역시 완성도 면에서 뒤질게 없다는 호평이 벌써부터 새어나오고 있다.
■ ‘5파전?’ 흥행 이어달리기 다음 주자는?
‘부산행’이 누적 관객 수 900만(3일 오전 기준)을 돌파한 현재 1000만 기록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인천상륙작전’도 손익분기점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이지만 의외의 동력을 유지하고 있다. 평론가와 언론의 혹평이 쏟아졌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대체로 ‘재미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3일 개봉한 ‘덕혜옹주’가 언론시사회 반응으로만 따지면 여름 대작 5편 가운데 가장 큰 점수를 얻고 있다. 손예진의 묵직한 연기와 허진호 감독의 절제미가 압권이란 평에 무게가 실린다. ‘부산행’이 사실상 1000만 흥행 분위기를 이어가는 와중에 ‘인천상륙작전’ 흥행 저력이 유지 중이지만 ‘덕혜옹주’ 출발이 두 영화의 흥행 전선에 분명한 영향력을 줄 것이란 관측이다. 3일 오전 기준 ‘덕혜옹주’ 사전 예매량이 10만에 육박하고 있으며 네티즌 평점 역시 ‘부산행’ ‘인천상륙작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8.2점을 기록 중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앞선 두 영화가 타깃 층이 확실한 장르라면 ‘덕혜옹주’는 여성 관객 전체를 휘어잡을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면서 “특히 실화가 가진 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일반적인 여름 블록버스터가 폭발성이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면 ‘덕혜옹주’는 은은하지만 잔상이 오래가는 힘을 발휘할 것이라 예측된다”고 전했다.
반면 ‘국가대표2’는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지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앞서 ‘인천상륙작전’이 300만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지만 손익분기점 600만 돌파는 불투명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장르는 다르지만 ‘감동’이란 동일 감정으로 해석될 ‘국가대표2’가 또 다른 관객들을 흡수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대해 ‘국가대표2’ 관계자는 “남북 코드가 들어가 있기에 ‘인천상륙작전’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는 시선이 강하다”면서도 “스포츠 영화 자체 감동과 가족 얘기가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 지점에 관객 분들이 움직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고 전했다.
가장 마지막 영화는 ‘터널’이다. ‘터널’ 속에 갇힌 한 남자의 생사를 건 사투와 터널 밖 사람들의 얘기가 부딪치며 발생하는 스토리의 무게감이 다른 경쟁작들과 분명한 차별점을 이룰 것으로 기대가 된다. 하지만 약점도 분명하다. 주인공 하정우가 전작 ‘더 테러 라이브’에서 선보인 연기 패턴이 반복되는 듯한 설정이 눈에 들어온다. 재난 영화 특유의 인물 간 관계스토리도 부족한 느낌이다.
이에 대해 쇼박스 관계자는 “홀로 갇힌 자의 원맨쇼가 이 영화의 진짜 감정은 아니다”면서 “갇힌 자와 그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균형미가 ‘터널’의 진짜 재미를 가져다 줄 것이다. 분명 예상하는 지점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전달해 줄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사회 현상과 그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기획 영화는 매년 여름 시장을 장식한다. 하지만 영화가 기획 자체에 매몰될 경우 거대 제작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게 될 위험성이 크다. 이 지점이 기획 영화의 명과 암이며 올 여름 시장을 장식한 5편의 기획성 대작의 흥행을 점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