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이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아르곤’ 시청자들을 피식 피식 웃게 만들었던 아르곤 팀의 낙종기자 허종태가 이토록 철학적이며 신중한 세계관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믿기 싫을 정도다.
‘아르곤’에 이르러 그 존재감을 드러낸 조현철은 기실 영화 ‘차이나타운’ ‘마스터’ 등에서도 묵직한 존재감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은 바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아르곤’ 출연 후 래퍼 ‘매드클라운 동생’이라는 수식이 얹혀졌다.
극중 허종태의 허당기와 좌충우돌이 드라마를 끌고 나가는 유머코드였다. 알게 모르게 한 축을 이끌어간 선방에서 서 있던 조현철은 그러나 연기와 삶, 작품에 대해 깊이 있는 시각을 갖고 있는 ‘상당히 진지한’ 인물이었다.
■“허당기자 허종태, 내 안에 있는 것 끌어낸 인물”
종영한 tvN드라마 ‘아르곤’에서 조현철은 정치인의 아들이자 소위 낙하산 허종태를 연기했다. 아르곤 팀 내에서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자신의 꼭지를 방영하지 못한 인물이지만 그 자신은 늘 만족도가 높다. 자신이 취재한 꼭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누구 못지않지만 늘 의외의 곳에서 낙종을 만들어내고 마는 인물이다. 그야말로 운이 지지리도 없다. 그저 금수저일 뿐이다.
“실패를 해도 집이 잘 사니까,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뭔가 계속해서 용감하게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스스로는 실패가 계속되다 보니까 그 인물이 갖고 있는 아픔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허종태 성격상) 금방 잊고 까먹지 않을까”
이 질투할 수 없는 금수저 허종태를 연기한 조현철은 어땠을까.
“감독이 캐스팅할 때 각 캐릭터에 딱 맞는 사람을 캐스팅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허종태에게 내 안에 있는 내 모습을 반영하려고 했지 인물을 해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의외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들은 그저 들뜨기 마련이다. 때문에 인터뷰에 응할 때면 답변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통상의 배우들 모습이라면 조현철은 달랐다. 그것도 많이…
“시대극이나 전문직을 연기할 때는 최소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정도를 빼놓고서는 캐릭터를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연기라는 것이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다루는 것인데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삶 자체가 불가해하다. 연기를 할 때 어떤 인물을 분석해서 그 캐릭터를 알았다고 생각하고 표현해 버리면 뭔가 수가 보이는 것 같아서 재미가 없더라. 이걸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바에는 내 안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쓰면서 그냥 모르고 연기하는 것이 더 잘 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터뷰 마디마디 말 고르는데 신중한 모습을 보였던 조현철은 그저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든지, 말재주가 없다든지, 과묵하다는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자신의 말대로 ‘불가해한’ 사람이다. 그 안에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담겨 밖으로 꺼내놓는 데까지 오래 걸리는 타입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 알고 보면 연출가 “작품으로 판 바꿀 것”
조현철을 그저 ‘이제 막 얼굴을 알린 신인 배우’ 정도로 생각하면 큰 오해다. 10년도 훌쩍 넘는 시간 전부터 그는 영화계에 몸담고 다양한 장르를 연출해 온 영화감독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연기하고, 작품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라는 말로 지나치기에 조현철의 작품에는 많은 것들이 담겼다.
“그때 그때 하고 싶은 말들을 작품에 담았다. 습작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의 습작에는 그의 철학이 담겼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청춘이라고 해서 청춘을 대변하는 거창함 같은 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연기 또한 같은 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기를 하는 것 자체는 즐거웠다. 그러다보니까 좀 욕심도 많아지고, 더 큰 물에서 놀고 싶고, 그런 마음 때문에 스스로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더 큰 역할을 해보고 싶고, 그래서 돈을 벌고 싶기도 하고 대단한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어느 시기부터 느꼈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런 것 보다는 내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고,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할아버지부터 부모님, 나, 나의 다음세대에 이어질 어떤 것들에 대해서 더 가치를 두게 된다. 내가 시작이나 끝이 아니라 흐름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욕심에 대해 이야기 할 때조차 다분히 철학적이다. 그 내면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에 대한 방증이다.
“파도는 계속 밀려온다. 나는 그게 영영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불안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 태도가 파도는 멈추지 않으니까, 파도를 잘 탈 수 있게 생각을 가볍게 하고 너무 엄숙해 지지 않으려는 게 삶에 대한 내 태도다”
■ “바뀐 세상에서 연기로 이야기 하겠다”
‘말이 필요없다. 기자는 기사로 말하라’라는 말이 있다. 조현철이 연기한 기자라는 직업이 그랬든 현실에서의 조현철은 배우다. 배우는 연기로 말하겠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아르곤’ 이후 행보에 대해서도 조현철은 그저 “연기로 말하겠다”는 취지의 답변만 내놓았다.
“배우로서 나는 선택당하는 입장이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모나지 않게 연기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 연출가로서는… 판 자체가 한 번 뒤집어 졌으면 좋겠다”
‘현재 영화판에 대한 불만인가?’라는, 다소 예민한 질문에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한 조현철은 어느새 연출가로 태세 전환을 한 상태에서 답변을 이어갔다.
‘굉장히 불편한 발언을 하는 셈’이라는 기자의 지적에도 “말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말로 하는 것보다 내 작품이나 내 친구들의 작품으로 증명하는 게 나아 보인다”라고 확신을 준다.
“나라 자체가 작고, 시장도 작고, 그래서 그만큼 획일적이고 지속적으로 소비 돼오던 것들만 소비될 수 있는 경직된 구조다. 너무 다양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옛날에는 나도 (요구에) 맞춰서 어떻게 연기 변신들 한다든지 근육을 키운다든지, 산에 올라가서 발성 연습을 해서 목소리를 더 틔운다든가 하는 생각들을 갖고 고민도 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했는데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자체로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면서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힘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창작자로서 소비의 형태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는가 싶더니 어느 덧 정치적인 발언까지도 서슴없던 조현철은 이렇게 말했다.
“작년을 기점으로 어쨌든 세상이 크게 바뀔 수 있을만한 가능성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아직 그렇게 바뀐 것 같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열렸으니까 좀 더 성실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대통령이 바뀐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작년에 중력파도 발견됐고, 문화계 내에서 남성들이 가지고 있던 헤게모니도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서 시민들이 대통령을 끌어 내렸다. 총체적으로 가능성이 열렸다”
가능성 이야기를 할 때 조현철은 반짝였다. 이 보물 같은 크리에이터의 창작 활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
답변 그 이상의 생각 꺼리를 남긴 조현철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