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건형 기자] “배우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역할이 작던, 크던 늘 즐겁게 연기했죠”
사람마다 같은 상황을 겪고도 다른 생각을 한다. 컵에 담겨있는 물을 보고 누군가는 말한다. “어라 물이 반 밖에 안 남았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물이 반이나 남았네” 배우 조복래는 후자의 사람이다. 불행이나 걱정은 그의 삶에서 지워진 단어 같았다.
조복래는 지난 2015년 영화 ‘쎄시봉’에서 송창식 역을 맡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배우로 살아온 그이지만 인기를 얻은 건 한 두해 밖에 되지 않았다. 연극을 주 무대로 삼았기에 얼굴을 알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카메라 연기도 함께했다. 영화 ‘소원’ ‘하이힐’ ‘소수의견’ ‘몬스터’ ‘명량’ ‘우리는 형제입니다’ ‘원나잇온리’ ‘차이나타운’ 등 다양한 작품에 얼굴을 비췄다. 이중에서도 그의 결정적 작품은 단연 ‘쎄시봉’이다. 주연급 배역 덕도 있지만 그가 보여준 송창식 연기는 꽤나 인상 깊었다.
“연기 할 때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배역이면 그 사람을 그대로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인물이 갖고 있던 히스토리나 감정적인 부분들과 내가 갖고 있는 부분들을 잘 배합해야 하죠. 물론 ‘쎄시봉’ 속 송창식을 연기했을 때 그 분의 노래를 많이 들으면서 접근했어요. 목소리나 창법적인 부분들은 따라가야 하니까”
(사진=강동엽 기자)
■ 운명과도 같은 작품, ‘그 여름 동물원’
우연찮게 조복래는 새로 시작하는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에서도 실제 인물을 연기한다. 한국 대중음악에 큰 족적을 남긴 고 김광석 역할을 맡았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뮤지컬 ‘디셈버’ 이후 약 3년만의 무대 복귀작이다. 영화 출연이 잦았던 그가 오랜만에 뮤지컬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중학교 시절 그룹 동물원, 김광석 선배의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특이한 아이였죠. 나 어릴 때만 해도 또래 애들은 이런 음악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난 동물원의 가사와 노래를 들으면서 이상하게 감성적이게 되고 감상에 젖어 들더라고요. 또 김광석 노래를 듣고는 간접적으로 인생에 대해서 무겁게 사유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철이 빨리 들었다고 해야 하나. 좋은 영향들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뮤지컬 제의가 들어왔을 때 부담스럽긴 했는데 재밌을 것 같았어요”
그는 90년대와 어울리는 분위기를 지녔다. 송창식 역이 자연스러웠던 것도 시대와 어울리는 비주얼을 가진 덕분이랄까. ‘그 여름 동물원’ 출연이 결정된 후 그는 또 다시 자신만의 김광석을 연구했다. 혈기왕성한 김광석을 표현하려 한다고. 김광석과 그리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다. 그럼에도 앞전의 연기를 떠올리면 우려보단 기대감이 생긴다. 특히 조복래는 이번 역할을 인생 캐릭터라고 밝혔을 만큼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가장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
“이번 작품에서 맡은 김광석 역할이 나와 제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가 추억과 향수를 일으키는 따뜻한 부분도 있지만 아주 크게 다루는 것 중 하나가 외로움이죠. 그 외로움을 한 곡으로 표현했어요. ‘나무’라는 곡을 통해 외로움을 그리는 장면이죠. 그 노래가 정말 공감되고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 역할이 오롯이 내가 집중해서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이에 반해 가장 힘들었던 역할을 묻자 그의 대답은 예상 외였다. 그는 “가장 연기하기 힘든 역할은 아무래도 살인자 같은 거다. 내가 은근히 그렇게 생겼지만 순수하고 순박한 걸 좋아한다. 자주 그런 역할을 맡았지만 좋아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불현듯 ‘뱀파이어 탐정’ 속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꽤나 실감나는 연기였는데 이입하기 힘들었다니, 프로페셔널하다고 할 수밖에.
■ “배고팠던 극단 생활, 힘들었던 때가 아닌 가장 뜨거웠던 때”
방세가 없어 연습실서 지친 몸을 뉘여야 했던 순간에도, 새벽까지 이어진 연습 강행군에도 그는 모든 순간을 기꺼워했다. 경험자들은 하나같이 고달프다고 입을 모으는 극단 생활을 가장 “뜨거웠던 때”라고 말하는 그다.
“극단 생활하면서 대학로에 있는 고시원은 종류별로 다 가본 것 같아요. 힘들었던 시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가 어쩌면 제일 뜨거웠던 시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당시의 열정을 다시 체험하고 있죠. 10년 전에 했던 일들이 생각이 나서 연습하는 게 정말 좋아요”
그는 연기를 해온 10년간 단 한 순간도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순간부터 모든 날이 행복할 뿐이다. 예전의 자신이 서있던 자리에 있는 후배들에게도 한 마디 건넸다. “분명 좋은 기회는 오니 잘 쌓고 있어라”. 긍정적 기운이 가득한 그다운 대답이다.
“뮤지컬에 나오는 대사 중에 ‘나는 부러진 기타 같아. 연주할 수 없는데 연주를 해서 이젠 완전히 망가져버린 기타’라는 말을 하죠. 난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잘 길들여야하는 기타’지 않을까 해요. 좋은 악기로 만들어나가야 하는 악기인 것 같아요. 열심히 진정성 있게 다루다 보면 언젠간 좋은 악기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