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2025년 9월 투자자 정보 프리젠테이션 및 2022년 한국필립모리스 감사보고서 발췌)

최근 윤희경 대표 체제의 한국필립모리스가 ‘말보로’ 부문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보도가 업계 이목을 끌었습니다. 해당 보도자 짚어낸 문제는 한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이익은 상표권 로열티·원재료 정산·배당금이라는 정교한 파이프를 타고 해외로 꾸준히 이전되는 반면 국내 법인에서는 ‘성과 미흡’이란 모호한 잣대를 앞세운 퇴사가 이어진다는 점이었는데요.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국내에서는 비용·해고, 해외로는 현금’이라는 외투의 낡은 습관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뿐이죠.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우리나라에 무리한 잣대를 드리밀던 와중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한국필립모스의 소식은 한 기업의 인사문제를 넘어 외국계 기업의 한국 운영 방식이 어디까지 사회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다시 묻게 했습니다.

■숫자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익숙한 ‘로열티 공제+구조조정’ 패턴

보도를 종합하면 한국필립모리스는 해고급여가 늘었고 상표권·기술사용 로열티와 배당금 지급은 더 커졌습니다. 통상 상표권 계약 구조상 로열티는 매출(혹은 매출+마진)에 연동돼 자동 상승하고 배당은 본사의 현금수요·자사주 매입·신사업 투자 일정에 맞춰 ‘글로벌 최적화’됩니다. 문제는 이 최적화가 한국 사회의 비용(일자리 축소·조세기반 잠식·공급망 불안)을 과도하게 전가한다는 점이죠. 매출·점유율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력 감축이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이는 비단 담배산업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글로벌 프랜차이즈에서도 이런 관행은 계속돼 왔습니다. 본사 상표권·레시피·원두·원재료 거래를 통한 내부거래가 커질수록 한국 법인의 영업이익은 얇아지고 국내 세부담·투자 여력·인건비 풀은 경직되곤 했습니다. 매장·물류는 한국에서 확대하되, 초과이익은 지식재산(IP) 대가로 국외에 축적하는 방식이 반복돼 온 것이죠.

빅테크·플랫폼도 마찬가지입니다. 앱마켓 수수료·광고·클라우드 사용료 등 ‘무형자산 대가’로 본사로 현금이 선(先)이전되고 국내 채용·R&D는 후순위로 밀리는 구조가 고착됐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창출된 디지털 초과이익이 국내 생태계에 재순환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 왔죠. 이들 사례의 공통분모는 ‘무형자산 결제’의 급증과 국내 고용·임금·현장 역량의 상대적 위축입니다. 따라서 말보로 구조조정은 그 전형을 또 한 번 상기시켰을 뿐입니다.

회사 측은 “개인사유에 따른 퇴사”를 강조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과 미흡’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임원부터 젊은 직원까지 골고루 베어내는 방식은 조직 학습과 영업 기반을 동시에 훼손할 수 밖에 없죠. 특히 전자담배·가열담배 전환기에는 제품 포트폴리오 학습, 채널 관리, 규제 대응 역량이 핵심 자산인데, 그 자산을 ‘해고급여 몇 달 치’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사업 이해가 얕거나 한국 법인을 단기 현금창출 유닛으로만 보는 것을 입증하는 셈입니다.

■“성과 미흡”이란 모호한 칼날과 거버넌스의 공백…정책·감독이 바꿔야 할 것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국내 중소 프랜차이즈기업 A 대표는 “한국에서 번 돈을 로열티란 이름으로 해외에 내보내는 외국계 프랜차이즈기업은 국내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반면 국내 프랜차이즈기업은 갈수록 높아지는 규제의 장벽과도 맞서야 한다”며 “(우리는) 국내에서 번 돈으로 투자도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최소한 같은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영업환경이 다른 데 대해 토로했습니다.

그렇다면 외국계 기업도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요. ‘먼저 자르고 나중에 생각’하는 관행을 뒤집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사회적 라이선스가 필요합니다. 대규모 해고·영업망 축소가 진행되는 분기에 로열티·배당이 기계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이해관계자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최소한 “국내 고용·재투자 계획과 연동된 배당·로열티 결정”이라는 동시성(synchronization) 원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내부거래 단가·로열티율·서비스 피 구조는 회계상 합법일 수 있으나 이전가격(Transfer Pricing)의 실질 적정성은 별개입니다. 따라서 국세·공정당국의 사후 검증이 정례화되어야 합니다. 구조조정 기준·평가모델·전환배치 시나리오를 노사·이해관계자에게 사전 공시하고 외부감사보고서의 특수관계자 거래 주석을 읽히는 언어로 요약 공개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필립모리스와 같은 외국계 기업의 관행이 끊어지려면, ‘해고-배당 동시 억제’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인력감축을 공시한 회계연도에는 ▲연결 기준 배당성향 상한 ▲특수관계자 로열티·서비스 피 증가분의 사전 신고 및 사후 공시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또 해고의 사회적 비용을 본사 현금회수보다 가볍게 다루지 못하도록 행동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아울러 로열티·서비스 비용을 국내 실질 기여(고용·R&D·공급망 투자)와 연동하는 ‘세액공제-가산세’ 투트랙을 도입해야 합니다.

더불어 업종 전환기(연초→전자담배 등) 구조조정을 선언한 기업에는 직무전환·재교육 바우처와 내부 전배 매트릭스 제출을 의무화하고 이를 이행한 경우에만 고용 관련 비용의 세제 혜택과 각종 규제 유연성을 제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업보고서 주석을 일반 독자·직원도 이해할 수 있게 요약표(거래 상대·항목·정산 기준·추세)로 공시하도록 의무화해야합니다. 숫자를 숨기지 말고 맥락을 보여주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한국 법인에 주는 제언...“게임의 규칙을 바꾸라”

(출처=필립모리스 인터내셔날 2025년 3분기 실적 발표 및 2025년 9월 투자자 정보 프리젠테이션 발췌)

필립모리스를 대표하는 브랜드 ‘말보르’에서의 직원 감축은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확대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지난 10월21일 필립모리스 본사가 발표한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담배 연기 없는 세상’을 타이틀로 10여년 전 처음 등장한 아이코스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순매출액이 말보르를 따라잡은 상태입니다. 특히 한국은 아이코스 전자담배 스틱(HTU)의 장기 구매 계약 점유율(offtake shares)이 동유럽 일부지역 뒤를 이어 5번째로 늘어나는 지역으로 꼽혔더군요.

지난 2023년 재무와 글로벌 시장 전문가인 윤희경 대표가 한국필립모리스 사령탑에 올랐을 당시만해도 업계에는 긴장감이 팽배했습니다. 시장점유율이 KT&G에 점차 밀는 시기 ‘혁신’을 무기로 등장, 구원투수가 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식 석상에 나온 윤 대표는 성인 흡연자를 위한 대안과 환경 영향을 내세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진정 ‘담배 연기 없는 미래’를 완성키 위한 주인공이란 점을 각인시켰죠.

하지만 2년여 사이 한국필립모리스는 연기(煙氣)가 남지 않는 동시에 사람도 남지 않는 공간이 됐습니다. 물론 브랜드 흐름을 따른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소비자는 똑똑합니다. 우리 소비자들은 이제 가격·품질만 보던 시대를 지나 “내 지갑에서 나간 돈이 어디로 흘러 어떤 사회를 만드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수치로 남는 궤적인 감원, 로열티, 배당은 오래 기록됩니다. 현대 정치도 이 신호를 읽습니다. 한국 시장을 ‘현금자판기’로 보는 태도는 결국 더 비싼 규제로 돌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