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건형 기자] ‘사나이’라는 단어가 이리도 잘 어울리는 남자가 있을까. 무대 위 카리스마는 감탄스럽고 가장으로서의 모습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거저 쥐어진 건 아니다. 이 사나이는 꽤 오랜 청춘을 시련과 동행했다. 그 시련은 그를 사나이로 만들었다. 뮤지컬배우 민우혁 이야기다. 뮤지컬 ‘벤허’에서 메셀라 역을 맡아 열연 중인 민우혁은 무대 위에서 한 마리의 하이에나 같다. 하이톤의 날카로운 창법은 그가 노래할 때 강한 집중력을 갖게 한다. 감정 연기도 섬세하다. 악역임에도 어딘가 애처롭다. 민우혁은 메셀라를 꽤나 멋스러운 악역으로 만들었다. 때론 주연보다 더 주연 같은 느낌을 안길 정도다. “메셀라의 진짜 심경을 표현하는 게 목표였어요. 왜 저렇게 까지 됐는지에 대해서 명학하게 표현하고 싶었죠. 그런데 나오는 신이 적다보니까 그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디테일적인 부분을 살리려고 노력했죠. 별 상상을 다 해봤어요. 어떻게 하면 호감 악역으로 보일 수 있을까에 대해. 하지만 너무 불쌍하게만 보이는 것도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악랄함은 살아있되 메셀라가 왜 그렇게까지 됐는지 표현하는 데 고민을 많이 했죠.” 민우혁은 메셀라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덕분에 첫 악역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꽤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는 “난 메셀라의 상황이 이해가 갔다. 벤허의 집에서 아무리 잘해줬어도 ‘이 사람들은 동점심이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대한 복잡한 과정 때문에 메셀라라는 인물이 존재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한다.   ■불행했던 야구선수 시절, 민우혁의 진짜 꿈 지난 2013년 뮤지컬 ‘젊음의 행진’으로 데뷔한 민우혁은 서른다섯살이 되서야 5년차 뮤지컬배우가 됐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좀 적은 연차다. 이런 배경에는 꽤 절절한 사연이 있다. 야구선수에서 가수로, 또 배우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꿈인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내 꿈은 아니었죠. 그래서 즐겁지가 않았어요.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면 야구를 안 하게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갈등이 많았죠. 그러다 스무 살 때 부상을 당했어요. 그때 큰 결심을 했죠, 가수가 되야겠다고. 다친 다리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쉽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비슷한 직업에라도 다가서보자 해서 모델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한 거예요. 문제는 다음이었죠. 이걸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넌 지금 포기한 게 아니고 열심히 했는데 안 된거다’라며 응원을 해주셨죠. 그때 가족들의 믿음이 아니었다면 분명 가수활동을 포기했을 거예요. 그 힘으로 여기까지 버틸 수 있던 것 같아요.” 스스로가 하고 싶었던 가수의 꿈은 이룬 그지만 이후의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오랜 무명 시간은 그를 점점 지치게 했다. 그렇게 10년 버텼다. 쉽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미 야구선수에서 가수로 전향하면서 한 차례 실패의 아픔을 맛봤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를 버티게 한 건 부모님의 향한 사랑이었다. 그는 두 번의 실패를 부모님께 보여드릴 수 없었다. 생지옥 같았다던 20대 초반의 민우혁은 “가수를 수백 번 포기하고 싶었다. 스무살 초반엔 생지옥이었다. 될듯하면서도 안됐다. 열심히 준비해서 이제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사기를 당했다. 한 사람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을 다 겪었던 것 같다”며 파란만장했던 과거를 털어놨다. “정말 괴로웠어요. 노래를 떠나서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럴 때마다 부모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 하나 잘 되게 하려고 치열하게 버티시는 부모님을 보며 주저앉을 수 없다고 다짐했죠. 내가 한번 실패를 했었기 때문에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신념으로 버텼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절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당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웠던 감정들이 연기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고 있죠.” ■뮤지컬 배우로의 전향, 눈물의 커튼콜 오랜 무명에 지친 그는 포기대신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 운동과 노래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던 그가 연기를 시작한 것이다. 연기를 배우며 우연히 접하게 된 뮤지컬의 길은 운명적 만남이었다. 민우혁은 뮤지컬 첫 오디션을 보자마자 “내 꿈은 가수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고 바로 뮤지컬배우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성인이 되기 전에 운동만 했고 이후엔 노래만 했더라고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를 시작했죠. 연기를 배우는데 마침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알게 됐어요. 첫 오디션을 봤을 때 ‘내 꿈은 가수도 아니고 연기자도 아니고 뮤지컬배우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너무 내 정석에도 맞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피드백을 받았을 때 쾌감이 들더라고요. 그토록 갈망했던 꿈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첫 공연 커튼콜 때 박수를 받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쾌감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하지만 지금의 입지에 오르기까지 뮤지컬배우로서의 삶도 불안했다고. 다음 작품에 대한 강박에 시달린 것이다. 하지만 그때 은인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 바로 김문정 음악감독이다. 뮤지컬 ‘데스노트’ 오디션장에서 김문정 감독의 눈에 띈 민우혁은 그의 추천으로 ‘레미제라블’ 오디션을 보게 된다. 그는 “'레미제라블'하게 되면서 '뮤지컬을 하는 민우혁이라는 사람이 있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이름을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위키드’ ‘아이다’ ‘벤허’ 등 여러 대작을 통해 입지를 굳힌 그는 이제 뮤지컬계에서 손에 꼽히는 톱배우가 됐다.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대가와 보상이 이제야 주어진 셈이다.  “이런 말 듣고 싶어요. '정말 천의 얼굴이다'라는. 이 이야기를 듣는 게 연기에 대한 나의 욕심인 것 같아요. '저런 것도 가능해?'라는 연기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민우혁, 야구선수→가수→뮤지컬배우, 조금 돌아가도 괜찮아

이건형 기자 승인 2017.10.20 18:33 | 최종 수정 2135.08.15 00:00 의견 0

[뷰어스=이건형 기자] ‘사나이’라는 단어가 이리도 잘 어울리는 남자가 있을까. 무대 위 카리스마는 감탄스럽고 가장으로서의 모습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거저 쥐어진 건 아니다. 이 사나이는 꽤 오랜 청춘을 시련과 동행했다. 그 시련은 그를 사나이로 만들었다. 뮤지컬배우 민우혁 이야기다.

뮤지컬 ‘벤허’에서 메셀라 역을 맡아 열연 중인 민우혁은 무대 위에서 한 마리의 하이에나 같다. 하이톤의 날카로운 창법은 그가 노래할 때 강한 집중력을 갖게 한다. 감정 연기도 섬세하다. 악역임에도 어딘가 애처롭다. 민우혁은 메셀라를 꽤나 멋스러운 악역으로 만들었다. 때론 주연보다 더 주연 같은 느낌을 안길 정도다.

“메셀라의 진짜 심경을 표현하는 게 목표였어요. 왜 저렇게 까지 됐는지에 대해서 명학하게 표현하고 싶었죠. 그런데 나오는 신이 적다보니까 그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디테일적인 부분을 살리려고 노력했죠. 별 상상을 다 해봤어요. 어떻게 하면 호감 악역으로 보일 수 있을까에 대해. 하지만 너무 불쌍하게만 보이는 것도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악랄함은 살아있되 메셀라가 왜 그렇게까지 됐는지 표현하는 데 고민을 많이 했죠.”

민우혁은 메셀라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덕분에 첫 악역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꽤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는 “난 메셀라의 상황이 이해가 갔다. 벤허의 집에서 아무리 잘해줬어도 ‘이 사람들은 동점심이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대한 복잡한 과정 때문에 메셀라라는 인물이 존재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한다.

 

■불행했던 야구선수 시절, 민우혁의 진짜 꿈

지난 2013년 뮤지컬 ‘젊음의 행진’으로 데뷔한 민우혁은 서른다섯살이 되서야 5년차 뮤지컬배우가 됐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좀 적은 연차다. 이런 배경에는 꽤 절절한 사연이 있다. 야구선수에서 가수로, 또 배우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꿈인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내 꿈은 아니었죠. 그래서 즐겁지가 않았어요.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면 야구를 안 하게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갈등이 많았죠. 그러다 스무 살 때 부상을 당했어요. 그때 큰 결심을 했죠, 가수가 되야겠다고. 다친 다리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쉽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비슷한 직업에라도 다가서보자 해서 모델 오디션을 봤는데 합격한 거예요. 문제는 다음이었죠. 이걸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넌 지금 포기한 게 아니고 열심히 했는데 안 된거다’라며 응원을 해주셨죠. 그때 가족들의 믿음이 아니었다면 분명 가수활동을 포기했을 거예요. 그 힘으로 여기까지 버틸 수 있던 것 같아요.”

스스로가 하고 싶었던 가수의 꿈은 이룬 그지만 이후의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오랜 무명 시간은 그를 점점 지치게 했다. 그렇게 10년 버텼다. 쉽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미 야구선수에서 가수로 전향하면서 한 차례 실패의 아픔을 맛봤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를 버티게 한 건 부모님의 향한 사랑이었다. 그는 두 번의 실패를 부모님께 보여드릴 수 없었다.

생지옥 같았다던 20대 초반의 민우혁은 “가수를 수백 번 포기하고 싶었다. 스무살 초반엔 생지옥이었다. 될듯하면서도 안됐다. 열심히 준비해서 이제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사기를 당했다. 한 사람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을 다 겪었던 것 같다”며 파란만장했던 과거를 털어놨다.

“정말 괴로웠어요. 노래를 떠나서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럴 때마다 부모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 하나 잘 되게 하려고 치열하게 버티시는 부모님을 보며 주저앉을 수 없다고 다짐했죠. 내가 한번 실패를 했었기 때문에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신념으로 버텼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시절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당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웠던 감정들이 연기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고 있죠.”

■뮤지컬 배우로의 전향, 눈물의 커튼콜

오랜 무명에 지친 그는 포기대신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 운동과 노래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던 그가 연기를 시작한 것이다. 연기를 배우며 우연히 접하게 된 뮤지컬의 길은 운명적 만남이었다. 민우혁은 뮤지컬 첫 오디션을 보자마자 “내 꿈은 가수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고 바로 뮤지컬배우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성인이 되기 전에 운동만 했고 이후엔 노래만 했더라고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를 시작했죠. 연기를 배우는데 마침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알게 됐어요. 첫 오디션을 봤을 때 ‘내 꿈은 가수도 아니고 연기자도 아니고 뮤지컬배우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너무 내 정석에도 맞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피드백을 받았을 때 쾌감이 들더라고요. 그토록 갈망했던 꿈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첫 공연 커튼콜 때 박수를 받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쾌감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하지만 지금의 입지에 오르기까지 뮤지컬배우로서의 삶도 불안했다고. 다음 작품에 대한 강박에 시달린 것이다. 하지만 그때 은인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 바로 김문정 음악감독이다. 뮤지컬 ‘데스노트’ 오디션장에서 김문정 감독의 눈에 띈 민우혁은 그의 추천으로 ‘레미제라블’ 오디션을 보게 된다. 그는 “'레미제라블'하게 되면서 '뮤지컬을 하는 민우혁이라는 사람이 있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이름을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위키드’ ‘아이다’ ‘벤허’ 등 여러 대작을 통해 입지를 굳힌 그는 이제 뮤지컬계에서 손에 꼽히는 톱배우가 됐다.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대가와 보상이 이제야 주어진 셈이다. 

“이런 말 듣고 싶어요. '정말 천의 얼굴이다'라는. 이 이야기를 듣는 게 연기에 대한 나의 욕심인 것 같아요. '저런 것도 가능해?'라는 연기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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