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제공
[뷰어스=이소연 기자] "만족을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가장 싫어했던 말이 ‘이정도면 괜찮아’거든요"
정용화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이다. 가수로서 취재진과 만날 때도 “욕심만 많고 실력이 없으면 안 되니까”라는 말을 자주 하던 정용화였다. JTBC 금토드라마 ‘더 패키지’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그는 배우로서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극중 정용화는 산마루 캐릭터 그 자체였다. 밴드 씨엔블루의 리더이자 보컬의 수식어를 잠시 내려놓은 그는 ‘산마루’의 인생에 들어갔다.
그 바탕에는 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확실히 최고가 되겠다는 좋은 욕심, 허울 좋은 목표를 세우는 대신 자신이 잘 할 줄 아는 것을 파악할 줄 아는 혜안,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절제가 있다. 덕분에 정용화는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 ‘산마루’가 살아 움직였던 이유
“산마루는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친구에요. 유도리 없고 해야 하는 건 해야 하고, 이런 사람과 같은 직장에서 일한다면 현실에서는 미움 받기 쉬운 캐릭터죠. 그런데 산마루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다들 눈치를 많이 보고 남들이 하지 말라는 건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잖아요. 산마루는 그걸 꼭 해봐야 하는 성격이라 매력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과 충돌했을 때 두렵긴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걸 모토로 삼고 있는 친구에요. 물론 누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청자들이 산마루처럼 살고 싶게 만들려고 했어요”
정용화가 싹싹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임은 그간의 방송을 통해 드러났다. 여기서 좀 더 들여다 본다면 정용화는 멋진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과감하게 투자하고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는 완벽주의다. 실제로도 늘 자기 통제를 해야 하는 연예인의 삶이다.
“산마루의 성격을 닮기는 힘들죠. 산마루처럼 행동하지는 못하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부분은 비슷한 것 같아서 이를 베이스로 연기하자 싶었어요. 나를 접목시키는 거죠. 또 연예인이기 때문에 경험한 것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잖아요. 패키지여행을 갈 수도 없고요. 이런 것들도 그렇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표현하는 연기를 하면서 대리만족을 했어요. 그간 ‘못하는 건 못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거든요. 연예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대신 그래야 한다고 여겼어요”
정용화가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 수 있던 이유는 대본의 표면적인 것들을 떠나 산마루의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인물의 과거를 생각해보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추측하며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정용화의 숨결이 닿은 산마루는 살아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어떻게 해야 멋있을까를 많이 생각했는데 이번 캐릭터는 대본을 빠삭하게 외우고 질릴 정도로 입에 붙였어요. 캐릭터에 대한 생각도 깊게 했고요. 과거 이야기는 대본에 나온 게 아니니까 그가 살아온 역사를 상상했어요. 산마루는 ‘이 사람처럼 될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준 첫 캐릭터에요. 그러다 보니 보시는 분들도 정용화가 아니라 산마루로서 ‘쟤는 저럴 것 같아’ 공감하실 수 있게끔 된 것 같아요”
‘더 패키지’도 사전제작이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다. 촬영 전부터 이미 모든 대본이 나와 있었고 덕분에 정용화는 캐릭터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 현지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 리허설을 따로 할 수 없었는데, 오히려 이런 상황이 ‘내가 얘로 변해야 유동적인 대처가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이끌어줬다.
■ 그러자 정용화가 변했다
극중 정용화는 현실남친의 설렘과 엉뚱한 연기의 코믹함까지 섭렵했다. ‘더 패키지’에서 화제가 된 신이 정용화와 이연희(윤소소)의 키스신, 정용화의 정조대 에피소드였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산마루는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고 맑고 엉뚱한 면이 많아요. 그래서 이 캐릭터가 더 돋보이고 멋있으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남자다운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소소도 마루에게 끌리지 않을까 싶었고요. 또 키스신이 많았는데 다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한 번 진하게 했는데 다음 신에서 또 진하게 하면 매력이 안 살 것 같았거든요. 화제가 된 섬 키스신은 한국에서 찍었는데요. 프랑스에서 찍을 신을 다 마치고 촬영해서 그런지 더 호흡도 맞고 확신이 생겼어요”
“정조대는 촬영을 위해 만든 건데, 대본을 보면서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었어요. 제작을 위해 허리 치수를 재는데도 ‘이게 맞나...’ 싶고. (웃음) 촬영 마치고 나서 다들 엄청 웃었어요. 다른 배우들도 구경 오고. 한편으로는 문화유산을 건드리는 신이잖아요. 진짜 민폐이고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덜 밉게 보일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그 전부터 산마루는 호기심이 많고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산마루는 연예인 정용화로서 하지 못했던 행동과 생각들을 인간 정용화로서 가능케 한 매개체이기도 했다. 늘 바쁜 스케줄에 쫓기던 그는 느긋한 프랑스 사람들의 문화를 경험했다. 천천히 흘러가 지루하던 일상은 어느새 필요한 요소가 됐다. ‘더 패키지’를 통해 일상을 다르게 살아가는 훈련법을 익힌 셈이다.
“그간 감정을 숨길 때가 많았는데 드라마를 찍고 나서는 솔직해진 것 같아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도 하고요. 예전에는 티를 안냈거든요.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계기가 됐어요. 대사도 그냥 하는 말인데도 나한테 해주는 말 같은 내용들이 많았어요. 저 뿐만 아니라 시청자 분들 모두 자신을 위로해준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 만족하지 않기에 가능했던 것들
정용화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기어코 해낸다. 그는 씨엔블루의 리더이자 보컬이고 배우다. 남다른 센스로 예능계도 사로잡았다. 역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싹싹하고 긍정적이어서 늘 좋은 평가를 받는다. 남들에게 혹은 상황에 의해 떠밀려 다니는 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멤버들에게도 “연예계 수명을 늘리기 위해 연기를 하는 거라면 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강단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가지 분야에서도 인정받기 어려운데 (돌아보면) 욕심이 많긴 많구나 싶어요. 음악적으로도 다양한 걸 해보고 싶거든요. 그런데 욕심만 있고 실력은 없으면 민폐잖아요. ‘내 분야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게끔 내가 정확하게 지킨다!’ 이런 마인드에요. 가수일 때는 배우의 짐을, 배우일 때는 가수의 짐을 지지 않고 접근하려고 하죠”
정용화의 말대로 어느 하나 성공을 이루기 힘들다. 하지만 정용화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이정도면 운을 떠나 본인의 다재다능함도 영향이 있다. 이에 대해 본인의 생각은 어떤지 묻자, 정용화는 지극히 본인다운 대답을 내놨다.
“만족을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가장 싫어했던 말이 ‘이정도면 괜찮아’거든요. 대신 자신 없는 분야라면 아예 시작도 안 해요. 게임도 못해서 아예 안하거든요. 지는 게 싫어서. 자존심 상해요. (웃음)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진짜 못한다 싶은 거면 깔끔하게 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여러 분야에서 저를 계속 찾아주시니까 감사해서 더 최선을 다해요. 칭찬 받으면 막 더하는 스타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