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골든슬럼버'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뷰어스=김동민 기자]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나 타인의 삶을 두고 ‘평범하게 산다’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그렇지만 바로 이 ‘평범’이란 수식어는 다분히 여러 결을 지니는 말이기도 하다. 평범한 삶이란 익숙한 어딘가에서 별다를 것 없는 일을 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것일 수도, 이렇다 할 사건사고 없이 튀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대개 이런 여러 ‘평범한 삶’들은 옳고 그름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따로 있다. 종종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평범한 삶을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바로 영화 ‘골든슬럼버’ 속 주인공처럼.
‘골든슬럼버’는 너무나 평범해서 특별해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택배기사 건우는 착하다 못해 멍청해 보일 정도로 순해 빠진 인물이다. 이런 그가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로 인해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대선 유력 후보를 살해한 테러 용의자로 낙인찍히고, 순식간에 모범시민에서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영화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건우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거대 세력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여기에는 목숨을 걸고 건우를 돕는 소중한 친구들의 존재도 있다.
영화 '골든슬럼버'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극중 건우 앞에 닥치는 ‘재난’은 한없이 날카롭고 차갑다. 누가 됐든 무턱대고 사람을 믿어 온 건우는 이제 자기 자신 때문에 소중한 이들을 위험 속으로 내모는 처지가 된다. 이 와중에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그를 위협하는 국가 비밀조직의 음모는 너무나도 냉정하고 잔인하다. 사람 좋은 미소의 건우가 줄곧 추격자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장면 장면들은 배우 강동원의 얼굴에 늘어가는 상처가 그렇듯 관객을 점점 더 안타깝게 한다.
이 와중에도 ‘골든슬럼버’는 다른 한 편에서 부드러운 온기를 담아내는 데에 성공한다. 바로 대학 시절 밴드 동아리를 함께했던 친구들을 통해서다. 쌍둥이 아빠로 어렵게 살아가는 금철(김성균)과 이혼변호사 동규(김대명), 그리고 교통방송 리포터 선영(한효주)까지. 각자 살기 바빴진 이들은 세상 모두가 테러범으로 낙인찍은 건우를 통해 오랜만에 다시 모인다. 자칫 어둡기만 할 수 있는 영화에 감동어린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주요 설정이다.
영화 '골든슬럼버'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렇다고 해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골든슬럼버’의 변주가 성공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소중한 친구와 부당한 공권력, 그리고 코믹한 대사와 잔인한 액션. 이들 사이에는 결코 해소할 수 없는 괴리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인공 건우를 압박하는 세력은 그 정체와 의도가 뭉뚱그려진 채 남아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건우 일행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해결해나가는 후반부 전개 역시 다소 억지스럽다. 특히 악당 황국장 역의 배우 유재명, 건우를 돕는 민씨 역의 배우 김의성 등은 뛰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를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데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 그리고 냉정하고 섬뜩하기만 한 현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한 ‘골든슬럼버’의 바람은 일견 과욕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비현실적일 정도로 냉정한 영화의 분위기 속에서 줄곧 빛을 발하는 건우의 선한 표정만큼은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을 울리고야 만다. 이는 마냥 착하기만 한 그의 눈빛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만들어 내는 온기와도 닮아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봄을 기다리는 우리 앞에 ‘골든슬럼버’가 찍은 ‘쉼표'는 각자 잊고 지내 온 ‘평범한 순수함’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전환점이다. 지난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