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뷰어스=손예지 기자]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이지은(아이유)이 말 그대로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tvN ‘나의 아저씨’(극본 박해영, 연출 김원석)에서 배우 이지은이 연기하는 이지안은 처절한 인물이다. 21년의 인생이 불행으로 점철된 그는 부모의 부재 속에 말 못 하는 할머니를 부양하며 살아왔다. 여기에 모친이 떠넘긴 사채 때문에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해도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설상가상 자신과 할머니를 악랄하게 괴롭히던 사채업자를 죽인 적도 있다. 법은 지안에게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살인자’란 낙인을 찍었다. 불우한 환경에 놓인 그를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연민에서 비롯된 친절은 네 번을 넘기지 못했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지안은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지안에게서 이지은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배우로서 최고의 찬사다.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이지은은 전작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2016)에서 꽃미남 황자들에게 사랑받는 고려 아씨 해수를 연기했다. 그에 앞서 KBS2 ‘프로듀사’(2015)에서는 두 얼굴의 톱스타 신디 역을 맡았었다. 첫 주연작인 ‘최고다 이순신’(2013)을 통해서는 씩씩하고 당찬 이순신으로 분했고, 드라마 데뷔작인 ‘드림하이’(2011)에서는 어리바리한 여고생으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대부분 사랑스럽고 밝고 활기찬 인물이었다. 늘 날이 서 있는 눈빛의 지안과는 확실히 다르다.
(사진=tvN)
그러나 이지안의 이야기는 지난 10년간 아이유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인간 이지은의 서사와 꽤 닮아있다. 어린 시절 사회에 뛰어들었다거나, 이로 인한 상처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데 조심스러워 한다는 점 등이다. 오늘날의 이지은은 가수 아이유로서 최정상에 올라 있다. 하루아침에 얻은 성공은 아니다. 그에게도 아픈 시절이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가족과 떨어져 바퀴벌레가 득시글대는 단칸방에 산 적도 있다. 가수가 되기로 마음 먹고서는 연예기획사와 노래 학원에서 사기도 빈번히 당했다. 모두 그가 10대 때 벌어진 일들이다. 상처를 딛고 가수의 꿈을 이룬 뒤에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명성을 얻을수록 악플러들의 표적이나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는 논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지은은 이지안과 달리 안정돼 보이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다행히 그에게는 음악이라는 세상과의 소통 수단이 존재하기는 한다. 단 이런 고충을 직접 표현한 적은 손에 꼽는다. 비교적 최근 JTBC ‘효리네 민박’에 출연해 “지금 잘될 때 즐기는 것도 중요한데 ‘이거 다음에 안될 거야’만 생각하느라고 행복할 틈이 없었다” “평정심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 내가 들떴다는 느낌이 들면 통제력을 잃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기분이 안 좋아진다”고 했던 것에서 어렴풋이 그의 속앓이를 짐작할뿐이다.
그렇기에 이지은이 지난달 열린 ‘나의 아저씨’ 기자간담회에서 “촬영 초반에는 지안이에게 압도 당했다”고 고백했을 때 걱정이 들었다. 이지은은 지안이란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동질감을 느꼈을 터다. 이 때문에 그가 지안의 무력감과 우울감에 함께 사로잡힐까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우려는 그의 다음 한 마디에서 씻겼다. 이지은은 “지안이 박동훈(이선균)을 만나 성장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웃었다. 그의 말대로 극 초반 세상에 대한 적대로 똘똘 뭉쳤던 지안은 동훈과 후계동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달라졌다. 타인의 호의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이를 표현할 줄 알게 됐으며,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느꼈다. 웃고 울고 속에만 품어뒀던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게 됐다. 앞서 이지은은 ‘나의 아저씨’ 출연 제의를 받았을 당시 “내가 지안이를 소화한다면 스스로 성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예상대로 ‘나의 아저씨’ 속 지안은 확실히 성장했다. 이를 통해 배우 이지은도 연기 성장을 증명했다. 이제, 이 모든 성장의 기운이 인간 이지은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