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뷰어스=손예지 기자] MBC ‘이리와 안아줘’(연출 최준배, 극본 이아람)는 주인공 길낙원(진기주) 윤나무(장기용)가 각각 열여섯 살의 자신을 안아주며 다독이는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이리와, 안아줄게”라는 말과 함께. 각자 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으로서 12년간 고통받으며 살았던 두 인물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그동안 낙원이가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이였는데요. 그 장면을 촬영하며서 느꼈어요. 이제 진짜 ‘괜찮다’고” 낙원 역을 맡아 회마다 적잖이 눈물을 쏟아야 했던 배우 진기주의 말이다. 그런 그도 “이리와, 안아줄게”란 말을 듣고 싶었던 때가 있었겠지 싶었다. “많았죠” 답하고 잠시 멈췄다. “그때마다 항상 혼자 견뎠다”며 웃더니 “낙원이를 책임져야 하는 건 나니까, 스스로 강해져야 했다. 낙원이처럼 단단해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낙원이는 우리 드라마의 정신적 지주였어요. 이야기의 전개는 나무 시점으로 흘러가지만 감정의 중심을 잡은 건 낙원이었죠.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아이거든요. 멋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한번은 생각해본 적 있어요. 낙원이 시점으로 드라마가 흘러간다면 어떨까? 너무 가혹하더라고요. 낙원이 시점으로 진행되면 피해자가 받은 고통을 온전히 다 표현해야 하잖아요. 너무너무 슬프고 고통이 가득한 드라마가 되겠구나 싶었죠. 낙원이의 하루하루,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요? 나무는 낙원이가 나오는 광고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리워하잖아요. 낙원이는 TV에 나올 때마다 ‘나무가 어딘가에서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힘을 내겠지’라는, 한 가닥 희망만 갖고 버텨요. 진짜 강한 아이죠”  진기주의 마음 속에는 아직 길낙원이 살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마치 눈 앞에 대본이 펼쳐진 것처럼 모든 장면과 대사를 선명히 기억했다. 당시의 감정을 떠올릴 때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자꾸 흐르는 눈물 탓에 촬영을 멈추는 일이 종종 있었단다. “힘듦의 시작을 알린 건 나무가 현무(김경남)의 칼에 찔렸을 때요. ‘나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많이 울었어요. 그 회차를 촬영하는 며칠 동안 울었던 것 같아요. 온몸으로 아팠습니다. 놀이공원 데이트 장면도 마음이 무거웠어요.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더라고요. ‘하루만 데이트하자’는 나무의 마음도, ‘싫다’고 할 수 없는 낙원이 마음도 알아서 버거웠어요. 이후로 박희영(김서형) 기자가 살해당하는 등 사건이 이어지면서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우울하기도 했고요. 그 즈음 PD님이 대사가 다 슬프게 들린다고도 하셨어요. 낙원이의 ‘괜찮다’는 말을 나무가 믿으려면 진짜 괜찮아야 하는데 누가 들어도 슬픔이 묻어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비결로는 대본을 꼽았다. 캐릭터의 감정이 대본에 충분히 설명돼 있었다고 했다. 그 덕분에 ‘살인자의 아들과 사건 피해자 딸의 사랑’이라는, 시청자를 설득하기 쉽지 않은 관계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낙원이 내레이션 중에 이런 말이 나와요. 나무가 ‘나의 세계를 파괴한 괴물의 아들이자 나의 유일한 구원자’라고요. 낙원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1년, 낙원이와 나무의 관계는 이미 단단했어요. 낙원이는 나무가 짊어진 짐에 호기심을 느꼈죠. 자신이 16년 동안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무게지만, 나무의 순한 본질을 꿰뚫어보고 제 울타리에 끌어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나무가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려 낙원이를 지켜주잖아요. 자기 아버지를 치면서까지요. 둘이 손 잡고 울다가 낙원이가 ‘죽지 말라’고 해요. 아마 나무에게만 한 말은 아니었을 거예요. 지옥을 같이 겪은 아이들이에요. 그렇기에 10년 넘게 헤어진 상태에서도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캐릭터의 감정과 이를 그리는 배우들의 진심이 통했다. ‘이리와 안아줘’는 4~5%대 시청률을 유지하며 큰 화제를 얻지는 못했으나 마니아들은 단단히 잡았다. 진기주는 “촬영하면서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너무 재밌는데 뒷 이야기는 어떻게 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덕분에 힘을 얻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상대 역의 (장)기용 씨와는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이라는 생각으로 촬영했어요(웃음) 특히 기용 씨와는 처음 둘이서 대본 연습을 하고 대화할 시간이 있었는데, 둘 다 부담감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다가 ‘사실은 진짜 부담스러워 미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같은 마음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의지하게 됐고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리와 안아줘’로 미니시리즈 첫 주연에 나선 진기주와 장기용의 뒤는 허준호(윤희재 역)·박수영(표택 역)·서정연(채옥희 역) 등 중견배우들이 든든히 받쳐줬다. 진기주는 특히 극 중 낙원의 매니저이자 기획사 대표 역으로 호흡을 맞춘 박수영에 대해 “편안하고 좋았고, 의지됐다”며 “극 중 나무와 표택의 케미스트리는 선배님이 판을 만들어주셨기에 가능했다. 실제 성격도 워낙 자상하시다. 후배들에게 밥도 잘 사주시고 챙겨주기를 좋아하셨다”고 자랑했다. “허준호 선배님과 연기할 때 끝나고 ‘선배님, 저 괜찮았나요?’ 여쭸더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좋긴 좋았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컷 촬영 후, 이번엔 나에게 ‘나 괜찮았니?’ 물으시는 거예요. 내가 답을 못 하니까 ‘너도 모르겠지? 우리끼리는 원래 잘 몰라. 봐주는 사람이 알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선배님이 이전부터 ‘최선을 다하지만 판단은 시청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하셨었거든요. ‘내가 잘한다고 느꼈어도 PD가, 시청자가 느끼지 못했으면 아닌 것’이라던 말씀이 이해가 됐어요. 연기에 담긴 내 진심이 보는 이들에게까지 통하려면, 나는 좀 더 경험치를 쌓아야 할 것 같아요. 또 서정연 선배님은 독특한 힘이 있어요. 선배님과 마주 앉아있으면 그 상황이 돼요. 눈을 마주치면 선배님이 자꾸 우시는 거예요. ‘나는 너를 못 보겠다’시면서요. 둘이 리허설 할때는 땅만 보고 대사를 맞춰야 했어요. 그런데도 선배님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럼 선배님이 호주머니에서 휴지 꺼내주시고(웃음) 아무리 감정이 깊은 장면이라도 선배님 앞에 앉아만 있으면 해결이 되어서 좋았습니다” 극 중 낙원의 직업은 배우다. ‘톱 배우’라는 설정이다. 이에 대해 진기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재이가 ‘톱’은 아닌 것 같다”고 웃었다. “극중에서 2018년도 영화제 신인상을 타니까 이제 막 빛을 보는 배우”라고 분석까지 했다. 그러면서 “작은 역할부터 차곡차곡 올라가는 과정이 나와 닮아있어 재밌었다”고 덧붙였다. 그런 한편, 진기주는 배우 이전에 언론사와 대기업에 다닌 이력이 있다. “원래 꿈이 배우와 기자였는데, 대학생 때 일간지 인턴기자를 했습니다. 그때는 기자가 천직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턴은 평일 근무만 하는데 나만 주말까지 일을 했을 정도로요(웃음) 집에서 뉴스보다가 사건이 터지면 현장에 가서 사진 찍어 올렸어요. 아무도 내 사진을 안 써주는데도요. 하하. 당시에 사진부 소속이었거든요. 사진부는 사회·문화 가리지 않고 모든 현장을 다닐 수 있어서 지원했죠. 선배들이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고 하셔서 혼자 기획 취재도 하고… 너무 즐거웠던 것 같아요”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그러나 기자 출신 아버지는 딸이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를 바랐다. 진기주가 대학 졸업후 대기업에 들어간 이유다. 하지만 기자를 하며 느낀 즐거움은 들지 않았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게 컸다.  “대기업을 다닐 때 연기 학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세상에는 논술·수학·영어 학원만 있는 줄 알았는데(웃음) 이전까지 연기자는 입밖으로 내뱉은 적 없는 나만의 꿈이었는데 다시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마음을 갖고 회사를 나왔어요” 돌고 돌아 이룬 배우의 꿈이다. 이제는 배우가 “천직인 것 같다”며 웃는 진기주다. 그는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 괴로울 때도 많지만, 그래도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연기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과정이라 스스로 의심하게 되고 채찍질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험처럼 명확한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촬영 직전까지 고민해야 하는 데서 정신적인 고통을 느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고민 끝에 촬영에 들어가면 모든 순간이 재미있습니다” 진기주는 처음 연기하던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2015년 방영된 tvN ‘두 번째 스무살’이 데뷔작이다. 인생 첫 장면은 최지우와의 투샷. “당시에 흰색 셔츠 위에 노란색 니트를 입고 청재킷을 걸친 상태였어요. 장소는 건대 도서관이었고요. 최지우 선배에게 가서 ‘이거 내 책인데요’ 하고 가져가는 장면이었죠” 진기주는 숨도 안 쉬고 당시 상황을 읊었다. “휴대전화로 모니터 화면을 촬영해서 보는데 ‘합성 아니야?’ 싶었다”면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사진을) 보내줬다”고 웃음 지었다.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늦게 데뷔한 편이라 많이 불안했어요. 오디션을 많이 보고 많이 떨어졌거든요. 시작조차 못 할까 걱정됐는데 고맙게도 ‘두 번째 스무살’을 촬영하게 된 거예요. 물론 지금도 불안감을 느낍니다. 차기작은 언제쯤, 무엇을 하게 될까… 이 기다림은 여전히 익숙지 않아요” 그런 한편, 기자와 대기업을 거쳐 배우가 된 진기주의 삶은 요즘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부럽게 느껴질 듯도 하다. 진기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거쳐온 일들을 땅땅땅 나열하면 빨리빨리 바뀐 것 같지만 나 역시 그 사이에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사회생활의 선배로서 아직 자리잡지 못한 청년들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괴로울 거예요. 스트레스도 심하죠.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져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무엇이고, 지금 잠깐 힘든 것 때문에 다른 일을 하려는 건 아닌지… 신중하게 질문하고 여러 답을 생각해보기를 추천해요. 그렇다고 도전에 대한 강박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해야죠. 남들보다 잘나가고 싶다거나 혹은 더 많은 걸 이뤄내고 싶은 마음은 나를 갉아먹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진기주도 여전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최근까지는 ‘이리와 안아줘’를 촬영했으므로 연기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특히 연기에 담은 진심이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될지 고민하는 중이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요? 내가 출연하는 작품을, 그게 무엇이든 보게 되는 배우죠. 그런 연기자이자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마주보기] 진기주, 이리와 안아줄게

손예지 기자 승인 2018.07.27 15:54 | 최종 수정 2137.02.19 00:00 의견 0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뷰어스=손예지 기자] MBC ‘이리와 안아줘’(연출 최준배, 극본 이아람)는 주인공 길낙원(진기주) 윤나무(장기용)가 각각 열여섯 살의 자신을 안아주며 다독이는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이리와, 안아줄게”라는 말과 함께. 각자 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으로서 12년간 고통받으며 살았던 두 인물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그동안 낙원이가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이였는데요. 그 장면을 촬영하며서 느꼈어요. 이제 진짜 ‘괜찮다’고”

낙원 역을 맡아 회마다 적잖이 눈물을 쏟아야 했던 배우 진기주의 말이다. 그런 그도 “이리와, 안아줄게”란 말을 듣고 싶었던 때가 있었겠지 싶었다. “많았죠” 답하고 잠시 멈췄다. “그때마다 항상 혼자 견뎠다”며 웃더니 “낙원이를 책임져야 하는 건 나니까, 스스로 강해져야 했다. 낙원이처럼 단단해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낙원이는 우리 드라마의 정신적 지주였어요. 이야기의 전개는 나무 시점으로 흘러가지만 감정의 중심을 잡은 건 낙원이었죠.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아이거든요. 멋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한번은 생각해본 적 있어요. 낙원이 시점으로 드라마가 흘러간다면 어떨까? 너무 가혹하더라고요. 낙원이 시점으로 진행되면 피해자가 받은 고통을 온전히 다 표현해야 하잖아요. 너무너무 슬프고 고통이 가득한 드라마가 되겠구나 싶었죠. 낙원이의 하루하루,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요? 나무는 낙원이가 나오는 광고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리워하잖아요. 낙원이는 TV에 나올 때마다 ‘나무가 어딘가에서 내가 웃는 모습을 보고 힘을 내겠지’라는, 한 가닥 희망만 갖고 버텨요. 진짜 강한 아이죠” 

진기주의 마음 속에는 아직 길낙원이 살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마치 눈 앞에 대본이 펼쳐진 것처럼 모든 장면과 대사를 선명히 기억했다. 당시의 감정을 떠올릴 때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자꾸 흐르는 눈물 탓에 촬영을 멈추는 일이 종종 있었단다.

“힘듦의 시작을 알린 건 나무가 현무(김경남)의 칼에 찔렸을 때요. ‘나무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심에 많이 울었어요. 그 회차를 촬영하는 며칠 동안 울었던 것 같아요. 온몸으로 아팠습니다. 놀이공원 데이트 장면도 마음이 무거웠어요.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더라고요. ‘하루만 데이트하자’는 나무의 마음도, ‘싫다’고 할 수 없는 낙원이 마음도 알아서 버거웠어요. 이후로 박희영(김서형) 기자가 살해당하는 등 사건이 이어지면서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우울하기도 했고요. 그 즈음 PD님이 대사가 다 슬프게 들린다고도 하셨어요. 낙원이의 ‘괜찮다’는 말을 나무가 믿으려면 진짜 괜찮아야 하는데 누가 들어도 슬픔이 묻어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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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비결로는 대본을 꼽았다. 캐릭터의 감정이 대본에 충분히 설명돼 있었다고 했다. 그 덕분에 ‘살인자의 아들과 사건 피해자 딸의 사랑’이라는, 시청자를 설득하기 쉽지 않은 관계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낙원이 내레이션 중에 이런 말이 나와요. 나무가 ‘나의 세계를 파괴한 괴물의 아들이자 나의 유일한 구원자’라고요. 낙원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1년, 낙원이와 나무의 관계는 이미 단단했어요. 낙원이는 나무가 짊어진 짐에 호기심을 느꼈죠. 자신이 16년 동안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무게지만, 나무의 순한 본질을 꿰뚫어보고 제 울타리에 끌어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나무가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려 낙원이를 지켜주잖아요. 자기 아버지를 치면서까지요. 둘이 손 잡고 울다가 낙원이가 ‘죽지 말라’고 해요. 아마 나무에게만 한 말은 아니었을 거예요. 지옥을 같이 겪은 아이들이에요. 그렇기에 10년 넘게 헤어진 상태에서도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캐릭터의 감정과 이를 그리는 배우들의 진심이 통했다. ‘이리와 안아줘’는 4~5%대 시청률을 유지하며 큰 화제를 얻지는 못했으나 마니아들은 단단히 잡았다. 진기주는 “촬영하면서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너무 재밌는데 뒷 이야기는 어떻게 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덕분에 힘을 얻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상대 역의 (장)기용 씨와는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이라는 생각으로 촬영했어요(웃음) 특히 기용 씨와는 처음 둘이서 대본 연습을 하고 대화할 시간이 있었는데, 둘 다 부담감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다가 ‘사실은 진짜 부담스러워 미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같은 마음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의지하게 됐고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리와 안아줘’로 미니시리즈 첫 주연에 나선 진기주와 장기용의 뒤는 허준호(윤희재 역)·박수영(표택 역)·서정연(채옥희 역) 등 중견배우들이 든든히 받쳐줬다. 진기주는 특히 극 중 낙원의 매니저이자 기획사 대표 역으로 호흡을 맞춘 박수영에 대해 “편안하고 좋았고, 의지됐다”며 “극 중 나무와 표택의 케미스트리는 선배님이 판을 만들어주셨기에 가능했다. 실제 성격도 워낙 자상하시다. 후배들에게 밥도 잘 사주시고 챙겨주기를 좋아하셨다”고 자랑했다.

“허준호 선배님과 연기할 때 끝나고 ‘선배님, 저 괜찮았나요?’ 여쭸더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좋긴 좋았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컷 촬영 후, 이번엔 나에게 ‘나 괜찮았니?’ 물으시는 거예요. 내가 답을 못 하니까 ‘너도 모르겠지? 우리끼리는 원래 잘 몰라. 봐주는 사람이 알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선배님이 이전부터 ‘최선을 다하지만 판단은 시청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하셨었거든요. ‘내가 잘한다고 느꼈어도 PD가, 시청자가 느끼지 못했으면 아닌 것’이라던 말씀이 이해가 됐어요. 연기에 담긴 내 진심이 보는 이들에게까지 통하려면, 나는 좀 더 경험치를 쌓아야 할 것 같아요. 또 서정연 선배님은 독특한 힘이 있어요. 선배님과 마주 앉아있으면 그 상황이 돼요. 눈을 마주치면 선배님이 자꾸 우시는 거예요. ‘나는 너를 못 보겠다’시면서요. 둘이 리허설 할때는 땅만 보고 대사를 맞춰야 했어요. 그런데도 선배님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럼 선배님이 호주머니에서 휴지 꺼내주시고(웃음) 아무리 감정이 깊은 장면이라도 선배님 앞에 앉아만 있으면 해결이 되어서 좋았습니다”

극 중 낙원의 직업은 배우다. ‘톱 배우’라는 설정이다. 이에 대해 진기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재이가 ‘톱’은 아닌 것 같다”고 웃었다. “극중에서 2018년도 영화제 신인상을 타니까 이제 막 빛을 보는 배우”라고 분석까지 했다. 그러면서 “작은 역할부터 차곡차곡 올라가는 과정이 나와 닮아있어 재밌었다”고 덧붙였다. 그런 한편, 진기주는 배우 이전에 언론사와 대기업에 다닌 이력이 있다.

“원래 꿈이 배우와 기자였는데, 대학생 때 일간지 인턴기자를 했습니다. 그때는 기자가 천직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턴은 평일 근무만 하는데 나만 주말까지 일을 했을 정도로요(웃음) 집에서 뉴스보다가 사건이 터지면 현장에 가서 사진 찍어 올렸어요. 아무도 내 사진을 안 써주는데도요. 하하. 당시에 사진부 소속이었거든요. 사진부는 사회·문화 가리지 않고 모든 현장을 다닐 수 있어서 지원했죠. 선배들이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고 하셔서 혼자 기획 취재도 하고… 너무 즐거웠던 것 같아요”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그러나 기자 출신 아버지는 딸이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를 바랐다. 진기주가 대학 졸업후 대기업에 들어간 이유다. 하지만 기자를 하며 느낀 즐거움은 들지 않았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게 컸다. 

“대기업을 다닐 때 연기 학원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세상에는 논술·수학·영어 학원만 있는 줄 알았는데(웃음) 이전까지 연기자는 입밖으로 내뱉은 적 없는 나만의 꿈이었는데 다시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마음을 갖고 회사를 나왔어요”

돌고 돌아 이룬 배우의 꿈이다. 이제는 배우가 “천직인 것 같다”며 웃는 진기주다. 그는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 괴로울 때도 많지만, 그래도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연기는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과정이라 스스로 의심하게 되고 채찍질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험처럼 명확한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촬영 직전까지 고민해야 하는 데서 정신적인 고통을 느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고민 끝에 촬영에 들어가면 모든 순간이 재미있습니다”

진기주는 처음 연기하던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2015년 방영된 tvN ‘두 번째 스무살’이 데뷔작이다. 인생 첫 장면은 최지우와의 투샷. “당시에 흰색 셔츠 위에 노란색 니트를 입고 청재킷을 걸친 상태였어요. 장소는 건대 도서관이었고요. 최지우 선배에게 가서 ‘이거 내 책인데요’ 하고 가져가는 장면이었죠” 진기주는 숨도 안 쉬고 당시 상황을 읊었다. “휴대전화로 모니터 화면을 촬영해서 보는데 ‘합성 아니야?’ 싶었다”면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사진을) 보내줬다”고 웃음 지었다.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사진=아이오케이컴퍼니)

 

“늦게 데뷔한 편이라 많이 불안했어요. 오디션을 많이 보고 많이 떨어졌거든요. 시작조차 못 할까 걱정됐는데 고맙게도 ‘두 번째 스무살’을 촬영하게 된 거예요. 물론 지금도 불안감을 느낍니다. 차기작은 언제쯤, 무엇을 하게 될까… 이 기다림은 여전히 익숙지 않아요”

그런 한편, 기자와 대기업을 거쳐 배우가 된 진기주의 삶은 요즘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부럽게 느껴질 듯도 하다. 진기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거쳐온 일들을 땅땅땅 나열하면 빨리빨리 바뀐 것 같지만 나 역시 그 사이에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사회생활의 선배로서 아직 자리잡지 못한 청년들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괴로울 거예요. 스트레스도 심하죠.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던져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진짜 바라는 게 무엇이고, 지금 잠깐 힘든 것 때문에 다른 일을 하려는 건 아닌지… 신중하게 질문하고 여러 답을 생각해보기를 추천해요. 그렇다고 도전에 대한 강박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해야죠. 남들보다 잘나가고 싶다거나 혹은 더 많은 걸 이뤄내고 싶은 마음은 나를 갉아먹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진기주도 여전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최근까지는 ‘이리와 안아줘’를 촬영했으므로 연기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특히 연기에 담은 진심이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될지 고민하는 중이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요? 내가 출연하는 작품을, 그게 무엇이든 보게 되는 배우죠. 그런 연기자이자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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