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뷰어스=노윤정 기자]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연출 최성범·극본 최수영)은 주제 의식이 분명한 작품이다. 외모 지상주의와 여성혐오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인식들을 비판한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극이 기획의도를 충실히 담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쉬운 점들이 보인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웹툰 ‘내 ID는 강남미인!’은 못생겼다는 조롱을 견디다 못해 성형수술을 선택한 강미래(임수향)가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겪는 일들을 그린다. 강미래는 성형수술을 하고 나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못생겼다’는 말 대신 ‘성괴’(성형괴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강미래가 듣는 혐오적인 표현들을 통해 작품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 노동과 외모 코르셋, 너무 익숙해서 인식하기조차 힘든 여성혐오를 가시화하고 비판한다.
드라마는 이런 원작 웹툰의 주제의식을 이어받는다. 하지만 이런 비판 의식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연출과 상황 묘사를 보자면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기엔 부족한 점들이 눈에 띈다. 일단 연출 면에서 지적받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장면들이 많다는 점이다. 첫 회 등장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오현정(도희)이 래퍼들을 찾아가는 장면, 미래 가족들이 노래방에서 노는 장면 등을 묘사하는 데 필요 이상으로 긴 시간을 할애한다. 주요 스토리에서 포커스가 벗어난 장면들이 많아지니 전개가 산만해지고 지루해지며 극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장면들이 줄어들게 된다.
(사진=JTBC 방송화면)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가장 문제되는 점은 바로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상충되는 설정과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것이다. 6회에 묘사된 김태희(이예림)와 구태영(류기산)의 대화가 단적인 예다. 김태희는 물건 품평하듯 여학생들의 외모를 지적하는 남자들을 향해 “예쁘다는 것도 싫다고. 누가 예쁘다고 해 달래? 우리가 무슨 매장에 진열된 물건이야? 어떤 건 예쁘고 어떤 건 안 예쁘고”라고 소리친다. 그 후 마음이 상한 김태희를 달래며 구태영은 “안 빼도 돼”라고 말한 뒤 “난 너무 마른 애들 싫던데. 나 같은 남자도 많아. 너처럼 통통하고 귀여운 스타일 좋아하는”이라고 말한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핑크빛 기류가 형성된다.
어딘가 이상하다. 남성의 잣대로 외모 평가 받는 현실에 울분을 토하는 여성을 달래면서 또 다시 남성의 잣대를 들이대 외모를 평가하고 있다. 극의 기획의도대로라면 살이 쪘든 말랐든 여성이 자신의 몸을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극은 여전히 여성의 외모를 먼저 이야기하는 구태영과 그 말을 듣고 설레 하는 김태희의 모습을 그린다. 극의 주제의식과는 한참 동떨어진 모습이다.
(사진=JTBC 방송화면)
도경석(차은우)의 어머니 나혜성(박주미) 캐릭터 역시 원작과 달라진 설정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원작 속 나혜성은 ‘나는 꽃이 아니다’고 말하며 여성의 미모를 관상용으로 여기는 현실을 비판하고 기존 가부장적 사회가 강요하던 모성애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나혜성 캐릭터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춰 설명되고 전 남편에게 두고 온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모성애 가득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나혜성은 여성이 외모 코르셋으로 인해 얼마나 불행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그 캐릭터를 너무 단편적으로 그리다 보니 주제의식까지 흐릿해진다.
웹툰 ‘내 ID는 강남미인!’은 여성을 억압하는 외모 코르셋의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강미래가 각성하게 되는 계기가 결국 ‘잘난 남자’ 도경석의 존재라는 점에서 완벽히 여성 중심 서사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외모로 인한 차별과 혐오가 가득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 원작의 이런 메시지를 충실히 반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기획단계서부터 원작 메시지를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던 터다. 다소 민감할 수 있으나 현 시점에서 다뤄야 할 의미가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웹툰보다 파급력이 큰 TV 드라마이기에 더욱 신중하고 고심할 수밖에 없겠지만 아직까지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는 그런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남은 회차 동안 강미래-도경석의 풋풋한 러브라인과 함께 원작의 유의미한 메시지도 함께 담아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