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택지 공급 시스템에 대한 대수술이 예고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19일 국무회의에서 이른바 '벌떼 입찰' 문제를 정면 비판하면서 택지 공급 시스템의 전면적 개선을 주문했기 때문. 건설사들의 회사 쪼개기, 가짜회사 동원, 계열사 집중 낙찰 등의 편법이 만연했던 과거 사례들이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국무회의 주재 모습. (사진=연합)
■ "공공택지 투기판 전락"…이 대통령 '벌떼 입찰'에 경고
전날(3일) 공개된 제26회 국무회의(6월19일) 회의록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주택 건설을 위해 강제 수용된 공공택지가 기업들의 투기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공공이 조성한 택지를 민간이 통째로 가져가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평에 500만원으로 조성된 땅이 시세는 1000만원에 이르니 가짜 회사들이 수백 대 일로 몰려드는 것"이라며 이른바 '벌떼 입찰'에 대해 경고했다.
LH 등 공공기관이 택지를 공급하면 건설사들이 소위 페이퍼컴퍼니를 무더기로 동원해 입찰 경쟁을 벌이고 낙찰된 사업권을 다시 본사나 계열사로 전매하는 구조를 비판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나아가 "LH가 직접 시공을 하거나 건설사에는 도급만 주는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며 대대적인 시스템 개혁까지 제안했다.
■ '벌떼 입찰' 사례 다수…서류상 법인 수 개, 계열사 쪼개기 관행
'벌떼 입찰'은 하나의 건설 그룹이 수십개의 법인을 설립하거나 계열사나 가족회사, 가짜회사 등을 동원해 한 사업장 입찰에 동시에 참여하는 행태를 말한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라는 점. 사무실, 직원, 기술자도 없이 서류만으로 등록된 이들 법인은 사업권 확보 후 폐업하거나 본사에 전매되는 방식으로 활용돼 왔다. 이런 방식은 공정한 경쟁을 훼손할 뿐 아니라 실제 분양가 상승이나 시공 품질 저하 등 실질적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 정부와 공정위, 수사기관은 대형 건설사들의 조직적 입찰 비리를 여러 차례 적발해 과징금 조치를 내리는 사례가 많았다.
구체적으로, 호반건설은 97건의 공공택지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창업주 일가 명의의 특수관계법인을 포함해 수십개 계열사를 동원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당시 공정위는 6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명의대여와 내부거래 혐의는 형사 논란이 된 사례가 있다.
호반그룹 사옥 전경. (사진=호반그룹)
대방건설도 파주 운정신도시 등 LH 택지 입찰에 9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낙찰을 받은 후 계열사에 사업권을 넘기고 회사는 폐업 처리한 사례가 있다. 국토부는 검찰 고발과 함께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내렸다.
우미건설과 중흥건설은 22개 자회사를 활용해 900회 이상의 입찰에 참여했고 낙찰 사업권은 본사나 가족회사에 집중됐다. 중흥건설은 특정 사업장에서만 5개 계열사가 동시에 추첨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단속 결과 최근 3년간 총 395건의 페이퍼컴퍼니 입찰 사례를 적발했다. 이 중 다수는 건설업 등록기준 미달, 명의대여, 겸직 인력 활용 등 법 위반 사항이 포함됐다.
■ 李, 개발이익 환수제 강화도 강조…"이미 강화돼, 현실적 대안 필요" 지적
'벌떼 입찰'은 단순한 행정 위반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평가된다. 정부는 벌떼 입찰 근절을 위해 등록기준 강화나 계열사 입찰 수 제한, 입찰권 전매 금지, 가짜 회사 현장 실사 등을 시행하고 있다. 공정위·국토부·경찰청 등은 합동 점검을 확대하고 있다. 과징금·형사처벌·영업정지 등도 강화 중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법인 쪼개기와 가족회사 활용, 명의 겸직 등으로 여전히 우회 통로를 찾고 있는 상황. 실효성 있는 시스템 개혁이 병행되지 않는 이상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스템 전반의 개혁 없이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 건설정책 전문가는 "입찰 참여 기업의 실체 확인을 위한 정량, 정성 기준 도입과 법인 명의중복 참여 금지, 유령회사 등록 차단 등의 조치가 병행돼야 실질적 효과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개발이익 환수제의 실질적 강화도 강조했다. 공공이 택지를 개발해도 민간이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가는 현 시스템에서 불로소득을 일정 부분 국가가 환수해 시장 안정과 조세 형평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과거 한 칼럼에서 개발이익 환수제 관련 "국제 기준으로도 한국의 개발이익 환수장치는 강한 편"이라며 "시대 변화에 맞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어, 개발이익 환수제 강화 예고에 대한 논란도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