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SBS
SBS 드라마 ‘녹두꽃’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잘 정제된 시나리오로 호평을 받으며 7%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호평과 별개로 시대에 대한 고증은 엄격함이 요구된다. 자칫 드라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녹두꽃’ 속 무기들 역시 곳곳에서 아쉬운 ‘옥의 티’들이 보인다.
녹두꽃의 역사적 배경은 조선말 고종 31년인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접주 전봉준과 다른 지도자들이 주축이 되어 벌인 동학농민혁명이다. 전라도 고부에서 벌어진 1차 봉기와 전라도 전주 일대에서 벌어진 2차 봉기로 나눠지며 반봉건 반외세 운동으로 최근 혁명으로 재조명 되고 있다. 드라마 제목이 ‘녹두꽃’이지만, 녹두장군 전봉준 개인의 이야기는 줄이고, 그를 둘러싼 민초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
드라마는 총 48부작으로 현재 20부까지(5월 31일 현재) 방영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거의 최초의 드라마로 여러 가지 소품이 나오는데, 특히 당시 전투에 쓰였던 각종 무장들이 눈길을 끈다.
사진=화승총
먼저 동학농민군의 신분을 나타내듯 죽창과 농기구가 그들의 주요 무장으로 사용되며 포수들이 주축이 된 화승총병들도 드라마에 잘 재현되어 있다. 지역 관군의 경우 우리가 잘 아는 환도와 삼지창이라고 흔히 우리가 부르는 당파, 그리고 화승총 등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중앙에서 내려온 초토사의 병력들은 포병전력까지 거느리고 있고 청군과 일본군은 조선 중앙군과 확연히 차이나는 신식 무장을 하고 있다.
사실 한국 사극 드라마에서 ‘옥에 티’를 찾자면 아닌 부분을 찾는 게 더 빠를 만큼, 고증이 재미를 위해 희생된다. 또 자잘한 소품은 물론 주된 내용까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각색이 되는 경우가 많다. ‘녹두꽃’은 비교적 잘 고증된 드라마이지만 어쩔 수 없는 ‘옥의 티’가 눈에 보인다.
먼저 삼지창이라고 알고 있는 당파는 사실 일반적인 무기가 아닌 특수한 훈련을 받은 장병이 쓸 수 있는 특수병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극에서는 이 당파가 포졸을 상징하는 무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드라마에 많은 수의 화승총과 볼트액션식 총기들이 등장한다. 아마도 한국 드라마 사상 화승총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드라마용 화승총은 일부는 자체 제작하고 일부는 기존에 있던 드라마 소품용 화승총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학농민혁명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자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포란 대포를 축소해 손으로 들고 쏠 수 있는 원시적인 총기로 당시 조선의 포수들이 애용하는 무기였다.
사진=천보총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무기인 천보총은 말 그대로 사정거리가 천보(약 1000미터)의 원거리 저격총기로 영조 1년인 1725년부터 개발이 실시되어 1737년에 대량 생산되어 주로 변방 국경에 지급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문헌에 따르면 1871년 어영청에 1정이 있었다고 되어 있어 1894년이 배경인 이 드라마에 이 총이 사용 되는 것은 그다지 억지가 아니지만 드라마 상에선 이 총이 너무 과장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현존하는 유품이 없어 정확한 성능이나 제원을 알기 힘들지만 당시 화승총의 제원이나 과학기술을 유추해 생각해 보자면 천보까지 탄환이 날라 간다는 거지 정확한 저격이 가능한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실제로 첨단과학기술로 만든 오늘날의 저격총도 308이하 구경의 총기들은 1000미터에서 정확한 저격이 힘든 경우가 많다.
사진=99식 소총
주연급 배우들과 일부 등장인물은 볼트 액션식 총기를 사용하는데 이 역시 역사적 상황과 맞지 않다. 백이현 역을 맞은 윤시윤은 38식 소총 혹은 99식 소총을 38식으로 보이게 개조한 총을 사용한다. 이 소총은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주력으로 사용한 99식 소총의 원형이 되는 소총으로 1905년에 제작이 되어 1906년 일본군에 본격적으로 사용되었고 1945년까지 지급이 되었다. 따라서 10년 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에 일본군도 아닌 조선군 소속 향병(민병대)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옥의 티’가 된다.(99식이라면 더욱 더 큰 고증 오류) 아마도 극중에서 백이현이 일본유학생 출신이라는 점에서 일본제 총을 주어 캐릭터의 특색을 더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버들이
또 다른 등장인물인 최강현부대의 최고의 여성 포수 버들이역을 연기한 노행하 역시 주로 볼트액션식 총기를 사용하는데 천등으로 총기의 전체적인 실루엣을 가려 정확한 모델을 알수 없지만 총열과 자작 탄창 등에서 유추해 보면 마우져사의 G98 계열 총기를 개조해 독일의 게베어 1888(Gewehr 1888)로 보이게 만든 소품으로 보인다. 이 총은 독일에서 생산되어 1888년부터 판매되었고 수출도 활발히 이뤄졌다. 청나라는 1894년부터 1895년에 벌어진 1차 청일전쟁을 위해 구입했고 이후 한양88식 소총이라고 명명해 이후 50년간 제식 소총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이 소총 역시 버들이가 당시에 사용하기 힘든 총기이고 버들이가 이 총을 사용했다면 아직 파병되지 않은 나라의 최신 주력 소총을 사용하는 버들이는 청나라가 보낸 고도의 여성 스파이라는 말이 된다.
드라마에서 개틀링건 역시 등장하는데 조선시대 말 조선군에서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등장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열악한 국내 프롭 총기 사정에 의해 조악하게 제작한 소품이 등장했다.
기존 사극에 비해 ‘녹두꽃’은 비교적 고증을 잘 지키고 있고 특히 총기나 소품에서 담당자들과 감독의 고뇌가 느껴 질 정도다. 부족한 점은 있지만 고증을 지키면서도 재미와 시청률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태상호(군사전문기자) / 전쟁터를 취재하는 기자이자 전술교관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아프리카 등을 취재했다. 전미사격협회(NRA)와 SUREFRE Institute 등의 기관에서 전술교관 코스를 이수했고, 국내외 특수부대 전술 관련 교육 및 국방안보와 전술 관련을 취재하고 있다. 국내 최초 총기예능 ‘방탄조끼단’에서 배우 정찬과 함께 호스트로 출연했고 최근에는 드라마 '배가본드'에서 사격자세를 교육하는 등 여러 콘텐츠에 군사 자문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