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우리나라를 근현대 전쟁을 겪고도 가장 빨리 성장을 이뤄낸 국가로 평가한다. 물질과 문화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속내를 살펴보면 아프기 그지없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부터 집과 경력마저 포기하는 오포세대. 취업난과 경제난을 말하는 청년들은 벼랑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 저자는 사람들이 착취당하고 소진 당하는 현실에 주목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를 오징어잡이배와 비교한다. 검은 밤바다를 수놓은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은 오징어를 포획하기 위한 장치이고, 가짜 안정감을 주는 수족관들은 죽기 위해 연명하는 생물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진정성을 흉내내는 가짜 생태계이며 자기답게 삶을 살 수 없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조작된, '사물화된' 존재들이라 말한다. 마찬가지로 집어등과 수족관은 우리 사회에도 있다. 이 참담한 소진사회에서 오늘날 시대의 억압은 '집어등'처럼 매혹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수족관'에서처럼 가짜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결국 사람들은 끝없는 억압과 경쟁, 소진 속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사진=영상 캡처
저자는 물고기가 바다에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처럼 인간 역시 살아있는 개인 뿐 아니라 진정한 연대로서의 공동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과 '종교'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우리는 모두 비극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희망의 주체로 설 수 있을 것인가?"가 이 책의 중심이다. 종교, 사회와 같은 거대 층위에서부터 광고, 인터넷 담론과 같은 미시적인 층위까지 모두 '장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스스로가 희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책은 저자가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한 '인간과 종교'의 내용을 기초로 한 것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저술지원 선정작이기도 하다. 단지 이론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청년들과 삶의 주요 화두들을 함께 씨름한다. 최고의 스펙, 최저의 고용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신경증적 패러다임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청년지성들에게 장치에 포획당하지 않는 길을 모색하고 사랑, 집, 배움, 일, 생생하게 살아있기 등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김화영 지음 | 나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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