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악화, 계층 간 격차 심화, 노령화…다양한 사회현상들이 사회공헌의 필요성과 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각기 다른 상황에 걸맞는 실질적 도움보다는 천편일률적 방식들이 대다수란 지적이 나옵니다. 정책 역시 미비하거나 아예 정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죠.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습니다. 효율적이고 현명한 방법들 역시 보고 듣고 배우는 것과 비례할 겁니다. 이에 뷰어스는 [아는 것이 힘]을 통해 다양한 해외 사회공헌 활동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거나 국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활동 및 정책들을 살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편집자주
사진=레드 노즈 데이 액츄얼리 영상 캡처
빨간코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루돌프, 피에로, 술주정뱅이…희화화된 수많은 이미지들 속에 빨간코는 영국에서 진화하며 나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즐거운 기부(Fun Donation)의 선봉주자인 ‘레드 노즈 데이(빨간코의 날·Red Nose Day)’를 통해서죠. 영국 국민 80% 이상이 참여하는 기부의 날을 대표하는 상징, 바로 빨간 코입니다.
이 ‘레드 노즈 데이’는 1988년 시작해 1989년부터 2년에 한번씩 3월 둘째주 금요일에 진행됩니다. 영국 개그맨이 획일화된 자선 활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자선단체가 지금의 축제 같은 기부의 날을 만들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미국의 핼러윈 데이 정도의 규모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날만 되면 영국에선 집이며 학교, 거리가 모두 빨간코 행렬로 뒤덮이거든요.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보고 들으며 안타까워하고 숙연해하기보다 빨간코를 붙이고 즐기는 모금행사가 진행됩니다. 사람들이 빨간 코를 붙이는 가격, 단돈 1파운드(1474원)가 모여 어마어마한 기부금이 전세계 소외계층으로 전해집니다.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더욱 다채롭고 재미난 스타일의 빨간코를 만들어내며 기부에 동참합니다. 그 금액을 볼까요? 올해에만 해도 ‘레드 노즈 데이’를 통해 6만 3938만 72파운드, 한화로 1670억원 가량(레드 노즈 데이 홈페이지 기준)이 모였습니다.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금액을 합하면 1조원을 훌쩍 넘어선다고 해요.
사진=레드 노즈 데이 홈페이지
물론 빨간코 판매 수익만 모은 금액은 아닙니다. 일반인들이 각자 빨간코와 관련한 개성 넘치는 행사를 통해 모금을 하고 기부하는 가운데 영국 BBC 방송사가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진행하는 특별 생방송 역시 모금으로 이어지면서 어려운 이들을 도울 더 많은 돈을 모읍니다. 영국 수상이 동참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명 스타들도 너도나도 앞다퉈 동참한다니 ‘레드 노즈 데이’가 얼마나 영국인들의 삶에 안착했는지, 그들에게 의미 깊은 날인지 체감이 되시죠?
단적인 예는 아마도 영화 ‘러브액츄얼리’의 후속편이 아닐까 싶습니다. ‘러브 액츄얼리’는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고 아직까지도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대명사로 여겨지죠. 이 작품이 2년 전인 2017년, 14년 뒤를 그린 내용으로 전세계 팬들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후속편의 제목은 ‘레드 노즈 데이 액츄얼리’, 바로 빨간 코의 날을 기념하고 기부와 모금을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죠. 놀라운 점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주저하지 않고 참여해 작품 속 캐릭터로 다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저돌적 수상이었던 휴 그렌트는 여전히 춤을 추다 계단에서 넘어지고, 공항에서 사랑을 고백했던 학예회 꼬마 커플은 리암 니슨 앞에서 결혼 허락을 구하죠. 아직도 회자되는 스케치북 고백의 주인공은요? 키이라 나이틀리 앞에서 ‘엄청난’ 연인을 소개합니다. 카메오였던 미스터빈 로완 앳킨슨은 빨간 코 포장에 과한 공을 들이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웃게 합니다. ‘러브 액츄얼리’ 감독 리처드 커티스가 이 단체 소속인 점도 작용했겠지만 세계적 명성과 몸값을 누리는 스타들 모두가 오직 ‘레드 노즈 데이’를 위해서,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기꺼이 출연한 것이란 점에서 귀감이 될 만합니다.
사진=레드 노즈 데이 액츄얼리 영상 캡처
기부라고 해서 심각할 필요도, 어려울 이유도 없다는 것을 방증한 사례가 바로 ‘레드 노즈 데이’입니다.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즐기며 기부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나눔이 어디 있을까요. 가치를 입증하듯 ‘레드 노즈 데이’는 영국을 넘어 미국, 독일, 벨기에, 핀란드, 아이슬란드, 중국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생각해볼 지점입니다. 보통 우리나라의 기부금 행사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탄식과 동정의 눈물이 뒤섞인 분위기가 대부분입니다. 거리 모금 역시 호소에 가깝죠. 모두가 웃으며, 행복하게 기부할 수 있다면 같은 액수라도 그 가치는 더욱 커지지 않을까요. 더욱이 경기 악화, 삶의 피로도, 스트레스 등 괴로운 단어들이 가득한 현대사회에서라면 기부자를 행복하게 하는 일, 그것부터가 나눔이자 공헌이 아닐까 싶습니다. 웃으면서 기분 좋게, 기꺼이 나눔에 동참할 수 있는 일이 국내에서도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