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한 소재는 ‘검증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 덕(?)에 귀신이나 유령 등은 여름에 ‘등골 서늘한 납량 특집’이라는 타이틀 아래 대중과 만났다.
피 칠갑을 한 귀신이 주인공 뒤를 따라다니고, 학교를 배경으로 원한에 찬 여학생 귀신이 복수를 한다는 등의 설정이다. 대부분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지만, 그 과정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귀신의 얼굴과 음향은 ‘공포’스러웠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방송됐던 ‘전설의 고향’이나, 공포영화의 한 획을 그은 ‘여고괴담 시리즈’ 등이 대표적이다. ‘불확실하게 미지의 존재’가 주던 공포다.
어느 시간이 지나고 공포를 주는 소재가 바뀐다. ‘검증 되지 않은 존재’인 귀신이나 유령이 아닌, ‘검증된 존재’인 인간을 내세웠다. 과거에는 단순히 ‘살인을 했다’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를 구성했던 드라마나 영화들이 이제는 ‘어떻게 살인을 했느냐’를 전면에 내세웠다.
미국 드라마 등에 영향을 받은 한국 드라마들이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다. 더 황당한 동기로 더 잔인하고 더 상세하게, 죽이고 납치하고 사기를 치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뉴스 등 대중매체가 보여줬던 익숙함’이 주던 공포다.
그런데 인간을 전면에 내세워 공포를 주던 드라마나 영화의 ‘약빨’도 이제는 지지부진하다. ‘익숙함이 주던 공포’는 거꾸로 ‘공포가 주는 익숙함’으로 인해 자극이 약해졌다. 납치, 강간, 폭행, 살인, 방화 등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반복되면서 감각은 이미 ‘간접 공포 경험치’를 올렸다.
모순되게도 현실을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나 영화 속 공포의 익숙함은 오히려 현실 속에서는 ‘불안감의 증폭’으로 표출된다. 여기에 ‘사건을 재구성한’이라든가,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전제는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도 낳았다. 악순환이다.
방송계 관계자들과 자리에서 “범죄가 진짜로 증가한 것이냐, 범죄 뉴스가 증가한 것이냐”라는 질문이 오갔다. ‘둘 다 증가했다’가 맞다. ‘왜 증가했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가 미치는 영향은 ‘추정일 뿐’이라는 전제하에 묻혔다. 반박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가 더 상세하게, 더 잔인하게, 더 자극적으로 드라마와 영화가 나올 듯 싶다. ‘간접 경험치’를 측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