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결국 칼을 빼 들었다. 30일 SK온과 SK엔무브는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사 간 합병을 결의했다. 흡수합병 방식이며 존속법인은 SK온이다. 합병 기일은 오는 11월 1일이다.

합병의 배경은 명확하다. SK온의 심각한 재무 구조 악화다. 지난해 SK온은 1조127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251%에 달한다. 이로 인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재무 상태도 나빠졌다. SK온 분사 전인 2020년 23조원 수준이던 SK이노베이션의 부채는 2024년 말 기준 70조8812억원까지 치솟았다.

반면 SK엔무브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글로벌 1위 점유율의 기유 시장을 기반으로 2021년부터 3년 연속 1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기차 윤활유, 냉난방공조, 액침냉각 기술 등 전기차 특화 솔루션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안정적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해왔다.

■ 지분 100% 편입·중복 상장 우려 선제 대응

이번 합병으로 SK온은 자본 1조7000억 원,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8000억원 수준의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즉시 얻게 된다. 기술적 시너지도 예상된다. SK엔무브의 액침냉각 기술은 전기차 배터리와 ESS의 열안정성 향상에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은 이로 인해 2030년까지 2000억원 이상의 EBITDA 추가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합병은 최근 시장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상법 개정 등으로 ‘중복 상장’에 대한 부담이 커진 가운데, SK온과 SK엔무브를 별도로 증시에 올리는 방안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최근 SK엔무브 지분 30%를 추가 매입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고, IPO 절차도 중단시켰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합병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SK그룹이 지난해에도 두 회사를 합병하려다 FI(재무적 투자자) 반발로 무산된 전력이 있음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은 전방위 리스크 대응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총 8조 수혈…지주사까지 나선 자본 방어전

SK이노베이션은 이와 함께 총 8조원 규모의 자본 확충 계획도 병행하고 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2조원, 영구채 발행 7000억원, 자회사 SK온 유상증자 2조원, SKIET 유상증자 3000억원 등 5조원 규모의 조달안이 추진되고 있다.

SK㈜는 2조원 유상증자 중 4000억원을 직접 출자하고, 나머지 1조6000억원은 복수의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으로 조달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SK이노베이션의 재무 건전성을 방어하고, 중장기적으로 지주사 기업가치 하락을 저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 출혈이냐 성장이냐…실제 수익 구조 개선 ‘주목’

장용호號의 첫 시험대이번 합병은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의 취임 후 첫 대형 의사결정이기도 하다. 지난 5월 말 공식 선임된 장 사장은 타운홀 미팅에서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은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라며 구조 개편의 불가피성을 언급해왔다.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은 그룹 전체의 재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응급처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시장은 이번 결단이 SK온의 IPO를 위한 포장에 그치지 않고, 실제 수익 구조 개선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