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합병과 자체 독립을 통해 보험대리점을 설립하고 규제를 회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현대해상, 미래에셋생명)
보험사들이 합병이나 자체 독립을 통해 보험대리점(GA)을 연이어 설립하고 있다. 보험사 핵심 인력인 전속설계사도 이관하며 제조 및 판매 분리, 이른바 '제판(製販) 분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GA 설립은 제조 및 판매 분리를 통해 상품 개발과 고객 서비스, 자산운용에 집중해 경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유다. 하지만 GA를 통해 곧 시행되는 '1200% 룰'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1200% 룰'이란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초년도 모집수수료를 초회 보험료의 1200%로 제한하는 규제로 내년부터 시행된다. GA는 현재 이 규제 준수 의무가 없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중장기 경영전략인 '비전 하이(Hi) 2025'를 진행하며 지난 10월 채널전략 특별전담조직(TF)를 꾸리고 자회사형 GA 설립 여부와 시기 등에 대해 논의 중이다.
미래에셋생명도 내년 3월 설립되는 GA인 '미래에셋금융서비스'로 자사 FC와 CFC 등 전속 설계사 3300여명을 이동시킬 예정이다. 미래에셋생명은 지난 11월 채널혁신추진단을 출범하고 이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미래에셋생명 관계자는 "다양한 보험회사의 상품을 비교해 판매할 수 있는 GA 채널로 판매 주도권이 전환되는 흐름에 대응해 판매 채널 재편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한화생명도 자회사형 GA 두 곳을 합병할 예정이다. 한화생명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라이프에셋'과 '한화금융에셋'은 한화라이프에셋이 한화금융에셋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이번 합병과 별도로 한화생명은 또 다른 자회사형 GA 설립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기존에 계획되어 있던 합병일 뿐 설계사 이동 등의 사항은 결정된 게 없다"며 "1200% 룰 문제는 합병과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하나손해보험도 지난달 이사회에서 보험대리 및 중개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자회사 설립 안건을 통과시키면서 별도의 판매채널 설립을 공식화했다.
보험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회사형 GA를 탄생시키는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1200% 룰' 적용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간 보험사 전속 설계사보다 높은 수수료와 선급금 지급을 약속하며 판매인력 확충에 나섰던 GA의 영업방식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간 보험설계사의 모집 수수료는 판매 경쟁 과열로 상승했다. 모집 수수료 상승은 보험사의 과도한 사업비 지출과 설계사 정착률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과열 양상을 막기 위해 '1200% 룰'이 담긴 보험업 감독규정을 2021년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이러한 규제에 보험사는 자회사형 GA를 설립을 통한 꼼수로 '1200% 룰'을 피할 수 있다. 전속설계사를 해당 GA로 이관하면 '1200% 룰'을 적용받지 않아도 된다.
또 보험사 입장에서는 자회사형 GA를 이용할 경우 이탈하는 전속설계사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200% 룰에서 제외되는 GA 소속 설계사의 경우 초회 보험료 12배를 넘어서는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당국이 이러한 꼼수를 파악하지 못한 건 아니다. 앞서 당국은 '1200% 룰'을 어긴 GA에 대해서는 집중 검사대상 기관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두고 GA를 마땅히 제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앞으로 진행될 보험사의 움직임은 GA 시장을 둘러싼 판도에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중·대형 GA(설계사 100명 이상)의 전속 설계사는 지난해 18만 9396명으로 1년 만에 8650명 증가한 반면 소형 대리점은 4만 3375명으로 전년보다 1117명 줄어드는 등 감소세를 이어갔다. 보험업계는 이 같은 양극화가 내년을 기점으로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