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좋아 ‘반신반의’다. 주식투자 시장에 온라인 시스템이 도입되고는 있었지만 고객들은 여전히 계좌 개설부터 투자 상담, 그리고 거래전표 작성까지 지점을 찾는 데 익숙했다. 닷컴버블의 끝자락이던 2000년, ‘지점 없는 온라인 증권사’를 표방하며 출발한 신생 증권사를 향한 시선에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던 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신바람 이박사가 출연했던 키움닷컴증권 광고 갈무리)
■ 설립 2년만에 흑전, 18년 연속 1위
키움닷컴증권의 시작은 1999년 여의도 한 임대 사무실이다. 7명의 증권 전문가와 당시 정보기술(IT)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2000년 1월 31일 처음 문을 열었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증권업에 관심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관여는 크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증권업에 뿌리를 두지 않았던 만큼 투자자금 및 IT 시스템 지원에 주력하고 전문가들을 통해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후 키움증권이 내놓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영웅문' 시리즈는 단번에 시장 이목을 끌었다. 여타 증권사들의 HTS가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키움증권은 모든 구성을 사용자 중심으로 바꿨다. 여기에 기존 증권사 대비 ¼ 수준의 수수료 정책이 더해지며 곳곳에 흩어져 있던 개인투자자들을 빠르게 집결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키움증권은 자칫 저렴한 수수료가 저품질 서비스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데 경각심을 놓치지 않았다. 주문부터 상품안내 등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담당하는 고객만족센터(콜센터)를 강화하고 직원들은 고객을 찾아 직접 발로 뛰며 고객 대응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HTS의 모든 업그레이드 과정에 고객 의견을 반영하는 등 초점을 사용자에게 맞췄다. 당시 키움증권은 고객의 악플에도 일일이 대응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밀착형 서비스를 특색으로 내세웠다.
결국 키움닷컴증권은 시장의 의구심을 넘어 출범 2년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한다. 광고비와 전산투자비로 인해 첫해 적자를 피하지는 못했지만 투자상담을 위한 인건비와 지점 운영에 따른 관련 고정비용이 없다보니 고객 증가에 따른 에너지가 모두 체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IMF 위기를 맞아 대우증권이 흔들린 이후 10% 이상의 점유율을 가져가는 증권사가 전무했던 시절, 키움증권은 낮은 수수료와 거래 편의성을 주무기로 단숨에 투자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했다.
키움의 성장세는 그야말로 매서웠다. 대다수 대형사들이 1%씩 점유율을 나눠갖고 있을 무렵 키움은 설립 2년차에 점유율 3%를 돌파했고 2004년에는 당시 브로커리지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대신증권도 뛰어넘는다. 키움증권의 이 같은 급성장을 두고 증권가에선 ‘규모의 경제’를 확립한 키움증권의 독주를 깰 수 있는 변수는 남북통일 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 정도다.
온라인을 통해 기업의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하고 투명성과 서비스 안정성에 집중한 키움닷컴증권이 주식시장에서 점유율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5년. 그리고 지금까지 18년간 단 한번도 주식 위탁매매 부문에서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발달을 이뤄낸 대한민국의 한 가운데에서 그 과실을 제대로 맛본 증권사가 됐다.
올해 2분기 기준 키움증권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4.54% 수준이다. 한때 30%대까지 치솟던 데 비해선 낮아졌지만 경쟁사들과 비교한다면 여전히 업계 비교 불가다. 싸고 품질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회사의 정체성이 효율성으로 이어지면서 어느새 비주류였던 회사는 주류, 증권가의 중심으로 입지를 굳혔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지난 5월 4일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에서 최근 발생한 외국계 증권사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시장의 위기 vs 오너의 위기
위축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난 5월 증권가에서 벌어진 차액결제거래(CFD) 사태 당시 김익래 다우금융그룹 회장이 연루되면서 키움증권은 단번에 쑥대밭이 돼 버렸다. 주가 조작, 투자자 피해 등 금융사로서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각종 키워드들이 연일 키움증권과 관련해 쏟아져 나왔다.
특히 김 회장이 주가 조작을 인지했는지 여부를 떠나 기업 오너가 보유 중이던 자사 주식을 고가에 처분했다는 점을 두고 투자자들은 실망감을 떨쳐내기는 어려웠다. 조직 내부가 술렁이며 혼란에 휩싸인 건 당연한 결과였다.
주가 폭락 사태의 배후로 지목되는 상황에 이르자 김 회장은 결국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갖고 그룹 회장과 키움증권 이사회 의장에서 사퇴했다. 김 회장의 연관성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키움증권 대주주의 적격성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이어지면서 숨죽인 날들이 이어졌다.
키움증권은 빠르게 이현 부회장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했지만 당장 진행 중이던 사업들의 진행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자기자본 4조원을 돌파하며 목전까지 닿았던 초대형 IB로의 추진은 CFD 사태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금융당국이 신규 사업에 대해 인가 결정시 대주주 적격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는 만큼 이번 이슈로 인한 파장은 불가피해졌다.
황현순 키움증권 사장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황 사장은 한때 90% 수준이던 브로커리지 비중을 50%선까지 낮춰 상대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투자 상품 다양화를 통해 브로커리지에서의 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특히 새롭게 시작되는 STO 시장으로 영역 확대를 위한 공격 행보를 지속해왔지만 ‘CFD 사태’ 이후 대내외적으로 추스리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키움증권의 20여년 역사 속에서 위기는 항상 기회로 작용한 바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투자 기회를 노린 개인 고객들의 시장 유입으로 키움증권 점유율은 10%에서 13%로 폭발적 성장을 이뤄냈고 설립 10년만에 계좌수 100만개 돌파의 기록도 세웠다. 코로나 국면 속에서 경제 전반에 마비 현상이 나타나고 성장 둔화 몸살을 겪는 과정에서도 키움증권은 ‘동학개미운동’ 열풍을 타고 2021년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 돌파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그간의 위기와는 사뭇 다른 측면이 있다. 금융시장이 아닌 오너 리스크에 따른 충격이어서다. 내부에선 먼저 이미지 쇄신을 위한 성찰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직원, 고객, 주주, 사회 등 각 이해관계 당사자들과 관련해 그간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강화함으로써 이미지 쇄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 내놓은 3년간 당기순이익 30%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방침 역시 그 일환이다.
2분기 현재 키움증권의 국내 주식 일평균 약정 점유율은 30.06%. 5월 당시 일각에서 ‘계좌 해지 운동’ 등이 회자되면서 우려했던 것과 달리 실질적 고객 이탈은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분기 당시 CFD 관련 대규모 충당금이 반영되면서 실적에 영향을 미쳤지만 일회성으로 해소되면서 하반기부터 다시 실적 반등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CFD 사태 이후 5개월여가 흘렀지만 ‘상흔’은 깊게 남았다. 모두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데 성공한 키움증권이 유례없는 위기를 딛고 성공 신화를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증권가의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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