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건호 삼양홀딩스 사장,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 신상열 농심 상무. 사진=각사 제공
올해 유통가에서 오너3세·4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며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각사별 사업 보폭을 넓히는 시점에 맞춰 이들이 주요 신사업을 주도하면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르는 분위기다. 내수 경기 침체와 해외사업 비중 확대 등 급변하는 업황 속에서 세대교체를 통한 ‘젊은 감각’이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양그룹은 지난 1일 김윤 회장의 장남 김건호 경영총괄사무를 지주사인 삼양홀딩스 사장으로 신규 선임했다. 김건호 신임 사장은 1983년생으로 지난 2014년 삼양사 입사 후 해외팀장, 글로벌성장팀장, 삼양홀딩스 글로벌성장PU장, 경영총괄사무 및 휴비스 미래전략주관(사장)을 거쳤다. 이번 인사로 휴비스 사장직에서 물러나 삼양그룹 미래 사업을 책임지게 됐다.
삼양그룹은 이번 인사를 통해 대내외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 안정을 추구하고 그룹 핵심 분야인 ‘글로벌’과 ‘스페셜티(고기능성)’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스페셜티 소재 시장은 헬시플레저 트렌드에 따른 저칼로리 감미료 수요 증가와 영국 등 주요 국가의 설탕 저감 정책으로 세계적을 주목받고 있다. 김 사장은 오너 4세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며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휴비스에서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만큼 이번 인사를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인다.
최근 해외사업을 빠르게 확대하는 라면업계도 오너 3세들이 실무에 참여하며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는 10월 그룹 인사에서 기존 전략기획본부장에서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삼양식품 신사업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9월 삼양식품 비전 선포식에서 첫 공개 행보에 나선 전 상무는 콘텐츠업체인 삼양애니의 대표를 겸직하며 신제품 개발과 콘텐츠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그룹 비전인 ‘푸드케어’와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 사업을 ‘젊은 감각’으로 이끄는 모습이다.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상무는 지난 2019년 경영기획팀에 입사해 이듬해 대리, 2021년 부장으로 승진했고 같은해 11월 상무로 올라서며 구매실을 맡았다. 매출원가율이 높은 식품 제조 회사의 특성상 구매실장은 회사 수익성을 결정짓는 주요 보직으로 꼽힌다. 농심도 매출원가율이 70%에 달하는 만큼 원자재 수급 관리가 실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신 상무는 지난 2년간 국제 곡물가가 급등하는 와중에도 농심의 수익성 개선에 힘을 보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다가올 임원 인사에서 신 상무의 전무 승진을 점치고 있다.
(왼쪽부터)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홍정국 BGF 부회장, 허서홍 GS리테일 부사장. 사진=각사 제공
유통업계에서도 올해 오너 2세·3세들이 나란히 사령탑에 올랐다. 한화그룹 오너 3세인 김동선 본부장은 지난달 8일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부사장은 현재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한화호텔앤리조트 전략부문장, 한화로보틱스 전략기획담당을 맡으며 한화그룹의 유통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특히 올해 미국 수제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의 성공적인 국내 론칭을 일선에서 진두지휘한 것이 부사장 승진의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에 비해 다소 늦게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지만, 한화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로봇 사업을 이끌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편의점 업계 양대 산맥인 CU와 GS25 사이에도 후계자 간 경쟁 구도가 벌어졌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그룹은 지난달 2일 홍정국 BGF 대표이사 사장을 BGF 대표이사 부회장 겸 BGF리테일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홍 부회장은 홍석조 회장의 장남으로 2013년 BGF그룹에 입사해 전략기획본부장, 경영전략부문장을 거쳐 2019년부터 BGF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그간 그룹 전반의 신성장 기반을 발굴하고 CU의 해외진출을 도모하는데 집중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 부회장이 이번 인사로 BGF리테일의 경영 총책을 맡은 만큼 CU의 해외 사업 확장에도 한층 힘이 실릴 전망이다.
GS그룹도 지난 29일 2024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허서홍 GS미래사업팀장을 GS리테일 경영전략SU(서비스유닛)장으로 전입시켰다. 경영전략SU는 GS리테일이 이번 인사에서 경영지원본부와 대외협력부문을 합쳐 신설한 조직이다. 1977년생인 허서홍 부사장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종질로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아들이다. 지난 2012년 입사 후 줄곧 에너지와 지주사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업계에서는 GS그룹이 허 부사장을 그룹 핵심 계열사인 GS리테일로 이동시킨 결정이 변화와 혁신 의지를 강조한 조치로 보고 있다. 편의점 업계 매출 2위인 CU와의 격차가 좁혀짐에 따라 신사업 추진을 통해 GS25의 1위 자리를 지키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왼쪽),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 사진=각사 제공
이번 주로 예상되는 롯데그룹 인사에서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 케미칼 상무의 승진여부에도 관심이 모인다. 1986년생인 신 상무는 일본 롯데에 부장으로 입사한 뒤 3년 만에 임원(상무보)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인사에서 다시 상무로 한 단계 올라섰다. 최근에는 신 회장과 함께 유럽 현지 유통 채널을 둘러보는 등 경영 수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지난 9월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오픈식 참석을 위한 베트남 출장에도 신 회장과 동행했다. 이 때문에 신 상무가 유통 부문으로 경영 보폭을 넓힐지에 눈길이 쏠린다. 과거 신 회장이 경영 수업을 받을 당시에도 화학으로 시작해 유통으로 발을 넓힌 바 있다.
CJ그룹도 12월 정기인사에서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의 역할이 확대될지가 관심사다. 이 실장은 지난 2021년부터 글로벌비즈니스 담당, 식품전략기획1 담당, 식품성장추진실장 등 식품부문 해외사업에서 보폭을 확대해왔다. 2021년 9월 미국 NBA 구단 LA레이커스와 비비고의 마케팅 협업 계약을 추진하고, 같은해 12월 비건푸드 브랜드 비비고 플랜테이블을 출범시키는 등 일선에서 북미 비비고 브랜드 입지 강화에 힘을 보탰다. 식품부문 해외사업의 선전이 올해 부진한 실적을 거둔 CJ제일제당의 버팀목이 됐던 만큼 이 실장의 존재감도 커졌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