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내 한화투자증권의 존재감이 흐릿해지고 있다. 한계단씩 밀려나는 증권 순위 속에서 주가는 회사 실적과 동떨어진 이슈에 요동친다. 모처럼 보인 실적 반등도 뜯어보면 본업 경쟁력이 아니다. 재계 순위 7위 한화그룹의 금융계열사. “금융부문은 앞으로 그룹 내 큰 활력을 창출하는 구심점으로서 더욱 견고한 위상을 구축할 것”이라던 김승연 회장의 비전처럼 각 금융계열사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한화투자증권의 자리는 유난히 비좁다. 한때는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됐던 한화투자증권은 어쩌다 한화의 유일한 인수합병(M&A)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사진=2012년 9월 3일 임일수(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한화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의 통합회사인 한화투자증권 출범식을 갖고 임직원들과 함께 업계 최고 종합자산관리회사로의 도약을 위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3투신 DNA'에 걸었던 기대와 '엇박자' 경영진 “2020년까지 업계 5위 증권사로 도약하겠습니다.” 2012년 9월 한화투자증권 합병 출범식 당시 임일수 대표이사가 밝힌 포부다. 한화증권은 2010년 푸르덴셜투자증권을 인수했다. 간판까지 완전한 결합을 이룬 것은 그로부터 2년 후. 당시 임 대표는 합병 출범을 계기로 “두 회사의 통합은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니다. ‘신뢰’라는 가치를 토대로 업계 최고의 종합자산관리회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2012년 3월말 당시 한화투자증권의 고객 자산 규모는 업계 9위 수준(34조9000억원). 당시 증권가를 주름잡던 3투신 중 한 곳이었던 푸르덴셜투자증권의 PB 영업력을 기반으로 자산관리 전문사로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방향성. 해볼 만한 목표였다. 안팎의 기대감도 컸다. 당장 1조1000억원대까지 불어난 자기자본에 직원 수도 1000명대에서 2000명대로 두배 늘었다. 당시만 해도 지점 리테일 영업의 비중이 큰 시기였던 만큼 130여개까지 늘어난 지점 수는 인수합병(M&A)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한화증권은 한국투자신탁에서 활약을 보였던 임 대표가 그 기틀을 마련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영업과 경영의 궤가 많이 달랐던 탓일까. 2012년과 2013년 임 대표는 잇딴 적자를 기록하며 결국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2013년 6월 '중도하차'한다. (사진=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전 대표) 이어 바통을 넘겨받게 된 주진형 대표에 대해 시장은 내심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다. 앞서 LG투자증권 합병 당시 조직을 슬림화하는 과정에서 이른 바 ‘칼잡이’로 불렸던 그가 재등판하면서 한화증권의 곯은 곳을 제대로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도 컸다. 주 대표는 당시 업계에서 소위 ‘관행’으로 여겨지던 부분들을 뒤집어 엎었다. 임금 체계를 바꾸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덧붙여, 주 대표의 행보는 내부만을 향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찬성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등 그야말로 거침없는 행보에 한화그룹조차 당혹스러워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처럼 요란한 과정을 겪으면서 한화투자증권은 잃는 것이 생겼다. 무려 350명에 이르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직원들에게 신뢰감을 잃었고 이에 대한 반발은 인력 이탈로 이어졌다. 당시 한화투자증권에서 이탈한 인력 중 상당수는 메리츠증권 등 경쟁사로 이동했다. 실적 역시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특히 2015년 상반기 자체 헤지형 ELS 발행잔고를 1조9000억원 수준까지 늘렸는데 여기에서 홍콩H지수 급락으로 인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서 회사가 휘청였다. 결국 주 대표는 업계 최초로 젊은 직원들의 대학 학자금 대출 지원과 탄력근무제 도입 등 의미있는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지만 내부의 집단반발부터 실적악화에 대한 책임론까지 불거지면서 해임됐다. ■ 내부출신 심폐소생술에도 벌어진 격차 주 대표를 거치며 얻은 깨달음이었을까. 한화그룹은 이후 여승주 대표부터 권희백, 한두희 대표까지 모두 내부 인사들을 증권 CEO로 기용하며 심폐소생술에 착수했다. 특히 여 사장은 당장 문제가 불거졌던 ELS 담당 임원 교체부터 리스크 관리 시스템 개선은 물론 뒤숭숭해진 조직 분위기를 수습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놓쳐버린 타이밍으로 인한 후폭풍은 컸다. 한화투자증권이 우왕좌왕하며 흘려보낸 시간동안 국내 증권업계는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하는 등 퀀텀 점프하게 되면서 간극은 더 벌어지고 만다. (사진=한화투자증권) 지난해 93억원 순이익을 달성했던 한화투자증권의 1분기 순이익은 766억원. 업계 12위 수준이다. 자본 규모가 곧 경쟁력인 시장에서 자기자본 역시 여전히 1조원대에 발목이 잡힌 채 12위권에 머물고 있다. 전통 기업금융(IB)부터 자산관리(WM)까지 그 어느 리그테이블 상단에서도 한화투자증권의 이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주식시장에서 한화투자증권은 증권주가 아닌 가상화폐 관련주로 분류된 지 오래다. 실제 지난 1월 당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됐다는 소식에 한화투자증권은 상한가를 기록하는가 하면 3월 비트코인이 1억원을 돌파했던 당시가 한화투자증권의 연중 최고점이다. 1분기 개선된 이익 가운데 절반 가량이 토스뱅크를 관계기업에서 제외한 데에 따른 효과임을 감안하면 한화투자증권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한화투자증권이 직원 입장에서는 다니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오너회사들이 그렇듯 오너 리더십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자가발전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동력은 부족하죠. 무엇보다 이러한 것을 주도해줄 수 있는 핵심 인력들이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탈한 것은 두고두고 뼈아픈 부분입니다. 실제 구조조정 수년 후 메리츠증권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을 보면서 내부에선 상당히 씁쓸했었죠.” 지난해 한화그룹 금융계열사의 순이익 1조1007억원 가운데 한화투자증권의 이익 기여도는 불과 0.8% 수준. 한두희 사장은 국내 IB 사업 강화부터 해외 시장 공략까지 잰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자본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심기일전한 한화투자증권이 남들보다 더 큰 보폭으로 다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합병 후 첫발부터 꼬여버렸던 스텝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한화투자증권이 잃어버린 것들 [뷰파인더]

"견고한 금융 구축 기대" 김승연의 유일한 M&A 실패작 꼬리표
2010년 인수 이후 기대 받았던 CEO들 잇딴 실패
구조조정 거치며 '한화맨' 프라이드 떨어져...핵심인력 유출 발목

박민선 기자 승인 2024.06.04 15:09 | 최종 수정 2024.06.04 22:23 의견 0

증권가내 한화투자증권의 존재감이 흐릿해지고 있다. 한계단씩 밀려나는 증권 순위 속에서 주가는 회사 실적과 동떨어진 이슈에 요동친다. 모처럼 보인 실적 반등도 뜯어보면 본업 경쟁력이 아니다.

재계 순위 7위 한화그룹의 금융계열사. “금융부문은 앞으로 그룹 내 큰 활력을 창출하는 구심점으로서 더욱 견고한 위상을 구축할 것”이라던 김승연 회장의 비전처럼 각 금융계열사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한화투자증권의 자리는 유난히 비좁다. 한때는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됐던 한화투자증권은 어쩌다 한화의 유일한 인수합병(M&A) 실패작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사진=2012년 9월 3일 임일수(앞줄 왼쪽에서 다섯번째)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한화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의 통합회사인 한화투자증권 출범식을 갖고 임직원들과 함께 업계 최고 종합자산관리회사로의 도약을 위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3투신 DNA'에 걸었던 기대와 '엇박자' 경영진

“2020년까지 업계 5위 증권사로 도약하겠습니다.”

2012년 9월 한화투자증권 합병 출범식 당시 임일수 대표이사가 밝힌 포부다. 한화증권은 2010년 푸르덴셜투자증권을 인수했다. 간판까지 완전한 결합을 이룬 것은 그로부터 2년 후. 당시 임 대표는 합병 출범을 계기로 “두 회사의 통합은 단순한 규모 확대가 아니다. ‘신뢰’라는 가치를 토대로 업계 최고의 종합자산관리회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2012년 3월말 당시 한화투자증권의 고객 자산 규모는 업계 9위 수준(34조9000억원). 당시 증권가를 주름잡던 3투신 중 한 곳이었던 푸르덴셜투자증권의 PB 영업력을 기반으로 자산관리 전문사로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방향성. 해볼 만한 목표였다.

안팎의 기대감도 컸다. 당장 1조1000억원대까지 불어난 자기자본에 직원 수도 1000명대에서 2000명대로 두배 늘었다. 당시만 해도 지점 리테일 영업의 비중이 큰 시기였던 만큼 130여개까지 늘어난 지점 수는 인수합병(M&A)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한화증권은 한국투자신탁에서 활약을 보였던 임 대표가 그 기틀을 마련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영업과 경영의 궤가 많이 달랐던 탓일까. 2012년과 2013년 임 대표는 잇딴 적자를 기록하며 결국 실적 악화의 책임을 지고 2013년 6월 '중도하차'한다.

(사진=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전 대표)


이어 바통을 넘겨받게 된 주진형 대표에 대해 시장은 내심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다. 앞서 LG투자증권 합병 당시 조직을 슬림화하는 과정에서 이른 바 ‘칼잡이’로 불렸던 그가 재등판하면서 한화증권의 곯은 곳을 제대로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도 컸다.

주 대표는 당시 업계에서 소위 ‘관행’으로 여겨지던 부분들을 뒤집어 엎었다. 임금 체계를 바꾸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덧붙여, 주 대표의 행보는 내부만을 향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찬성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등 그야말로 거침없는 행보에 한화그룹조차 당혹스러워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처럼 요란한 과정을 겪으면서 한화투자증권은 잃는 것이 생겼다. 무려 350명에 이르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직원들에게 신뢰감을 잃었고 이에 대한 반발은 인력 이탈로 이어졌다. 당시 한화투자증권에서 이탈한 인력 중 상당수는 메리츠증권 등 경쟁사로 이동했다.

실적 역시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특히 2015년 상반기 자체 헤지형 ELS 발행잔고를 1조9000억원 수준까지 늘렸는데 여기에서 홍콩H지수 급락으로 인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서 회사가 휘청였다.

결국 주 대표는 업계 최초로 젊은 직원들의 대학 학자금 대출 지원과 탄력근무제 도입 등 의미있는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지만 내부의 집단반발부터 실적악화에 대한 책임론까지 불거지면서 해임됐다.

■ 내부출신 심폐소생술에도 벌어진 격차

주 대표를 거치며 얻은 깨달음이었을까. 한화그룹은 이후 여승주 대표부터 권희백, 한두희 대표까지 모두 내부 인사들을 증권 CEO로 기용하며 심폐소생술에 착수했다. 특히 여 사장은 당장 문제가 불거졌던 ELS 담당 임원 교체부터 리스크 관리 시스템 개선은 물론 뒤숭숭해진 조직 분위기를 수습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놓쳐버린 타이밍으로 인한 후폭풍은 컸다. 한화투자증권이 우왕좌왕하며 흘려보낸 시간동안 국내 증권업계는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하는 등 퀀텀 점프하게 되면서 간극은 더 벌어지고 만다.

(사진=한화투자증권)


지난해 93억원 순이익을 달성했던 한화투자증권의 1분기 순이익은 766억원. 업계 12위 수준이다. 자본 규모가 곧 경쟁력인 시장에서 자기자본 역시 여전히 1조원대에 발목이 잡힌 채 12위권에 머물고 있다. 전통 기업금융(IB)부터 자산관리(WM)까지 그 어느 리그테이블 상단에서도 한화투자증권의 이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주식시장에서 한화투자증권은 증권주가 아닌 가상화폐 관련주로 분류된 지 오래다. 실제 지난 1월 당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됐다는 소식에 한화투자증권은 상한가를 기록하는가 하면 3월 비트코인이 1억원을 돌파했던 당시가 한화투자증권의 연중 최고점이다.

1분기 개선된 이익 가운데 절반 가량이 토스뱅크를 관계기업에서 제외한 데에 따른 효과임을 감안하면 한화투자증권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한화투자증권이 직원 입장에서는 다니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오너회사들이 그렇듯 오너 리더십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자가발전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동력은 부족하죠. 무엇보다 이러한 것을 주도해줄 수 있는 핵심 인력들이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탈한 것은 두고두고 뼈아픈 부분입니다. 실제 구조조정 수년 후 메리츠증권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을 보면서 내부에선 상당히 씁쓸했었죠.”

지난해 한화그룹 금융계열사의 순이익 1조1007억원 가운데 한화투자증권의 이익 기여도는 불과 0.8% 수준. 한두희 사장은 국내 IB 사업 강화부터 해외 시장 공략까지 잰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자본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심기일전한 한화투자증권이 남들보다 더 큰 보폭으로 다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합병 후 첫발부터 꼬여버렸던 스텝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