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9시30분경 현대차 제네시스 G80 차량이 시청역 부근을 역주행해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2일 사고 현장에는 임시 펜스가 설치돼 있고 시민들이 조화를 두고 갔다. (사진=손기호 기자)
서울 시청역 부근에서 15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 차량인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G80’ 차량이 급발진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전방 충돌방지 보조’ 기능 탑재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이 기능이 탑재됐다면 ‘긴급 자동 제동’이 가능하기에, 해당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느냐에 따라 책임 여부를 가를 또 하나의 쟁점이 될 수 있다.
■ 2020년부터 ‘전방충돌방지보조’ 기본 탑재…“기능 있다면 제동 작동 안한 듯”
3일 전문가에 따르면 사고를 낸 ‘제네시스 G80’ 차량은 급발진 논란을 떠나서 이 차에 기본 적용된 ‘자동 제동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됐다.
박병일 자동차정비명장은 “사고 차량은 일반적인 브레이크가 아닌 전자 제동 장치에 긴급 제동 장치까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기능이 있다면) 운전자가 착오로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았다고 해도 긴급 자동 제어가 작동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에 카메라와 센서 등을 감지해서 운전자가 서야 하는 상황에서 전진을 할 경우 자동 긴급 제동으로 차를 세우려는 장치가 있지만, 그 장치가 말을 듣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고 했다.
‘전방 충돌방지 보조’ 기능은 첨단 주행안전 보조 장치로 전방의 사물과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기능이다. 제네시스 홈페이지에 공개된 차량 소개에는 ‘전방 충돌방지 보조 기능’의 적용 범위는 ‘차량, 보행자, 자전거 탑승자, 교차로 대항차’ 등에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돼 있다.
만약 사고 차량에 이 기능이 있었다면, 인도로 뛰어들기 전 두 차량과 충동할 때도 이 자동 제어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다만 이 기능이 사고 차량에 장착이 됐느냐 여부가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제네시스 전방충돌방지 보조 기능 설명 예시 이미지 (사진=제네시스 홈페이지)
현대차그룹은 제네시스를 비롯해 현대차·기아 승용차 전 차종에 전방충돌방지보조 시스템을 기본 탑재한다는 방침을 정한 바 있다. 당시 현대차는 “2018년 출시되는 일부 차종에 전방충돌방지보조 기능 탑재를 시작해 2020년까지 모든 전 승용 차종에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고 차량의 연식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사고 차량이 2020년 이후 차량이라면 전방충돌방지보조 기능이 기본 탑재됐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이전 모델의 경우라면 기본 사양이 아닌 옵션 사항으로 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다.
급발진 여부 외에도 이 기능이 사고 차량에 탑재됐는지 여부도 사고의 책임을 가르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돌진 후 서서히 멈춰 ‘급발진 아니다’” vs “충돌 후 제동기능 돌아왔을 가능성”
앞서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 1일 오후 9시30분경 제네시스 G80 운전자 A씨(68)가 차량을 운전해 시청역 인근 호텔에서 일방통행인 세종대로 4차선 도로를 고속으로 역주행했다. A씨의 차량은 BMW, 쏘나타 차량을 잇달아 추돌했고 이어 북창동 음식거리 길목 인도 쪽으로 돌진해 보행자들을 덮쳤다. 이 사고로 사망 9명 등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피의자 A씨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시민들과 CCTV 영상을 본 일부 전문가는 급발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봤다. 보통 급발진은 구조물과 부딪히고도 계속 엔진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 차는 시청역 12번 출구쯤에서 감속 후 멈출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박 명장은 “차량이 차량 두 대와 오토바이, 펜스 등을 부딪히면서 급발진을 했다가 다시 브레이크 기능이 돌아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일각에서 고령 운전자라서 운전 미숙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박 명장은 “사고 차량 운전자가 수십년간 버스 운전을 한 현직 버스 기사라면, 적성 검사를 받을 때 보통 운전자와 달리 인지능력, 판단 능력 등을 면밀히 평가한다”며 “이를 통과했다는 건데 운전 미숙 가능성이 적어보인다”고 했다.
■ 경찰, 국과수 ‘급발진 조사’ 의뢰…“CCTV 분석, 실도로 검증 등도 해야” 지적
경찰은 급발진 가능성에 대해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사고 차량을 인계해 조사를 의뢰했다. 다만 국과수 조사 시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의 국내 처음 실도로 검증을 이끌어낸 하종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루)는 국과수 조사만으론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차량 블랙박스와 EDR(사고기록장치) 장치뿐 아니라 주변 건물 등의 CCTV 녹화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며 “주차장에서 출발할 때부터 최종 정지할 때까지 전체 주행과정이 나타나는 영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강릉 급발진 사고 조사 때처럼, 실도로에서 풀(full) 액셀을 밟았을 때 나오는 데이터와 블랙박스에 녹음된 엔진 소리를 속도로 전환한 것과 비교해보면 급발진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