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재건축 개포주공 6·7단지 예상 조감도. (사진=서울시 정비사업 정비몽땅)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에서 시공사 선정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대표 사업지인 잠실우성과 개포주공 단지가 나란히 두 차례 연속 단독 입찰 유찰을 기록하면서, 각각 GS건설과 현대건설과의 수의계약 체결이 유력해졌다. 건설사들이 출혈 경쟁 대신 수익성과 사업성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하면서, 강남권 수주전의 구도가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수의계약 수순 밟는 잠실·개포 대형 재건축
송파구 잠실동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은 지하 4층~지상 49층, 총 2860가구 규모의 고층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대형 사업이다. 총 공사비는 약 1조6934억원에 이른다. 1981년 준공된 기존 1842가구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짓는 이번 사업은 그 규모와 입지 덕분에 강남권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힌다.
당초 삼성물산을 포함한 복수 건설사의 참여가 기대됐으나, GS건설만 단독 응찰하면서 1차 입찰(3월), 2차 입찰(5월) 모두 유찰됐다. 이에 따라 조합은 정관과 법령에 따라 수의계약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르면 이달 중 조합 총회가 열려 최종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개포동 개포주공 6·7단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곳도 현대건설이 단독 입찰에 나섰고, 마찬가지로 두 차례 연속 유찰되며 수의계약 절차에 들어갔다. 재건축 이후 지하 5층~지상 35층, 총 2698가구로 탈바꿈하는 이 사업의 공사비는 1조5319억원 규모다.
특히 개포주공 6·7단지는 개포지구 내 마지막 대형 정비사업으로, 현대건설은 이미 사전 홍보 등에서 경쟁사를 압도한 상태였다. 조합은 이사회와 대의원회를 거쳐 5월 말 시공사 선정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선별 수주로 돌아선 건설사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개별 사업장의 유찰 사례가 아니다.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전략 변화와 시장 환경 변화가 결합된 구조적 전환으로 해석된다.
과거 강남권 재건축 수주전은 ‘명예 경쟁’에 가까웠다. 건설사들은 브랜드 프리미엄 확보와 랜드마크 사업지 수주를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다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같은 무리한 경쟁이 사라지고 사업성 중심의 철저한 선별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삼성물산은 현재 압구정 등 초대형 프로젝트에 집중하며, 잠실우성이나 개포주공처럼 상대적으로 중간 규모인 사업지는 아예 참여하지 않았다. GS건설과 현대건설도 사전에 충분한 접촉과 설계안 준비 등을 진행한 곳만 선별적으로 응찰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입찰 구조 자체도 건설사들의 보수적 수주를 부추기고 있다. 조합이 요구하는 입찰보증금은 공사비의 10~2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수백억원의 현금을 선납해야 한다. 여기에 탈락 시 50억~100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점도 큰 부담이다. 특히 조합 측의 까다로운 설계 기준이나 홍보비 분담 요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단독 입찰 후 수의계약 수순으로 가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공사비 급등과 매몰비용 부담 등으로 건설사들이 수익성이 불확실한 사업장에는 입찰조차 나서지 않는 분위기”라며 “오랜 기간 공을 들인 건설사가 있는 곳은 경쟁 없이 그대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잠실우성 123차 아파트. (사진=네이버 지도)
■ 강남 재건축, ‘설계 주도권’ 확보 경쟁 본격화
수의계약은 관련 법상 동일 조건으로 두 차례 입찰이 유찰된 경우 조합이 정관과 총회 절차에 따라 가능하다. 이 방식은 입찰 경쟁 없이도 사업을 조기에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 조합 입장에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조합원 입장에서는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조합은 계약 조건의 투명성과 실익 확보를 입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실제 일부 단지에서는 수의계약 후 시공 조건을 공개하고설계 변경안을 총회에 사전 상정해 신뢰를 높이고 있다.
잠실과 개포 사례는 최근 강남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예를 들어 대림가락아파트는 삼성물산 단독 참여로 수의계약이 체결됐고, 가락1차현대, 잠실우성4차, 신반포2차 등도 유사한 흐름이다. 건설사 입장에선 경쟁 없이 안정적으로 수주할 수 있고, 조합도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윈-윈 할 수 있는 구조로 평가된다.
다만 이 같은 수의계약 확대가 과도해질 경우 시장의 경쟁 질서를 훼손하고 조합원 실익이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최근 정비사업 계약 방식의 투명성 제고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한편 압구정3구역, 반포주공1단지, 대치쌍용2차 등 하반기 입찰을 앞둔 대형 단지들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지역도 특정 건설사가 오랜 기간 조합과 관계를 구축한 상태로 알려졌다. 다른 경쟁사들의 참여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건설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제는 제안서 경쟁이 아니라 누가 얼마나 일찍 조합과 접촉해 설계 주도권을 확보하느냐의 싸움”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처럼 단독 입찰 유찰 이후 수의계약으로 이어지는 방식이 강남권 정비사업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경우 건설사 수주 전략, 조합의 시공사 유치 방식, 조합원 의사결정 구조까지 광범위한 변화가 예상된다. 강남 재건축의 시공사 선정 방식이 전략 중심의 협상 체계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