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플라스 2025에 참가한 롯데케미칼 부스 (사진=롯데케미칼)

■ 공장 멈추고 지출 줄이고…‘내부 다이어트’로 손실 축소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거센 다운사이클의 파고를 맞고 있는 가운데 롯데케미칼이 ‘버티기 경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가동률 조정과 재고 축소, 전사적 긴축경영을 통해 적자 폭을 줄이는 한편 고부가가치 중심의 체질 개선으로 탈출구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업황 회복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양적 성장’보다 ‘질적 전환’에 방점을 찍은 전략이다.

4일 전자공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 4조9018억원, 영업손실 126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분기까지 6분기째 적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전년 동기 대비(1353억원)에 적자 규모는 줄었다. 정기보수와 공장 가동률 조정 등 전방위적 비용 절감이 주효했다.

NCC(나프타 분해) 가동률은 74.3%로 지난해 평균(81%)보다 6.7%포인트 낮아졌고, PP·PE 등 범용제품 생산라인의 가동률도 7%포인트가량 하락했다. ‘제품’ 재고자산은 2.6% 줄어든 8633억원을 기록해 불황 국면 속에서도 재고 관리를 통한 리스크 축소에 나선 모습이다.

■ 고부가 전환이 희망…첨단소재는 ‘선방’

부진 속에서도 첨단소재와 정밀화학 부문은 실적 개선의 버팀목이 됐다. 1분기 첨단소재 부문은 전년 대비 매출이 7.4% 늘어난 1조1082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64% 급증한 729억원을 기록했다. 자회사인 롯데정밀화학도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1%(4456억원), 74%(188억원) 증가하며 순항했다.

반면 전기차용 동박 생산 자회사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전기차 수요 둔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매출이 3.64% 급감하며 3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고부가 중심의 전환 전략이 모든 영역에서 성과를 내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부터 해외 자산 매각과 자산 유동화를 통해 약 1조7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며 재무 안정성도 일부 회복했다.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는 전년 말 대비 0.5% 줄어든 14조4972억원, 부채비율도 71.5%로 낮아졌다.

하지만 신용등급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실질적인 업황 반등 없이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도 회복이 어렵다”며 하향 리스크를 경고했다. 특히 그룹 계열사 전체의 신용도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 회복 기대는 쉽지 않다.

지난 4월 롯데케미칼 이영준 대표가 인도네시아 라인프로젝트 현장을 찾아 직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롯데케미칼)

■ 구조적 불황 속 “버티기만으로는 부족”…정부 역할 주목

한국석유화학산업협회와 BCG가 진행한 컨설팅에 따르면 동북아 석유화학 시장의 불황은 2030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2035년은 돼야 통상적 수요를 회복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구조적 불황이 장기화될수록 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운데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당선인은 대선 공약으로 석유화학 고부가 제품 전환을 지원하는 ‘석유화학 특별법’ 제정과 전남 여수산단을 중심으로 한 스페셜티 화학산업 클러스터 육성을 약속한 바 있다.

정부 차원의 사업 구조재편이 단순한 자율 매각 수준을 넘어 일본식 통합·합병 모델처럼 구체화될 경우, 향후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판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일본은 1980~2010년대에 걸쳐 정부 주도로 범용 제품 생산 설비를 통폐합하고, 스페셜티 제품군 확대와 내수 경쟁 완화를 병행한 바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금 ‘버티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단순한 생존을 넘어 고부가 제품으로 체질을 바꾸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효과를 내려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꼭 필요하다. 기업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업계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