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선보인 생성형 AI 모델 '딥시크 R-1'. (사진=딥시크 홈페이지 갈무리)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선보인 AI 모델이 높은 가성비로 시장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신 AI 반도체 칩 없이도 싼 값에 '챗GPT' 등 최상급 AI에 밀리지 않는 모델을 선보이면서, 비용과 성능이 비례하는 기존 공식을 깨뜨렸다는 평가다. 다만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 타 사 AI 모델 무단 활용 등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딥시크는 생성형 AI 모델 '딥시크 R-1'을 선보였다. 해당 모델은 엔비디아의 구형 GPU 칩 H800으로 개발됐다. 특히 학습 비용은 550만 달러(약 81억2800만원)에 불과한데도 성능은 '챗GPT'에 밀리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픈AI에 따르면 '챗GPT'의 학습비용은 약 1억달러(약 1459억원)다.
'딥시크 R-1'의 높은 가성비는 '전문가 혼합(MOE, Mixture of Experts)' 아키텍처를 활용한 학습과정에서의 비용 절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MOE'는 주어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모든 AI 모델이 투입되는 기존 매커니즘과 달리 특정 작업에 필요한 모델만 활성화하는 기술을 뜻한다.
딥시크의 기술보고서에 따르면 R1의 파라미터(매개변수)는 6710억개인 반면 작업 시에는 340억개만 선별적으로 활성화하도록 설계됐다. 모든 매개변수를 사용하지 않기에 메모리 사용량이 적고 작업 속도도 빠르다는 설명이다. 딥시크는 해당 기술을 활용해 '챗GPT'에 비해 메모리 사용량을 90%까지 줄였다고 전했다.
이는 기존 AI 강자들에게 충격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7일 AI 칩의 대장주 엔비디아의 주가는 17% 폭락, 다음날 9% 반등했지만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동시에 엔비디아에 칩셋을 제공하는 SK하이닉스의 주가 역시 지난달 31일 9.86% 급락하는 등 관련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하락이 이어졌다.
오픈AI 역시 이를 의식하듯 지난 1일 추론 특화 AI 모델의 경량형 버전 'o3미니'를 무료로 배포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중 AI 패권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면 딥시크의 사례가 국내 AI 스타트업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아직 AI 산업 인프라가 부족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네이버, 카카오 등을 비롯한 국내 AI 서비스 기업들의 주가는 5% 이상 상승했다. 기술력과 창의성만 있다면 해외 빅테크들과 맞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특히 딥시크는 오픈AI나 구글과 달리 누구나 소스코드를 가져다 쓸 수 있는 오픈소스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자체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해 AI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인다는 목적에서다. 국내 AI 기업들은 이를 활용해 AI 개발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실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딥시크 R-1'에 대한 여러 논란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활용까지는 좀 더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취약성이 지적된다. 중국법을 적용받는 기업의 AI 모델인 만큼 개인정보가 중국 서버에 저장되고, 향후 중국 정부에 의한 정보 무단 반출이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각국에서는 딥시크 사용을 제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미 해군은 함정에 탑승하는 승무원에게 딥시크 사용을 금지했으며, 이탈리아는 딥시크 신규 다운로드를 차단했다. 대만과 일본은 각 부처 공무원들에게 딥시크 사용 금지 조치를 내렸다.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딥시크 본사에 개인정보 수집 및 처리 방식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공식 질의서를 발송할 계획이다.
또한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는 '딥시크 R-1' 모델이 자사의 '챗GPT'등 AI 모델을 토대로 개발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딥시크가 타 사 AI의 핵심만을 추려 개발하는 증류 방식으로 초기 개발 비용을 대폭 줄인 뒤 가성비를 내세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오픈AI는 자사의 모델을 활용해 새 모델을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오픈AI는 성명을 내고 "중국 기업들이 AI 개발을 위해 미국의 경쟁 업체들을 활용하려 한다"며 "AI 선도 업체로서 우리는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시행 중이며 향후 출시할 모델에 관련 대응책을 담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