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에서 수출 선적을 기다리는 한국산 자동차 (사진=연합뉴스)

철강과 조선업계를 넘어, 후판 가격의 등락은 산업 전반과 소비자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이지만, 이 철판 한 장의 가격이 수많은 산업의 원가 구조와 가격 체계를 흔들고 있다.

오르면 ‘원가폭탄’…조선·플랜트·건설업계까지 줄줄이 충격

선박 1척에는 평균 수천 톤의 후판이 들어간다. 조선업 원가에서 20~30%를 차지하는 이 철판 값이 오르면 조선사들은 곧바로 수익성이 흔들린다. 특히 고정가 수주계약이 많은 국내 조선소 입장에선 ‘이익 없는 호황’이 반복되는 구조다.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후판은 해양플랜트, 풍력발전 타워, 철도차량, 교량, 중장비, 군수함정 등 다양한 중후장대 산업의 기본 재료다. 가격 인상은 해당 산업의 생산비를 끌어올려 민간과 공공 프로젝트 모두의 원가를 자극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전력망 재구축, 에너지 인프라 확충 사업 역시 후판에 의존한다.

후판값 상승은 최종적으로는 자동차, 중장비, 대형 가전 등 완성품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철판 한 장 가격이 오르면, 관련 제품군의 출고가 또는 납품 단가가 상승하고, 이는 결국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가격으로 전가된다.

내리면 철강업계 ‘위기’… 구조조정 우려도

(사진=전국금속노동조합 인천지부 현대제철지회)

반대로 후판값이 내려가면 조선업계와 수요 산업은 일시적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선박, 해양설비, 대형 구조물 제작단가가 낮아지고, 글로벌 수주 경쟁력도 높아진다. 정부 SOC 사업비나 신재생 설비 구축비용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철강업계엔 치명적이다. 후판 생산은 고정비가 많이 드는 장치산업이다. 원가 이하로 가격이 떨어질 경우, 적자 누적과 투자 축소로 이어진다. 실제로 2023~2024년 후판가가 t당 70만원대로 하락했을 때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후판 부문에서 큰 폭의 손실을 기록했다. 생산라인 유지를 위한 인력 감축, 구조조정 리스크도 커진다.

장기적으로는 후판 공급 불안정, 품질 저하, 설비 노후화 등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질 경우, 산업 생태계 자체가 취약해지고 소비자 역시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다.

소비자는 ‘직접’보다 ‘간접’영향권

후판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때, 일반 소비자가 이를 체감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 영향은 의외로 넓고 깊다. 예를 들어 조선사 원가 상승은 선박 가격을 끌어올리고, 이는 해상 운송비 인상으로 이어져 물류비 전반이 오른다. 건설 원가가 상승하면 분양가나 임대료에 간접 반영될 수 있다.

후판이 쓰이는 대형 가전이나 상용차, 산업기계의 가격은 천천히 오르지만 한 번 오르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반대로 후판값이 떨어져도 소비자 가격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아, 실질적인 체감 효과는 미미한 경우가 많다.

가격 아닌 구조 문제…지속가능한 해법 찾아야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에 팔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 것이냐’다. 철강사는 적정한 원가 반영과 설비 유지 여력을, 조선사는 수익성과 수주 경쟁력을, 정부는 산업 전체의 안정을 고민해야 한다.

후판값을 둘러싼 갈등은 두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격 조정의 이면에는 산업 구조의 체력과 소비자 가격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한 장의 철판이 산업과 일상에 미치는 여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넓다. 그 무게만큼 공정하고 균형 있는 가격 체계를 만들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