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 한국해운협회 회장 (사진=서효림 기자)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관세전쟁의 심화로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해운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운송에 의존하는 만큼, 해운 경쟁력 약화는 국가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박정석 한국해운협회 회장은 28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해운은 반도체만큼이나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이 아직 널리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며 해운산업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했다.
박 회장은 특히 미국이 해운을 국가 필수 전략산업으로 삼고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는 ‘Ships for America Act’를 통해 전략 안보 선대를 250척까지 확대하고, 자국 해기사를 5000명까지 확보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선박에 대해 순톤수당 50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규제안을 발표하는 등 해운 분야에서도 중국을 겨냥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해운업계에 반사이익이 기대되지만 중국의 반응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양창호 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설 경우, 우리 해운과 수출 산업 전반에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교역 감소 조짐도 현실화되고 있다. 박정석 회장은 “컨테이너선 대신 중국 선박을 이용하면 된다는 인식은, 반도체를 수입해 쓰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며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선박과 우리 국적 해기사로 운영하는 전략 안보선대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해운협회는 정부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미국의 조치에 대응하고 있으며, 해운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양 부회장은 “코로나19 이후 물류대란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협회는 올해 ▲우수 해기사 확보 ▲친환경 해운 ▲디지털 전환을 3대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국내 해기사 약 1만1000명 중 내국인은 7300명에 불과하고, 2034년까지 4000명 추가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해운업을 ‘양질의 일자리’ 산업으로 육성하고, 내국인 인력 확보에 집중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현재 88척 규모인 필수 선대를 200척 수준의 전략 안보선대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 부회장 역시 “국회와 협의해 전략 안보선대 지정을 추진 중”이라며 “정부 지원을 확보하고 유사시 동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이 외에도 ▲해운금융 활성화 ▲항만물류 제도개선 ▲선원법령 개선 ▲국제조사·정보 제공 확대 등을 올해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미중 무역갈등, 국제해사기구(IMO)의 친환경 규제, 운하 통항 제한 등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도 정부와 긴밀히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정석 회장은 “협회와 해양수산부 등 관계 당국 간 소통은 원활하다”며 “해운산업의 전략적 성장은 화주들의 이익과 직결되고 이는 국가의 수출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