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열린 제51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 (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과 영풍 간 지배구조 분쟁이 다시 중대 변곡점을 맞았다. 법원이 고려아연 현대차그룹 계열 HMG글로벌을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정관 위반’ 판결을 내리면서 지분 구도가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영권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고려아연은 여전히 신용평가사로부터 ‘AA+’ 등급을 유지하며 재무적·사업적 신뢰를 재확인받았다.
법원 “HMG글로벌 신주 발행은 무효”··실질 지분율 변동 가능성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지난달 27일, 영풍이 제기한 ‘신주발행 무효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고려아연이 2023년 9월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가 공동 출자한 해외 계열사 HMG글로벌에 발행한 104만5430주의 신주는 법적으로 무효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고려아연이 출자에 참여하지 않은 HMG글로벌은 정관상 ‘외국의 합작법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정관을 위반한 중대한 위법이 있었다”고 밝혔다.
영풍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무리한 유상증자의 위법성이 입증됐다”며 경영권 회복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할 태세다. 영풍은 이번 1심 승소로 사실상 지분 우위를 확보하게 됐으며 향후 대법원 확정 시 의결권 기준 지분율이 기존 46.98%에서 49.84%로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고려아연 측 실질 지분율은 35.61%로 낮아지며, 양측 지분 격차는 14.23%p로 벌어지게 된다.
고려아연은 “친환경 신사업 추진과 글로벌 밸류체인 강화를 위한 경영상 판단이었다”며 판결 직후 즉각 항소를 예고했다. 회사 측은 “재판부도 경영상 필요성은 인정했다”며 “정관상의 외국 합작법인 해석과 관련해 항소심에서 적극 소명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정 분쟁 와중에도…신용등급은 ‘AA+’ 유지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고려아연은 시장으로부터는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고려아연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한신평은 보고서를 통해 “고려아연은 단일 제련소로 글로벌 1위의 아연·연 생산능력을 보유한 온산제련소를 기반으로, 국내에서 사실상 독과점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며 “제품군의 다변화, 고효율 통합 공정, 높은 유가금속 회수율 등으로 실적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 1분기 고려아연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711억 원으로, 전년 대비 46.9% 급증했다. 런던금속거래소(LME) 기준 아연 벤치마크 제련수수료(TC)가 톤당 165달러에서 80달러로 급락하는 악조건에도, 귀금속 및 희소금속 가격 강세에 힘입어 수익성이 유지됐다.
소송 결과에 따라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는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HMG글로벌의 지분이 무효화될 경우 전체 의결권 기준 주식 수가 줄어들면서 영풍·MBK 측 지분율은 50%에 근접하게 된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우호 지분 감소로 의결권 열세에 직면한다.
경영권 분쟁, 여전히 현재진행형···시장의 시선은 ‘본질’에
그러나 단기적인 지분 다툼을 넘어 시장은 여전히 ‘누가 지배하는가’보다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고려아연은 ▲2차전지용 금속소재 사업 확대 ▲해외 광산 투자 ▲ESG 기반 정제기술 고도화 등에서 적극적 투자를 지속해왔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앞으로도 주주와 시장, 외부 평가기관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경영 실적과 소통 등 여러 측면에서 꾸준히 노력해나갈 것” 이라며 “더불어 다양한 대외 불확실성에도 국내 유일의 전략광물 생산기지이자 국가기간산업으로서 역할을 다해나갈 것” 이라 전했다.
향후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어떤 판단이 나올지에 따라 지배구조의 향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고려아연이 보여준 재무 안정성과 사업 경쟁력은 흔들림이 없다. 경영권 분쟁이라는 외풍 속에서도 기업 본질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여전하다. 분쟁의 끝이 ‘소유의 싸움’에 머물지 않고 ‘가치의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