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동발 공급과잉으로 인해 장기간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좀처럼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석화공단이 자리잡은 지자체 등은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을 비롯한 정책적 지원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업계 역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기본이고, 탈탄소 시대에 맞는 신규 사업 추진,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등 대책 마련에 모든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힘든 시간을 보내는 곳이 있습니다. 국내 에틸렌 생산능력 3위 기업이자, 한때 1조원대의 이익을 내기도 했던 여천NCC입니다. 여천NCC는 2020년대부터 본격화한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로 인해 이후 지속적인 부진을 겪고 있습니다. 2022년 3477억원, 2023년 2402억원, 2024년 236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여천NCC 여수 제2사업장.(사진=여천NCC)
■ '부도위기' 여천NCC…대주주 DL "워크아웃 신청해야"
국내 석화업계 전체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인만큼 실적 부진은 어쩔 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 대주주의 지원이 불투명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공동 대주주인 DL케미칼(DL그룹)이 무조건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여천NCC는 지속된 손실로 인해 부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대주주들의 자금 지원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넘길 지, 자금 지원 없이 워크아웃 등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할 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여천NCC는 1999년 한화와 대림산업(현 DL)이 합작해 만든 회사로, 현재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50%씩의 지분을 보유중입니다.
여천NCC의 공동 대주주인 한화솔루션은 자금 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미 지난 7월말 이사회에서 여천NCC에 대한 15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 대여를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대주주인 DL은 자금 지원을 거부하고 워크아웃 신청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가뜩이나 악화된 석화 산업에서 여천NCC가 워크아웃을 신청할 경우 업계 동반 부실은 물론, 국내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여천NCC의 대주주인 한화솔루션 역시 석화 부진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이같은 후폭풍을 우려해 자금 지원과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회생 의지는 다른 대주주인 DL의 반대로 막혀 있습니다. 합작계약에 따라 증자 또는 자금 대여를 한쪽 주주 단독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또 증자나 자금 대여는 여천NCC 이사회 승인이 필수입니다. 현재 여천NCC 이사는 총 6명으로 한화와 DL이 3명씩 지명하고 있습니다. 즉 DL측의 반대로 인해 한화 단독으로 1500억원의 자금대여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DL이 계속 자금 지원을 거부하면 여천NCC는 21일 만기도래하는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부도가 날 수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여천NCC의 부도를 막기 위해 정부와 금융당국까지 나서서 DL을 설득하고 있지만 DL측은 완강하게 워크아웃 신청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 "DL, 25년간 2.2조 배당 수익 생각해야" 주장도
일각에서는 DL이 합작 이후 여천NCC로부터 막대한 배당을 가져간 것과 연결짓기도 합니다. DL은 여천NCC 합작 이후 25년간 4조4000억원에 이르는 누적 배당금 가운데 절반인 2조2000억원을 벌어 들였습니다. 배당으로 번 금액의 7%도 안되는 1500억원의 자금 지원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지적입니다.
지난 7월말 여천NCC 주주사 관계자들이 모여 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DL그룹 이해욱 회장이 직접 참석해 여천NCC는 회생 가능성이 없으므로 워크아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고 합니다.
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내가 만든 회사지만 신뢰가 안간다"며 "DL그룹은 여천NCC랑 원료공급 계약을 하지 않겠다.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져도 답이 없는 회사에 돈을 꽂아 넣을 수는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반면 한화측은 "주주사가 지원을 하지 않으며 여천NCC는 당장 디폴트"라며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구책을 실행한다면 속도가 느릴 수는 있으나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고 적자를 탈피할 수 있다"며 주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습니다.
한화 측은 주주사들이 각각 1500억원씩 자금을 지원하고, 산업은행 외화 보증 재개 및 자산 유동화 담보대출 등으로 자금을 조달할 경우 8월 디폴트 위험을 피하고 연말까지 운영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밖에 공장 가동 정지로 연간 약 900억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고, DL의 반대로 못하고 있는 원료다변화를 통한 원가경쟁력 개선 등 추가 자구책 마련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DL측은 완강히 반대하며 워크아웃을 고집했다고 합니다.
DL은 지난 25년간 여천NCC로부터 연평균 약 1000억원, 총 2조2000억원의 배당을 받아가며 대주주로서의 권리를 누렸습니다. 여천NCC가 부도 위기를 맞은 현재, DL은 대주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DL은 현재 이 사안에 대해 깊은 고민입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합작사에 무조건 지원하는 것은 배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천NCC 이해관계자는 물론 석화업계, 나아가 국가 전체를 위해 회생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1500억원이라는 금액은 적지 않은 돈이지만, 시장과 경제주체들의 신뢰는 더 크다는 것을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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