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 뷰어스=김재범 기자] 긴장이 될 만도 했을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잡았지만 눈은 휴대폰 화면에 고정돼 있었다. 생애 첫 주연이다. 제작비만 100억이 훌쩍 넘게 투입됐다. 뭐 오롯이 혼자 이 영화의 무게감을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다. 함께하는 배우들이 ‘어벤져스’를 능가한다. 이름만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출연진’이 포진했다. 사실 무엇보다 그 배우들이 이 영화 한 편을 위해 모인 것은 딱 하나였을 것이다. 감독 ‘나홍진’이란 이름 세 글자였다. ‘추격자’ ‘황해’ 단 두 편으로 한국영화 역사에 분명한 족적을 남긴 연출자다.
그런 대가의 눈에 비친 배우는 의외로 조연 전문이란 낙인 아닌 낙인이 찍힌 그였다. 사실 조연이란 게 빛 좋은 개살구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독박이다. 그래서 ‘개성파 조연’이란 황당한 타이틀도 생겨났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의 눈에 곽도원은 전혀 결이 다른 배우로 보였다. 무려 156분에 달하는 ‘곡성’의 주인공으로 곽도원 외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곽도원의 긴장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곽도원은 얼떨떨한 기분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전하기도 했지만 그의 기본 적인 상태는 그랬다. 나홍진 감독과의 친분은 둘째다. 자신이 100억대의 작품을 책임 질 주연이란 사실이 첫 번째 ‘얼떨떨’이었다. 두 번째는 가고 싶다고 갈 수도 없는 칸 영화제 초청이다. 그것도 곽도원은 생애 첫 해외 나들이란다. 들뜨고 얼떨떨하고 황당하고 황홀한 기분이란다.
“강호 형, 민식이 형이 왜 그렇게 개봉 며칠을 앞두고 긴장을 했는지 이제야 할 것 같아요. 하하하. 이게 대체 뭔일이래요 정말?(웃음) 아휴 진짜 ‘안절부절’을 못하겠어요. 며칠 뒤에 칸에도 가야하고 개봉 이후 흥행도 잘 됐으면 하고. 정말 별게 다 신경이 쓰여요. 오늘 좀 횡설수설해도 이해 좀 해주세요. 하하하. (뒤쪽 스태프에게) 그런데 지금 예매율 몇 프로에요?”
사실 곽도원의 연기가 만년 조연의 틀 안에서 해석될 수준은 아니었다. 연기의 ‘그레이드’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랬다. 워낙 강렬하고 개성 강한 곽도원의 연기 스타일은 한 작품을 오롯이 끌고 가기에는 동력이 모자라지는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한 순간에 임팩트를 주고 빠지는 것에 익숙한 배역만 도맡아 왔던 그였다. 힘을 주고 빼는 것에 대한 템포 조절은 전매특허라고 부를 만하다.
“가장 힘든 게 그거였어요. 사실 제가 언제 주연을 해봤어야죠. 하하하. 뭐 주연 연기 조연 연기가 따로 있겠어요?(웃음) 그런데 틀려요. 정말 틀리더라구요. 주연 연기 조연 연기가 틀리다? 그게 아니었어요. 조연은 어떻게든 그 신을 자기 장면으로 만들어야 해요. 하지만 주연은 얘기의 화자지만 수많은 조단역이 연기를 펼칠 수 있게끔 무대를 만들어줘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을 내지 말고 힘을 빼 연기해야 하거든요.”
나홍진 감독은 촬영 내내 곽도원에게 ‘힘을 빼라’는 주문을 했단다. 그때마다 곽도원은 정확하게 그것을 짚어내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을 본 뒤 그것을 알게 됐다며 웃었다. 곽도원은 길고 긴 촬영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나 감독에게 의지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 시작은 정말 작고 미미했다고. 기대조차 안했던 순간이었다고 한다.
“전화가 와서 만났죠. 만나서 술 한 잔 하면서 얘기만 좀 했어요. 이런저런. 그렇게 두 어 번 만났나? 그리고 책(시나리오)을 주대요. 한 번 봐라 그러대요. 제가 출연하는지 하자는 건지 말도 안 해요. 하하하. 봤죠. 재미있더라구요. 그저 촉으로 뭐 작은 역 하나 주려나 보다 했죠(웃음) 그렇게 시나리오 읽고 다시 만나서 술 마시는데 ‘어떠냐’ 묻길래 ‘재미있다’ 그랬죠. 그랬더니 ‘무슨 역인지 아느냐’ 그래서 ‘모른다’ 그랬더니 ‘종구(주인공)다’ 그래요(웃음). 속으로 ‘이 사람이 미쳤구나’ 그랬다니까요. 하하하.”
순간 곽도원은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사실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 욕심부터 생겼다고. 나 감독은 ‘황해’에서 곽도원과 함께 작업을 한 뒤 그가 출연했던 다른 작품 모두를 봐왔었다고. 나 감독의 주연 제안에 곽도원은 덥썩 ‘연극 시절에는 코미디도 했었다’며 의욕을 냈단다. 호탕하게 웃으며 당시 기분을 전하던 곽도원이지만 막상 촬영이 들어간 뒤에는 지옥을 경험했다고.
“이미 나 감독이 지독하단 사실은 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정말 ‘굳이 저렇게까지?’라고 할 정도로 철저했어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제가 극중에서 입고 나오는 옷이 경찰복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그게 뭐가 다르다고 경찰복 피팅에만 2일이 걸렸다니까요. 어휴(손사래). 그러니 ‘곡성’에선 얼마나 촬영이 공을 들였겠어요. 이번 영화 무술감독님이 ‘추격자’ ‘황해’ 다 하셨던 분이에요. 그 분이랑 농담으로 ‘다시 나 감독이랑 하겠냐’고 물으면 저나 그 감독님이나 똑같이 ‘미쳤어’라고 소리친다니까요. 하하하.”
물론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벌어진 농담 같은 경험담이다. 곽도원은 ‘내가 배우로서 매너리즘에 빠진다면 무조건 나홍진을 찾아갈 것이다’는 전제를 하고 이 같은 말을 전했다. 배우를 극한으로 끌고 가는 나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결코 편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나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그는 몇 단계는 자신이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나홍진? 나홍진...그저 엄청난 사람이란 생각 밖에는 달리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요. 나홍진을 모르는 사람은 그저 천재라고 말할 겁니다. 그런데 제가 본 나홍진은 ‘엄청나다’가 맞아요. 우선 타협이 없어요. 사실 사람이 타협을 통해서 어떤 조율을 하는데 이 사람은 그게 없어요. 무조건 목표를 정하고 달려요. 한 번은 촬영을 끝내고 병원에 실려갔어요. 진짜로. 그리고 다음 날 병원에서 다시 현장으로 오고. 그렇게 일주일을 병원에서 출퇴근을 했다니까요.”
그런 지독한 나홍진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혀를 내둘렀다. 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은 몇 개월을 이어갔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농담도 한다. 하지만 진짜 현장에서 곽도원을 괴롭힌 지점은 사실 따로 있었다. 아버지였다. 극중 딸 효진(김환희)을 향한 무서울 정도의 부성애를 어떻게 끄집어 내야 할지 몰랐다.
“사실 처음에는 정말 그 감이 안오더라구요. 모르겠더라구요. 내가 아버지가 안돼 봤는데. 진짜 아버지의 그 느낌이 잘 안왔어요. 그런데 시간이 해결해 주대요. 아버지가 돼야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고 하잖아요. 6개월 동안 현장에서 효진이를 키우다 보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효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다 보니 내 아버지도 이렇게 나를 키우셨겠구나 싶었죠.”
며칠 뒤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아야 하는 곽도원이다. 이번 ‘곡성’을 통해 연인으로 발전한 장소연과 함께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극중 부부로 출연한 인연이 현실의 사랑으로 이어졌다.
“좋죠. 너무 좋죠. 둘 다 처음가는데 뭘 알겠어요? 하하하. 가서 최대한 즐기다 오려구요. 잘 즐기고 잘 놀고 잘 느끼다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곡성’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