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김재범 기자] 한 해 두 편 주연 영화가 개봉했다. 사실 별다른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여배우 원톱 영화가 사실상 실종된 충무로 트렌드에 이 문장을 대입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무모하거나’ 혹은 ‘확실하거나’란 두 가지 의견이 대립될 듯하다. 하지만 그 중심에 배우 손예진이 있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최근 ‘비밀은 없다’를 통해 소름끼치는 히스테릭한 연기를 선보인 그는 ‘덕혜옹주’로 데뷔 이후 최고 연기를 선보였단 찬사를 이끌어 냈다. 손예진의 진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힘이 ‘덕혜옹주’의 흥행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 손예진의 변신은 ‘진화ing’
데뷔 당시부터 손예진은 청순미의 대명사로 통했다. 멜로 장르에선 손예진은 캐스팅 1순위에 항상 그 이름을 올려왔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의 쓰임새는 분명 달라지고 있었다.
감정 소모에 집중해야만 하는 멜로 혹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집중됐던 필모그래피는 2007년 ‘무방비도시’를 통해 변곡점을 맞이했다. 소매치기단 여두목 역할로 출연해 섹시함과 액션 그리고 멜로의 기운이 뒤섞인 팜므파탈 연기에 도전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장르변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인생 최고 흥행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에선 866만 관객을 동원했다. 액션과 코미디가 결합된 또 다른 장르 변신을 소화했다. 여름 블록버스터에서도 통할 수 있단 새로운 가능성을 또 다시 확인했다.
흥행면에선 최악의 결과물을 얻었지만 올해 6월 개봉한 ‘비밀은 없다’는 손예진 역대 최고 연기란 찬사를 집중시켰다. 전례 없는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딸 실종 후 충격적 진실과 사건에 맞닥뜨리게 된 정치인 아내 ‘연홍’을 연기했다. 광기와 분노에 휩싸인 섬뜩한 히스테릭을 스크린에 새겨놨다. 평론가들은 앞다퉈 ‘손예진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을 정도다.
3일 개봉한 ‘덕혜옹주’는 손예진 데뷔 후 출연한 18편 영화 가운데 최고 정점에 오를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존 인물에 대한 탁월한 해석력은 연출자 허진호 감독의 극찬을 받았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에 대한 감정 묘사는 단순한 인물 해석으론 설명이 불가능한 지점을 말할 정도였다. 영화 초반부터 중반 그리고 후반까지 쌓여가는 ‘덕혜옹주’의 감정은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 마지막 귀국 장면에서 텅 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손예진의 연기는 감정 이상의 무언가를 관객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켜켜이 쌓인 슬픔의 덩어리는 마지막 이 장면 하나로 가늠키 힘든 폭발력을 뿜어냈다.
■ 손예진=손익분기점
단순하게 손예진 출연만으로 ‘덕혜옹주’ 흥행을 예감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흥행 예상’도 무리는 아니다. 그가 출연하면 “손익분기점 돌파 예약”이란 말이 영화 제작자와 감독들 사이에 도는 것도 이유가 있다. 손예진의 선택이 곧 작품 자체에 무형의 흥행 포텐을 첨가하는 효과를 기대케한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 이른바 대박을 터트린 영화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866만) ‘타워’(518만)다. 두 편을 제외하면 사실 인상적인 흥행작은 없다. 하지만 영화계에선 흥행과도 맞먹는다는 ‘손익분기점 돌파’ 작품이 부지기수다. '클래식'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작업의 정석' '무방비 도시' '아내가 결혼했다' '오싹한 연애' '공범' 등이 모두 짭짤한 흥행 성적을 일궈냈다.
한 여배우와 같은 작품을 절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은 ‘외출’에 이어 손예진과 함께 ‘덕혜옹주’를 만들었다.
허 감독은 “손예진은 힘 있는 감정 연기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몇 안 되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고 극찬을 전했다. 이어 “‘덕혜옹주’의 아픔과 특별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특별한 아픔을 표현해야 하는 여배우로서 손예진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손예진의 영화 데뷔작인 ‘취화선’에서 함께 최민식은 과거 인터뷰에서 “처음 보는 어린 여자 아이가 너무도 연기를 잘해서 놀랐다. 정말 어린 친구였는데 그렇게 연기를 잘 할 수가 없었다”고 기억했다.
단순히 손예진의 티켓 파워를 논하기에는 논리가 부족하다. 하지만 손예진의 힘이 ‘덕혜옹주’의 찬사를 이끌어 온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손예진의 힘이 그것이다.
■ 명장(허진호)과 명선수(손예진)의 찰떡 궁합
단 두 편이지만 단순한 두 편은 아니다. 허 감독은 같은 배우와 작업을 안하기로 유명한 연출자다. 하지만 손예진은 그런 룰을 깬 첫 번째 여배우다. 이미 손예진의 ‘덕혜옹주’ 합류 이유는 설명했다.
허 감독은 ‘덕혜옹주’ 언론시사회 후 언론과의 미디어데이에서 “‘덕혜옹주’의 나이대와 비슷한 여배우, 한 여인의 설명할 수 없는 ‘한’을 그려야 할 출중한 연기력, 상업 영화이기에 이견이 필요없는 티켓 파워까지 생각안할 수 없었다”면서 “그 해답은 딱 한 명 손예진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손예진 역시 ‘외출’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최근 인터뷰에서 “허 감독님과 호흡이 참 잘맞는다는 느낌이 강하다”면서 “사실 내 연기를 칭찬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감독님의 연출이 만들어 낸 힘이다”고 공을 돌렸다.
사실 두 사람은 종종 현장에서 의견 대립을 보일 때가 있었다고 한다. 손예진은 ‘감정적으로 좀 더 나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허 감독은 적당한 선을 매 장면에서 그었다고. 그리고 영화로 완성된 뒤 손예진은 허 감독의 선택에 감탄했다. 그는 “멜로 장르에선 국내 최고이신 분 아니냐”면서 “감정의 과잉이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을 너무도 정확하게 짚어내신다. 촬영 당시 감독님이 말씀하신 부분이 너무도 명확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허진호 감독의 연출 복귀작이자 손예진이 주연한 ‘덕혜옹주’는 3일 개봉해 전국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