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바다는 잘 있습니다' '그것'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고슴도치의 소원'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임시 공휴일을 쉰다면 10일, 안 쉬어도 9일의 연휴가 코 앞이다. 귀성길, 연휴근무 등을 제외하더라도 ‘무언가’ 할 시간이 있는 연휴기간이 다가왔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 고민된다면 주저없이 독서를 추천한다. 많은 이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일상에 지쳐 책을 너무 멀리 하고 살아왔다. 긴 연휴 동안 하루 혹은 이틀 정도는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들고 있는 건 어떨까. 연휴 기간 골라 읽을 수 있는 분야별 도서를 선별했다.
(사진='바다는 잘 있습니다' '기형도 전집')
■ ‘가을’…충만한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우리는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혼자를 핑계로 혼자만이 늘릴 수 있는 힘에 대해 모른 척합니다. 누구든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겠지만 당신만은, 방에서 나와 더 절망하기를 바랍니다.”
이병률이란 이름만 들어도 ‘꺅’ 소리를 내는 여성 독자들이 많다.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등 시인이자 라디오작가였고, 여행가이기도 한 그는 늘 감성 충만한 글귀로 마음을 뒤흔들어놓는다.
그런 그가 지난 20일 따끈한 시집을 내놨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이병률 | 문학과지성사)에서 저자는 감각과 감정의 날을 최대치로 벼려낸 언어들로 믿음에서 비롯한 사람의 자리를 묻고 또 묻는 일, 어쩌면 사랑과 가까워지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다섯 번째 시집에서 그는 온전한 혼자가 되어 자주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때로는 불안을 잔뜩 껴안은 채로 바깥을 걷고 들여다보는 일에 골몰하고, 그렇게 혼자가 되고도 끝내 그만두지 못한 마음속 혼잣말들은 담장을 쌓아올리듯 겹침과 포개짐을 반복하며 질문을 낳았다. 그리고 그의 혼잣말은 더는 혼자가 아닌 말이 되어 시로 완성됐다.
지난 22일 한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기형도 전집’(기형도 | 문학과지성사)이 검색어로 등장했다. 이 책은 그의 시 뿐만이 아니라 그가 기록했던 거의 모든 글들이 실려 있어, 기형도를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더욱 큰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다.
1980년대 이후 시를 꿈꾸는 많은 문학청년과 독자들의 압도적인 열광 속에 한국 문학의 뜨거운 신화로, 그리고 꺼지지 않는 생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시인 기형도는 신문사 문학 출판 담당 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자신의 첫 시집 출간과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돌연 세상을 떠났다. 기형도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만큼 지난 30여 년간 한국 현대시사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적 매혹, 문학적 성찰은 감히 수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교보문고가 특별한정판 리커버 버전을 내놓기도 했다.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 마지막 구절은 그가 왜 문학계에 끝없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인인가를 알게 한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사진='살인자의 기억법' '남한산성' '7년의 밤' '그것'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영화를 읽다, 개봉 혹은 개봉 예정 영화 원작의 깊이
스펙터클하거나 강렬한 스토리를 원한다면 소설만한 것이 없다. 특히 영화화가 된 책들은 그만큼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갖췄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들로 인해 독자에게 나만의 영화를 만들 기회를 선사하기도 한다.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 문학동네)의 동명 영화는 29일 기준 255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특히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기존 설정을 가져오되 전개는 더욱 스펙터클해진, 새로 구축한 세계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원작인 ‘살인자의 기억법’을 더욱 읽어볼만하다. 저자 특유의 시니컬한 위트가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마에 녹아들며 진행되는 전개는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며, 장편이라는 장르를 무색하게 만든다. 영화와는 또 다른 두려움, 차원이 다른 긴장감은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남한산성’(김훈 | 학고재)의 동명 영화는 추석 연휴인 10월 3일 개봉한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무려 70만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로 올해 100쇄 기념 에디션이 출간되기도 했다. 1636년 인조 14년, 청나라가 조선에 침입하면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이후 대응을 놓고 전쟁을 피하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주장하는 주화파와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청과 싸우자는 척화파가 대립하는 내용을 담았다. 책은 무엇보다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충신들의 대립과 더불어 치욕적인 ‘삼전도의 굴욕’으로 인해 역사상 가장 나약한 왕으로 평가받는 인조의 고뇌에 집중한다.
무엇보다 말과 말의 싸움을 담았다. 영화에 대해 주연 이병헌은 “기존 영화와는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읽는다면 영화를 보는 시선의 깊이는 더욱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그것’은 역대 호러영화 흥행 1위에 등극했다. 원작은 이야기의 제왕이라 불리는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이라는 것만으로도 스산한 가을, 호러 장르를 집어들 가치가 있다. ‘그것’(스티븐 킹 | 황금가지)은 4년이라는 집필 기간 끝에 완성된 작품으로, 1986년 출간과 동시에 2주 만에 밀리언셀러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작품의 인기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TV 시리즈까지 이어져 ‘광대 공포증’이라는 현상을 불러일으켰으며 출간 31년 만에 처음으로 제작된 영화는 예고편 공개 24시간 만에 2억 뷰를 기록해 하루 안에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화 예고편이 됐다.
어린 시절 일곱 아이가 함께 힘을 모아 맞섰던 절대 악, ‘그것’. ‘그것’이 이제는 어른이 된 아이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그들은 함께여서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연어들처럼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스티븐 킹은 공포 문학의 대가로 찬사를 받았고, 이와 더불어 한 편의 성장 소설로서 이 작품이 가진 흡인력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7년의 밤’(정유정 | 은행나무)은 올해 개봉 예정이다. 신비로운 호수를 낀 마을인 세령호에서 우발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걸 잃게 된 남자와 그로 인해 딸을 잃고 복수를 계획한 또 다른 남자의 끝나지 않은 악연을 담아냈다. 치밀한 구성과 강렬한 문체, 압도적인 서사가 50만 독자를 사로잡았고 당시만 해도 국내 문학에서 흔하지 않은 스릴러 장르를 내세운 정유정은 이 작품으로 ‘한국의 스티븐 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사진='기사단장 죽이기' '언어의 온도' '명견만리')
■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읽어야 할’ 책
‘1Q84’ 이후 7년만에 돌아온 거장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기사단장 죽이기’(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는 출간 3주만에 50만부를 돌파했다. 일각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루해졌다’는 혹평이 나오기도 했지만 올해의 책을 꼽는다면 그의 이름만으로도, 믿을 수밖에 없는 필력으로 주저없이 추천할 책이다.
삼십대 중반의 초상화가 ‘나’는 아내에게서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고 집을 나와서 친구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 아틀리에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천장 위에 숨겨져 있던 그의 미발표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하루키 월드의 결정판이라 불린다.
‘언어의 온도’(이기주 | 말글터)는 2017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다. 지난해 여름 출간된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 등 거장과 김영하 유시민 등 스타작가들이 날고 뛰는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심지어 앞선 작가들에게 1위 자리를 내준 건 잠깐 뿐 꾸준히 왕좌를 지켜왔다. ‘언어의 온도’는 저자가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런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절실함을 농밀하게 담아낸 것이다.
‘명견만리’(KBS ‘명견만리’ 제작팀 | 인플루엔셜)는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철에 추천한 책으로 유명세를 탔다. 얼어붙은 시국을 지나 장미대선 후 달라진 분위기를 한번이라도 느껴본 이라면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가장 최근 출간된 ‘명견만리’는 프로그램에서 다룬 미래 사회의 주요 키워드들 중 ‘정치, 생애, 직업, 탐구 편’을 엮은 것이다. 익숙한 현실에서 벗어난 대담한 상상력으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사회에 대해 생각의 한계를 깨는 놀라운 제안들을 던진다.
(사진='고슴도치의 소원'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차라리 우리 헤어질까')
■ 가을의 외로움 달랠 길 없다면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아무래도 고독이 아닐까. 남성은 가을에 받는 일조량의 부족으로 인한 남성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여성보다 심하게 가을을 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도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 것은 마찬가지. 이럴 땐 차라리 바닥을 치는 감정을 겪어보는 것도 기분 전환에 도움을 주는 방법 중 하나다.
‘고슴도치의 소원’(톤 텔레헨 | 아르테)은 네덜란드 국민작가 톤 텔레헨의 어른을 위한 특별한 동화 소설이다. 철학적인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성인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는 동화 작가 톤 텔레헨의 이 작품은 외롭지만 혼자이고 싶고,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유의 따스함과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 소외감, 관계에 대한 갈망을 우화 형식으로 그려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고슴도치. 어느 날 문득 동물들을 초대하기로 결심하지만 한 번도 누군가를 초대한 적이 없고 누군가 찾아온 적도 없는 고슴도치는 편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결국 편지를 보내지 못한다. 고슴도치는 쓰다만 편지는 서랍장 속에 넣어두고 온갖 상상을 시작한다. 그 고슴도치의 모습은 많은 걱정을 하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고, 외로움을 떠안은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김정운 | 21세기북스)는 글과 그림, 심리학을 절묘하게 섞어 구성한 책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문화심리학자인 저자는 2012년 돌연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 왔던 유학 생활을 시작한 것. 저자는 일본에서 지낸 4년 동안 참 많이 외로웠다면서 그런 외로움이 있었기에 고독을 경험 했기에 타인과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외롭다고 해서 ‘관계’로 도피해선 안된다는 게 극한의 외로움을 겪어본 저자의 지론.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더는 외롭지 않게 된다는 외로움의 역설이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충분히 외로워하라’며 그 외로움을 감내할 때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된다고 메시지를 전한다.
만약 사랑하던 이와 이별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면 조성일 작가의 ‘차라리, 우리 헤어질까’(조성일 | 팩토리나인)를 권한다. ‘차라리, 우리 헤어질까’는 저자가 이별 후 4년간 페이스북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연애하는 남녀의 마음속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30만 독자들이 크게 호응했고 공감했던 이야기들은 독자의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것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저자는 아프고 쓰라린 시간을 다만 혼자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 빨리 털고 일어서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사랑받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사소한 오해가 생겨서,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데 존재하는 백만 가지 이유를, 후회를 담담히 풀어내 이별한 이들에겐 최적의 ‘바닥치기’인 동시에 ‘극복의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