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고은 공식사이트)
[뷰어스=문서영 기자] 고은 시인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 알려지며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상세한 성추행 상황들이 나열됐고, 류근 시인에 이어 박진성 시인까지 고은 시인의 성폭력에 대해 언급했지만 고은 시인은 일언반구 없다. 그간 ‘미투 운동’이 각계 각처에서 불거진 가운데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모두 사과를 하거나 반박을 하고 나섰다. 하다못해 발뺌이라도 했다. 그러나 고은 시인은 ‘괴물’이 터진 직후 한 매체와 전화인터뷰를 한 것 외에는 입장발표를 한 적이 없다. 다만 최근 국외를 통해 성추행 혐의를 부인한 사실이 알려졌다. 고은 시인의 행보는 의문점 투성이다. 그는 가타부타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문단의 직위를 내려놨다. 교과서 삭제 검토, 고은 문학관 건립 취소, 서울도서관 만인의 방 철거까지 고은 시인의 흔적도 사라지고 있다. 그는 왜, 해외에 억울한 피해자라 말하면서 국내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걸까. 어느 때보다도 말이 필요한 이때, 어째서 고은 시인의 입은 열리지 않는 걸까.
(사진=JTBC 방송화면)
■ 추앙받던 시인, 괴물로 지목되다
고은 시인은 지난 2월,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12월 시인 최영미가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를 통해 발표한 시 ‘괴물’이 뒤늦게 주목을 받으면서다. 최영미 시인은 확실한 팩트라며 방송에까지 나왔고 류근 시인이 SNS를 통해 최영미 시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류근 시인은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라며 “놀랍고 지겹다. 6~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들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고, 하필이면 이 와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 터뜨리듯 물타기에 이용당하는 듯한 정황 또한 지겹고도 지겹다”고 밝혔다.
최영미 시인 폭로 이틀 뒤 고은 시인은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30여년 전 어느 출판사 망년회였던 것 같다. 여러 문인들이 있는 공개된 자리여서 술 먹으며 격려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뉘우친다”고 했다. 이후 추가 폭로에는 묵묵부답,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지난 2일, 국내도 아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성폭력 혐의를 전면 부인한 사실이 드러났다.
자신이 외국 출판사에 보낸 글에서 고은 시인은 “최근 의혹들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면서도 “상습적인 성추행 혐의는 단호히 부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실이 밝혀지고 해결될 때까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릴 뿐”이라며 “아내와 본인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명예를 유지하면서 계속 집필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사진=최영미 '괴물')
■ 부인 직후 쏟아진 추가 폭로
그러자 최영미 시인이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최영미 시인은 KBS와 인터뷰에서 “사과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 딱하다”면서 공식기구가 출범하면 상세히 밝히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추가 폭로자도 나왔다. 박진성 시인은 5일 자신의 블로그에 ‘고En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박진성 시인은 “저는 추악한 성범죄 현장의 목격자이자 방관자”라며 “지난날의 제 자신을 반성하고 증언한다”고 한 대학교 강연회 후 술자리에서 고은 시인이 다른 여성을 추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2008년, 고은 시인이 뒤풀이 자리에서 옆자리 여성의 팔과 허벅지를 만졌다는 것이 박진성 시인의 설명. 심지어 주변 사람에게 말려야 한다는 뜻을 전했지만 이마저도 저지당했다고 폭로했다. “고은 시인이 여성 3명 앞에서 지퍼를 열고 자신의 성기를 꺼내 흔든 뒤 자리에 다시 앉아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지난달 27일,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를 통해 공개한 고은 시인의 행동과 다를 바 없어 많은 이들을 더욱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최영미 시인은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만지면서 여성시인을 향해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라고 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사진=박진성 시인 블로그)
■ 폭로자는 있는데 당사자는 묵묵부답
폭로자는 나오고, 본인은 부정하는 상황. 그러나 각계 각처에서 고은 시인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있다. 결백하다는 주장과 다르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고은 시인은 수원시가 마련해준 집을 반납하며 “더 이상 누를 끼칠 수 없다”고 했고, 단국대 석좌교수직도 사퇴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 22일, 고은 재단을 통해 한국작가회의에 상임고문을 비롯한 모든 직을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은 시인은 1974년 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설립 때 핵심 역할을 맡았다. 자신이 주도해 만든 작가 모임에서 불명예 퇴진한 셈이다. 여기에 더해 그가 작가회의 탈퇴 입장을 밝힌 시점이 작가회의가 고은 시인과 이윤택 연출가 겸 희곡작가를 징계하겠다고 한 직후 전한 입장이라 징계를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뒤따랐다.
정부부처나 관련 기관의 행보도 고은 시인의 억울함과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수원시와 고은재단은 고은문학관 건립 계획을 철회했다. 서울도서관은 지난달 28일, 고은 시인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놨던 만인의 방을 폐쇄했다. 교육부는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할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교과서에 실린 고은 시인 작품 삭제 논의는 지난달 21일부터 불거졌고 2주일여 뒤인 지난 2일, 교육부는 검인정교과서협회에 공문을 보냈다. 각 출판사가 사회적 논란이 된 인물의 교과서 속 작품을 제외하거나 서술 내용을 수정·제외할 계획이 있는지 파악해달라는 교육부 요청에 일부 출판사가 대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렇듯 개인적인 행보나 관계처의 대처를 보면 고은 시인은 이미 성폭력 혐의를 인정한 모양새와 다름 없다. 가디언지에 보도된 내용처럼 진정 억울하다면, 항간의 폭로와 달리 깨끗했다면 매일같이 자신의 명예가 추락하고 무너지는 꼴을 보며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세간의 시선이다. 선우재덕, 곽도원 등이 그랬던 것처럼 정말 억울했다면 곧바로 반박에 나서는 것이 순리였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고은 재단 측은 가디언지에 보도된 고은 시인의 글이 항간의 주장처럼 성명서는 아니라고 밝혔다. 고은 재단은 “성명서가 아니다”면서 “고은 시인이 해마다 3월쯤 외국 일정이 있다. 이번에도 초청이 왔고 고은 시인이 그 자리에 가지 못해 사유 진술 형태로 초청 거절 메일을 보낸 것이 번역 착오로 인해 성명서로 발표된 것 같다”고 밝혔다. 고은 재단의 설명에 따르면 사유 진술의 ‘Statement’가 성명서의 ‘Statement’로 오역됐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대로 가디언지 기사 원문에는 “Neil Astley, at his UK publisher Bloodaxe Books, gave the Guardian a statement from Ko”라고 적혀 있기에 오역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관계자는 “고은 시인이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낸 것이기 때문에 저희도 경로를 통해 알아보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고은 시인이 국내 언론에 입장 발표를 하지 않고 해외 언론에 일방적인 성명을 보낸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은 시인이 해외 일정에 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건강상의 이유도 있고 불미스러운 일도 있고 해서 나가지 않으신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TV 방송화면)
■ 그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공식 성명서 여부를 떠나 해당 글에서 본인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부인한 것이기에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공식 성명서가 아니라는 해명까지 뒤따랐으니 고은 시인은 결국 이어지는 성폭력 폭로에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셈이다. 입장표명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고은 재단 측은 “개인사”라며 재단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의 교과서 삭제 검토나 만인의 방 철거, 고은 문학관 건립 취소 등에 대해 고은 시인이 반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원로 시인은 어째서 입을 열지 않는 것일까.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고은 시인을 둘러싼 주변 정리가 고은 시인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개인적 입장을 고려한 철거와 철회라니, 이 소문마저도 억울할 법 한데 원로 시인은 나서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언어로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며 추앙받던 시인은 자신의 이름과 삶, 업적까지 더럽혀지는 데도 묵묵부답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증거없이 기억으로 이어지는 공방이 차츰 잊혀져 가길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진실이 아니니 대응할 필요도 없다는 것일까. 어디서도 그의 속내를 들을 수 있는 경로는 없다. 문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현재 전화도 받지 않고, 개인 메일도 열어보지 않는 상태다. 고은 시인의 성폭력 의혹. 목격자와 피해자는 ‘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해자로 지목된 고은 시인의 속내는 고은 시인만이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