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뷰어스=이휘경 기자] ”나를 유혹한 모든 걸 탐닉하겠어” 통제할 수 없는 사랑, 환락과 유희에 물든 세상 속 충동과 열정, 그리고 거침없는 속도로 파멸에 이르는 욕망의 도달점이 뱅상 부사르의 감각적 미장센을 통해 재탄생했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첫 작품인 쥘 마스네의 ‘마농’이 첫 선을 보였다. 3시간 30분에 걸친 대작의 5막. 한 소녀의 생애로 빗댄 시대적 풍자를 탄탄한 드라마로 탄생시킨 ‘마농’은 국립오페라단의 아리아, 섬세하고도 극적인 오케스트라, 웅장하고도 노련한 무대효과까지 모든 면에서 그 예술적 난도 이상을 보여주며 관객들로 하여금 숨 멎는 감동 그 이상의 전율을 선물했다. 15세, 어리고 순수한 아가씨 마농이 세상 밖 여행을 출발하며 시작되는 ‘마농’의 이야기. 욕망의 끝에서 파멸을 맛볼 마농의 생애가 그려진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릴 마농의 운명을 점치듯 “정말 아름다운 소녀”라는 찬사 가득한 사촌오빠 레스코의 탄식이 극 초반을 물들인다. 마농은 젊고 아름다운 외모로 뭇 사내들의 열렬한 구애와 환심을 받는다. 나이, 신분을 떠나 그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도취된 사내들은 아낌없는 물질적 유혹, 속삭임으로 소녀 마농을 집어삼켰다. 결국 그 환상에 스스로 젖어든 마농은 청년 데 그리외 기사와의 충동적 사랑, 그리고 이별과 재회까지 이르는 환희와 절망, 후회와 절규를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내던진다.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시대적 배경은 18세기다. 산업혁명 이후 급진적 신흥부자들이 탄생하면서 가치와 물질만능이 충돌했던 시기다. 즉 돈, 그리고 사랑의 무게와 가치가 물질적 유희와 뒤섞인 혼돈의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어린 소녀 마농은 숱한 사랑을 순수하게 재단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 욕망이란 너무나 큰 유혹이었을 터다. 19세기에 초연됐지만 21세기에서 본 마농의 삶이란 너무나도 큰 간극을 보여준다. 연출 뱅상 부사르 역시 이 점에 초점을 맞췄다. 순진함, 가벼움, 진솔한 사랑, 또 거칠고 잔인한 면면 등의 복잡한 마농의 성향을 귀족들의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성 중심의 사회, 얼핏 마농은 귀족들의 알맹이 없는 과시형 사랑에 휘둘리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자신의 아름다움의 가치를 어떻게 매겨야 할 지 알고 있는 마농의 주체적인 탐닉이 잠재됐다. 실제로 18세기 일부 신흥 부자들은 남성 우월을 바탕에 둔 재력을 과시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이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돈의 가치로 매기는 촌극으로 이어졌다. 마농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마농을 돈으로 꿰어내고, 풍요로 유혹한다. 21세기에서 바라본 18세기는 어떤 모습일까. 주체적인 여성상이 주목받고, 여성의 주체적인 권리를 되찾는 변화의 바람이 한창인 현재, 이 맥락에서 국립오페라단이 보여준 마농은 평민의 소녀가 자신의 치명적인 매력을 통해 정상 궤도에 오르는 주체적인 쟁취, 죽는 그 순간에도 ‘다이아몬드’를 갈구하는 그 솔직한 욕망은 더 이상 수동적인 여성상을 탈피한 신여성의 탄생으로도 재해석해 봄직하다.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이번 공연에서 마농은 크리스티나 파사로이루가 연기했다. 이미 ‘카르멘’ ‘피가로의 결혼’ ‘라 론디네’ 등 굵직한 대작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성량과 팔색조 연기력은 이번 작품인 ‘마농’에서도 빛을 발했다. 데 그리외 기사는 이즈마엘 요르디가 맡았다. 풍부한 감성과 부드러운 음색은 데 그리외의 순애보를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맞아들었다. 두 사람이 붙었던 3막 2장은 극의 백미라 꼽을 만하다. 이별의 충격으로 신부가 된 데 그리외를 찾아간 마농의 재회다. 몸짓 하나하나 손길 하나하나에 교태로 점철된 크리스티나 파사로이루의 유혹의 연기, 위험한 사랑을 극렬하게 거부하다 결국 맞아들이는 처절한 이즈마엘 요르디의 연기는 관객에게 숨 막히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두 사람은 처절하게 노래하며 서로의 감정을 뱉어냈고, 결국 격정적인 포옹으로 막을 내린다. 섬세한 연출이 그 격정적 감정을 전달하는데 일조했다. 마농이 데 그리외의 목에 걸린 묵주를 빼앗아 팔목에 두르는 장면, 마치 사랑을 재탈환 한 승리자의 모습처럼 비춰지기까지 한 마농의 이같은 행위는 묘한 쾌감과 도취감을 불러일으킨다. 이후로도 마농의 팔목에는 데 그리외의 심장을 똘똘 묶어놓은 듯 그의 묵주가 결박돼 있다. 섬세하고도 정교한 연출의 계산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무대를 이루는 수천 가닥의 금실 역시 ‘마농‘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기는 똑똑한 장치다. 4막, 마농과 데 그리외가 파멸 직전의 아슬아슬한 위기에 다다르자 군중떼가 실 사이사이로 서늘하게 등장한다. 이어 실 사이로 서서히 사라지는데, 이는 허울 뿐인 가치를 쫓는 이들을 쉽고도 명쾌하게 꼬집는다. 장엄한 성당벽의 원근감, 권위의식으로 가득찬 사교계 파티장의 가파른 계단 역시 돋보인다. 대작의 대장정은 마농의 파멸을 향해 숨가쁘게 직진한다. 찬란한 젊음은 사라졌고, 결국 죽음 앞에 놓인 마농. 사랑하는 데 그리외 품에 안긴 마농은 그제서야 자신의 진짜 내면과 마주한다. 환희와 눈물로 가득찬 마농은 서서히 죽어갔지만, 단 한 마디의 탄식이 관객의 실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아!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네! 봐.. 나 아직도 멋을 부리잖아!”

”오! 아름다운 마농” 찬란한 매혹, 그 파멸의 질주

이휘경 기자 승인 2018.04.10 10:30 | 최종 수정 2136.07.18 00:00 의견 0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뷰어스=이휘경 기자] ”나를 유혹한 모든 걸 탐닉하겠어”

통제할 수 없는 사랑, 환락과 유희에 물든 세상 속 충동과 열정, 그리고 거침없는 속도로 파멸에 이르는 욕망의 도달점이 뱅상 부사르의 감각적 미장센을 통해 재탄생했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의 올해 첫 작품인 쥘 마스네의 ‘마농’이 첫 선을 보였다. 3시간 30분에 걸친 대작의 5막. 한 소녀의 생애로 빗댄 시대적 풍자를 탄탄한 드라마로 탄생시킨 ‘마농’은 국립오페라단의 아리아, 섬세하고도 극적인 오케스트라, 웅장하고도 노련한 무대효과까지 모든 면에서 그 예술적 난도 이상을 보여주며 관객들로 하여금 숨 멎는 감동 그 이상의 전율을 선물했다.

15세, 어리고 순수한 아가씨 마농이 세상 밖 여행을 출발하며 시작되는 ‘마농’의 이야기. 욕망의 끝에서 파멸을 맛볼 마농의 생애가 그려진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릴 마농의 운명을 점치듯 “정말 아름다운 소녀”라는 찬사 가득한 사촌오빠 레스코의 탄식이 극 초반을 물들인다. 마농은 젊고 아름다운 외모로 뭇 사내들의 열렬한 구애와 환심을 받는다. 나이, 신분을 떠나 그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도취된 사내들은 아낌없는 물질적 유혹, 속삭임으로 소녀 마농을 집어삼켰다. 결국 그 환상에 스스로 젖어든 마농은 청년 데 그리외 기사와의 충동적 사랑, 그리고 이별과 재회까지 이르는 환희와 절망, 후회와 절규를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내던진다.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시대적 배경은 18세기다. 산업혁명 이후 급진적 신흥부자들이 탄생하면서 가치와 물질만능이 충돌했던 시기다. 즉 돈, 그리고 사랑의 무게와 가치가 물질적 유희와 뒤섞인 혼돈의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어린 소녀 마농은 숱한 사랑을 순수하게 재단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 욕망이란 너무나 큰 유혹이었을 터다.

19세기에 초연됐지만 21세기에서 본 마농의 삶이란 너무나도 큰 간극을 보여준다. 연출 뱅상 부사르 역시 이 점에 초점을 맞췄다. 순진함, 가벼움, 진솔한 사랑, 또 거칠고 잔인한 면면 등의 복잡한 마농의 성향을 귀족들의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남성 중심의 사회, 얼핏 마농은 귀족들의 알맹이 없는 과시형 사랑에 휘둘리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자신의 아름다움의 가치를 어떻게 매겨야 할 지 알고 있는 마농의 주체적인 탐닉이 잠재됐다.

실제로 18세기 일부 신흥 부자들은 남성 우월을 바탕에 둔 재력을 과시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이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돈의 가치로 매기는 촌극으로 이어졌다. 마농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마농을 돈으로 꿰어내고, 풍요로 유혹한다. 21세기에서 바라본 18세기는 어떤 모습일까. 주체적인 여성상이 주목받고, 여성의 주체적인 권리를 되찾는 변화의 바람이 한창인 현재, 이 맥락에서 국립오페라단이 보여준 마농은 평민의 소녀가 자신의 치명적인 매력을 통해 정상 궤도에 오르는 주체적인 쟁취, 죽는 그 순간에도 ‘다이아몬드’를 갈구하는 그 솔직한 욕망은 더 이상 수동적인 여성상을 탈피한 신여성의 탄생으로도 재해석해 봄직하다.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이번 공연에서 마농은 크리스티나 파사로이루가 연기했다. 이미 ‘카르멘’ ‘피가로의 결혼’ ‘라 론디네’ 등 굵직한 대작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성량과 팔색조 연기력은 이번 작품인 ‘마농’에서도 빛을 발했다. 데 그리외 기사는 이즈마엘 요르디가 맡았다. 풍부한 감성과 부드러운 음색은 데 그리외의 순애보를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맞아들었다. 두 사람이 붙었던 3막 2장은 극의 백미라 꼽을 만하다. 이별의 충격으로 신부가 된 데 그리외를 찾아간 마농의 재회다. 몸짓 하나하나 손길 하나하나에 교태로 점철된 크리스티나 파사로이루의 유혹의 연기, 위험한 사랑을 극렬하게 거부하다 결국 맞아들이는 처절한 이즈마엘 요르디의 연기는 관객에게 숨 막히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두 사람은 처절하게 노래하며 서로의 감정을 뱉어냈고, 결국 격정적인 포옹으로 막을 내린다.

섬세한 연출이 그 격정적 감정을 전달하는데 일조했다. 마농이 데 그리외의 목에 걸린 묵주를 빼앗아 팔목에 두르는 장면, 마치 사랑을 재탈환 한 승리자의 모습처럼 비춰지기까지 한 마농의 이같은 행위는 묘한 쾌감과 도취감을 불러일으킨다. 이후로도 마농의 팔목에는 데 그리외의 심장을 똘똘 묶어놓은 듯 그의 묵주가 결박돼 있다. 섬세하고도 정교한 연출의 계산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마농 (사진=국립오페라단)

무대를 이루는 수천 가닥의 금실 역시 ‘마농‘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기는 똑똑한 장치다. 4막, 마농과 데 그리외가 파멸 직전의 아슬아슬한 위기에 다다르자 군중떼가 실 사이사이로 서늘하게 등장한다. 이어 실 사이로 서서히 사라지는데, 이는 허울 뿐인 가치를 쫓는 이들을 쉽고도 명쾌하게 꼬집는다. 장엄한 성당벽의 원근감, 권위의식으로 가득찬 사교계 파티장의 가파른 계단 역시 돋보인다.

대작의 대장정은 마농의 파멸을 향해 숨가쁘게 직진한다. 찬란한 젊음은 사라졌고, 결국 죽음 앞에 놓인 마농. 사랑하는 데 그리외 품에 안긴 마농은 그제서야 자신의 진짜 내면과 마주한다. 환희와 눈물로 가득찬 마농은 서서히 죽어갔지만, 단 한 마디의 탄식이 관객의 실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아!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네! 봐.. 나 아직도 멋을 부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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